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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통역사 현 Oct 21. 2024

돌고 돌아 결국 '나'

나의 MBTI는 INTJ다.


재미로 시작했다가 늪에 빠지듯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MBTI의 검사 결과를 믿든 안 믿든, INTJ의 특징과 한 가지 확실하게 겹치는 건 나는 세상에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내 삶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해 왔다.


장점이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나'의 기준이 확실해서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데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아본 적이 없고, 돈이 거의 절대적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상관없이 나만의 확고한 '행복의 역치'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소위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서도 세상을 잘 모르고 사람을 많이 겪어보지 않았다 보니 '사회적 자아'는 여전히 미숙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상황이나 서사를 공감하지 못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특히 요즘처럼 이름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호명 사회이자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업(業)'을 창조해야 하는 핵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내가 가진 것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 세상과의 접점을 예리하게 잡아내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눈치 없던 나조차도 세상에 대한 '현타'를 느끼게 된 계기는 코로나(COVID 19)였다.


코로나발 자산 시장의 폭등을 뒤늦게 자각했을 즈음 나는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게 현상 유지가 아니라 뒤처지는 것임을 이제 막 깨닫고 있었다. 노쇠해져 가는 부모님의 잠재적 부양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 아이들의 교육비, 그에 비해 한정된 소득. 대한민국에서 학령기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을 운영하는 40대라면 대부분 공감할 삶의 무게이다.


그런 시기에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시장이 폭등하는 것을 보면서, 그제야 '지금껏 난 뭐 하고 살았나' 현타가 왔지만, 현타를 느낄 새도 없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절박함으로 투자, 돈공부, 그리고 자기 계발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며 처음으로 투자 시장의 사이클을 한 차례 겪어내었다.


세계적인 역병으로 인한 이례적인 기울기의 폭등장과 폭락장이었지만, 짧게나마 한 사이클을 겪고 나니 느껴지는 건, 모든 문제의 답은 돌고 돌아 결국 '나'라는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건 그 끝은 결국 "너 자신을 알라"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도 '나'를 알아야 하고, 돈과 상관없이 행복하려 해도 '나'를 알아야 한다.


코로나발 자산 폭등장 후반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그간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은 전부 잘못된 것 같았고, 내가 믿었던 가치, 내가 옳다고 생각해 왔던 삶의 태도, 내가 나에게 가지고 있던 자존감 모두 뿌리까지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현실의 세상을 이토록 모르고 쓸데없이 열심히만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고, 그렇게 열심히 사느라 소모한 내 에너지와 그에 비해 보잘것없다 싶던 결과물들, 그 와중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지키며 살아왔다는 알량한 자존감까지 그 모든 것이 모두 허물어져 내렸던 시기였다.


빨간 약을 먹고 눈뜬 자본주의 세상에서 과거의 나는 무조건, 모두 다 부정해야 했고, 자존감도 자존심도 모두 버려야 했다. 과거에 내가 살아왔던 삶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치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코로나 이후 받은 충격으로 인해 나는 코로나 이전까지의 나를 깡그리 부정하며 투자씬, 자기 계발씬에 뛰어들었고, 마치 새로 태어나기 위해 과거의 나를 모두 버리겠다는 자세로 임해왔다.


그러나, 상승장 후반부의 눈먼 도파민에 휩쓸려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벌린 투자들은 모두 10배쯤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고, 팔리지 않아 막대한 부채가 되어버린 투자 물건들을 오롯이 껴안기 위해 뱁새 다리를 찢을 수 있는 만큼보다 더 찢으며 견디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이 마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내가 저지른 짓거리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 분들을 통해 훨씬 더 많은 투자 공부, 사업 공부, 인생 공부, 사람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때 반추했던 코로나 이전의 삶은 통째로 부정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 다시 돌아보면  바로 '그때의 나'에게서 '지속가능한 업 → 생계(나만의 업) → 현금흐름 → 투자'의 해답이 보인다.  


'돈만 좇으면 돈은 달아난다'는 말이 맞는 것이었다. 돈은 내가 조급해한다고 벌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급해할수록 더 멀리 달아났다. 돈은 목적이 될 수 없고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좀 더 많이 한다. '숨고 싶다'거나 '나를 드러내기 싫다'는 저항감을 최소화하면서 온전한 '사회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특정 '직'이나 '업'으로 사회적 정체성이 규정되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말이 길었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나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진하게 올라온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오롯이 인정하면서 예전처럼 일상과 비일상을 사유하는 글, 아름답지만 무용한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풀어내는 글을 마음껏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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