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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Jun 21. 2022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음악 영화 3편

디아스포라영화제 몇 주 전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이만한 규모의 본격적인 영화제는 처음이라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골라야 하는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선택지 앞에서 머리가 하얘졌다.

일단 2주의 전체 기간 중 우리가 전주에 있는 날짜의 시간표를 살펴보고

제목이나 설명 중 끌리는 작품을 하루에 하나씩 골랐다.

그래서 보게 된 영화 3편. 모아놓고 보니 모두 어떻게든 음악과 연관된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메두사》에는 티끌 하나 없는 미소로 CCM을 부르는 여자 합창단이 등장한다.

순백의 천사 같은 그들의 모습은 그러나 섬뜩하기까지 했는데

신을 찬양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가꿔 바치겠다는 가사를 말 그대로 맹신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였다.

실제로 그들은 자경단으로 활동하며

"헤픈" 여자들을 쫓아가 흠씬 두들겨 패주고 그 모습을 촬영해 망신을 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최고 인기가수였던 젊은 여자가 타락에 대한 벌로 얼굴에 화상을 입는 테러를 당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신과 남편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그녀들에게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졌다는 건 크나큰 형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중 주인공 마리아나가 자경단 활동 중 얼굴을 칼에 그이는 사고를 입고 만다.

완벽한 여성상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마리아나는 그로 인해 직장에서도 잘리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멀어진다.

마리아나 논리대로라면 인기가수는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겠지만 자신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이후 인기가수에 집착을 하면서 그녀의 행적을 쫓으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영화는 가상의 기독교 원리주의가 판치는 보수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모습이 현실과 많이 다르지는 않아서 암담하기도 했다.

CCM 합창으로 시작한 영화는 고함을 내지르며 거리를 뛰쳐나오는 여자들의 화성으로 끝이 난다.

분명 고함이 더 귀에 거슬리는 소리일 텐데, 이 장면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제목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는데 최근 조니 뎁과 소송을 치르며 미디어에서 폄훼당하고 있는 앰버 허드를 메두사에 비유한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https://medium.com/@larissaibumi/amber-heard-and-the-myth-of-the-medusa-revisited-d5beb188422

메두사라면 그 얼굴을 보면 몸이 굳게 되는 괴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테네 신전을 지키던 아름다운 여사제로 그녀에게 반한 포세이돈에게 강간을 당하고,

신전에서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뱀으로 변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벌주는 것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니.. 다시 암담해진다.



《해왕성 로맨스》 또한 공식적으로 식민주의는 끝이 났지만 여전히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르완다와 미국 공동 프로덕션으로 콜탄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 Maltalus가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탈출을 해

해커들이(잘 알겠지만 콜탄은 스마트폰 등 전자 제품의 필수 원료다) 모인 공동체로 가 논바이너리 Neptune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반식민주의, 반자본주의를 노래하는 뮤지컬 영화다.

대강의 설명만 들어도 알 수 있겠지만 매우 실험적이었다.

아프로퓨쳐리즘이라고 해야 하나, 전선으로 만든 장신구 등 패션도 독특했고

메시지는 뻔할 수 있지만 그걸 해킹과 연결시키니 재밌었다.

찾아보니 감독 Saul Williams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뮤지션이었다.

그가 출연한 Tiny Desk 영상에 영화에 편곡되어 들어간 음악들이 몇 나와 반가웠다: https://youtu.be/eXfVIPqcF9I


그리고 동명의 재즈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블루벨벳》.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6년작으로 고전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제의 묘미인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인공 남자 제프리의 입장에서

그 자신이 성적으로 끌리면서 다른 남자에게 학대를 당하는 걸 목격해야만 하는 재즈 싱어 도로시는 유사 어머니,

그녀의 아들을 납치해 볼모로 삼고 온갖 변태적이고 가학적인 행동을 하는 프랭크는 유사 아버지라 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할 수 있다지만(프랭크의 변태 성행위 자체도)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도로시는 혼자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해 제프리에게 기대고

겨우 미성년을 벗어난 제프리가 사건을 해결한 뒤

자신에게 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그러나 순수하고 무지한 인물로 남아 있는 여자친구 샌디에게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아름다운 미장센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게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공감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영화제에 다녀온 지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에야 글을 올리면서

각 영화에 대한 인상이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해 찾아보았는데

앞의 두 영화는 자료도 많이 없고 국내 극장에 걸릴 일은 요원해 보인다.

이래서 다들 영화제에 가는 거였구나-시야를 넓혀주는 영화들을 접하는 귀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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