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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Jul 20. 2022

무력감

<감정사회학> 나만의 감정사전 만들기 과제

지난주 글에 등장한 전단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무력하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역삼동에서 스터디를 한다. 스터디를 마치면 삼성동 집까지 테헤란로를 따라 걸어온다. 10시가 넘어 인적 드문 인도에는 전단지들이 한가득 뿌려져 있다. 가슴골을 드러내거나 딱 들러붙는 짧은 치마를 입고 엉덩이를 강조한 여자의 사진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으나 성매매나 유사성행위 업소 광고일 것이다.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선망하는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한복판 높은 빌딩 사이에서 일하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너무나 멋져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퇴근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스터디를 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나는 이 도시의 진정한 일원인가. 불법임에도 버젓이 대로에 광고를 하는 성매매 업소와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나는 여전히 도시를 움직이는 자들이 사고팔거나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여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시간대에 이 길을 걸으면 오토바이를 탄 남자들이 전단지를 휙휙 뿌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 광경은 흡사 낯선 남자가 나를 향해 침을 뱉는 것만 같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거나 함께 분노해주지 않는다. 일일이 다 피할 수 없어 전단지 속 여자들의 가슴을 발로 짓이기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무력하다고 느낀다.



작년 5월부터 10월까지 꽤 긴 시간 동안 김신식 선생님의 <감정사회학> 수업을 들었다.

감정사회학은 감정을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사회의 맥락으로 접근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꽉꽉 채운 수업의 질과 상관없이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으로 무료 강의인 데다 줌 강의라 성실히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마지막 시간에는 줌 화면을 켜 나만의 감정사전 만들기 과제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당시 한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에서(그리고 남녀 관계는 기본적으로 성과 자본과 권력이 얽힌 관계니깐) 가치관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 터라

이런 현상과 감정에 집중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을 다니면서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오랜만에 하면서 나의 욕망을 포함하여 사회를 분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지니깐 무력감에서 조금 회복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여유가 나면 강의 내용을 메모해둔 것도 정리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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