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걱정이 없는 삶

[북스테이] 국자와 주걱, 강화도 / 『방랑자들』올가 토카르추크

by 예주연

오랫동안 기다려온 회사의 채용에서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의 파도가 지나간 뒤 곧 우울해졌다. 일을 쉬는 몇 개월 동안 미뤄왔던 글쓰기도 열심히 하고 멀리 여행도 떠나려고 했는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직장에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 열흘 이상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개인적인 창작 활동은 더 요원해질 텐데...


채용 과정 중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앞둔 시점에 강화도에 다녀왔더랬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전 게스트하우스의 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거기서 알게 된 친구들과 다시 한 번 같은 숙소, 같은 방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두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던 우리는 이번에는 각자 강화도에서 가장 좋았거나 가고 싶었던 곳들을 추려 함께 다니기로 했다. 나는 마니산을 추천했다. 단군이 제사를 지낸 참성단이 있다고 해서 개천절을 기념해 올랐다가, 황금빛 논과 저 멀리 갯벌과 섬이 펼쳐진 360도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한 것이다.


막상 약속 날짜가 되어 다시 오르려고 하자, 얼마 전에 본 풍광을 보려고 또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산은 한 달 사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추수가 끝나 논은 더 이상 금색이 아니었지만 올해 조금 늦게 든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는가 하면, 지난번에 물이 빠져 있던 갯벌에 물이 차올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는 혼자라 올라왔던 길 그대로 내려와야 했는데 이번에는 일행도 있겠다, 새로운 길로 모험을 해볼 수도 있었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이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지는 해와 노을을 감상하며 내려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산 중턱에 시야가 조금 트인 곳에서 해넘이를 보고 마저 내려가려니 발 딛는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졌다. 마니산에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읍내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배차 간격이 어떻게 될지, 막차는 언제일지 몰랐다. 해가 지자 급격히 추워졌고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일행이 있어서였을까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게 뒤엉켜 오늘 숙소에 가지 못하더라도 안전만 보장된다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당장 해야 하는 일이나 지켜야 하는 약속이 없었다.


하산길을 안내해주었던 등산객 아저씨가 자신의 차로 우리를 읍내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히터에서 나오는 따듯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노곤해졌다. 차는 신호를 받을 때만 잠깐씩 멈춰 섰는데 같은 길이 성수기 주말 저녁에는 서울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꼼짝달싹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마니산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온다고 했다. 다른 곳도 많이 다니고, 차가 본인의 집이라며 짐짓 자유로운 영혼임을 뽐내기도 했다. 떠나고 싶을 때 무작정 떠나 피곤하면 차를 세우고 쉰다는 것이었다. 그날도 우리를 내려주고 서쪽의 더 깊은 섬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다. 서쪽의 외딴 섬을 얘기하는 와중에 나는 갑자기 반대 방향 서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이 떠올랐다. 필기시험까지 통과했으니 곧 있을 면접도 통과하고 채용에 최종 합격을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일 걱정이 없는 삶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빨리 읍내로 가서 저녁을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푹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낯선 이의 호의로 잠시 얻은 안온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따듯한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차가 밀려 이 드라이브가 끝이 나지 않기를 바랐다.



다음날 일행과 헤어져 '국자와 주걱'에 갔다. 읍내와 마니산 사이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서점이자 북스테이 공간이다. 열린 대문을 통과해 마당에 들어서 서점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점에 오기 전 내가 여기에 갈 거라는 걸 들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아, 거기 '잘 나가는' 서점!" 하면서 알은체를 했다. 시골에 있는 서점이 장사가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길래...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자주 자리를 비워서 '잘 나가는' 서점이라고 덧붙여 주었다. 책을 보러 온 손님에게 가게를 맡기고 나가는가 하면 차를 끌고 온 손님에게는 강화도에 갈만한 곳을 소개해주다 은근슬쩍 본인도 끼워달라고 한다는 거였다. 책을 둘러보다가 한 권 뽑아 들고 앉아 있으려니 사장님이 돌아왔다. 과연 듣던 대로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또 자리를 비웠는데 이번에는 주민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 때문이었다. 별채에서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참가자가 싸온 떡볶이와 홍시를 먹으며 서점을 다시 한 번 독차지했다.



사장님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직접 재배한 채소로 정갈하게 차린 아침을 함께 먹었다. 여기가 고향인지 물었더니 아니라고, 그냥 여기가 좋아 터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서점을 찾아 걸어 들어오면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서점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곳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은 이곳에 오기가 겁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사장님은 스스로 문화를 일궈냈다. 오래된 집을 고쳐 살며 거실에서는 서점을 운영하고 아들 둘이 독립해 나가 남은 방에서는 손님들을 받으며. 전날 밤 독서모임을 보니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내 소개를 할 차례였다. 책을 좋아해 북스테이를 다니고 있으니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테고, 글을 쓰고 있으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소속으로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습관대로 예전에 계약직으로 일 년 여 다니던 직장 이름을 댔다. 그리고 정규직 공고가 나서 그곳에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나라는 사람은 한줌으로 쪼그라들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혼자서 여러 시도를 해보았던 지난 몇 개월 간은 전혀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사장님은 자신의 숙소를 찾은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서점을 찾아올 만큼 독특한 취향을 가진, 그러나 그만큼 고정된 세상 안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장님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것저것 제안해보았다고 했다.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포기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시험을 준비하는 이에게는 피아노를 끌고 논두렁이나 갯벌에서 연주회를 해보라고 하기도 했고, 영화를 찍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이에게는 서점에서 일하면 숙식을 제공하고 근처 예술인들을 소개해줄 테니 여기서 시작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숙소를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온 청년은 없었다고 했다. 사실 나도 듣는 내내 재밌긴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장님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혼자 서점을 지키면서 뽑아 든 책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이었다. 얼마 전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의 대표작으로 자신을 찾아 떠도는 이들에 관한 짧은 글 116편이 담겼다. 책에 담긴 여행의 이유와 모습은 가지각색이라서 어떤 이는 자신이 왜 움직이는지, 무엇을 찾는지 모르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이동하는 인간의 본성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이동을 통해 작가는 경계 넘나들기와 유동적인 정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존재다.


여태껏 그것도 모르고 안정을, 나를 확실하게 규정해줄 무언가를 찾아 헤맸던 것 같다. 그 핑계로 쉬는 동안 모험을 하지 못했다면, 취업을 한다고 해서 더 이상 내가 되지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것도 비겁한 핑계 만들기에 불과할 것이다. 직장도 내가 지나는 많은 공간 중 하나이고, 직장인이라는 정체성도 내가 지닌 많은 정체성 중의 하나다. 물론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저당 잡히고 의무가 나를 옭아매겠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사유하고 종종 떠날 것이다. 어디에 안주하지 않고 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살고 있는 서울 집에는 작업에 집중할 공간이 없어 올해 초부터 북스테이를 시작했다. 그 경험을 글로 연재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짧게는 하룻밤 길게는 일주일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방과 책상을 얻었지만 나는 반년이 지나도록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고, 이왕 여행을 왔으니 새로운 것을 보러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기차와 호텔, 대기실에서, 그리고 비행기의 접이식 테이블에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밥을 먹다 식탁 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뭔가를 끄적이기도 한다. 박물관의 계단에서, 카페에서, 길가에 잠시 정차해놓은 자동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종이쪽지에, 수첩에, 엽서에, 손바닥에, 냅킨에, 책의 한 귀퉁이에 쓴다.
- 올가 토카르추크,『방랑자들』 35p.


이동하고 변화하는 인간 올가 토카르추크는 언제 어디서든 쓴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이어져 의미를 만들어 낸다. 나도 이제 핑계를 대지 않고 쓸 것이다.


*국자와 주걱 북스테이 유튜브 보러 가기:

https://youtu.be/S9nTzlVr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