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밀려오는 가운데 파도에 넘어지지 않고 여자를 찾는 남자로 끝이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전율이 일었다.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탔다는 영화 외적 정보 말고는 아무 정보도 없이 관람을 한 터라
이런 이야기인가?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비장하면서도 일상의 유머가 녹아있는 스토리를 몰입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힘이 느껴져 박찬욱 천재!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서래가 택한 자살의 방식-간조에 구덩이를 파 몸을 묻고 만조를 기다리는-의 이미지가 특히 강렬했다.
그리고 영화를 두 번째 보았을 때(같은 걸 보는 게 시간낭비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2차 관람을 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광수의 『유정』에서는 금지된 사랑을 한 두 남녀가 치욕을 피해 목숨을 끊으려 시베리아로 떠나 구덩이를 파고 누웠다가
이대로 삶을 마감하기는 아쉽다며 타지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던 사회의 시선을 피해 함께 살아간다.
역시나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와의 거짓 스캔들 때문에 시베리아로 도망쳐 온 주인공은 그 커플을 보고 타락했다며 비판을 한다.
영화에서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등장한다.
서래가 해준과 재회했을 때, 죽은 전남편에 이어 또 다른 폭력적인 남자와 불행한 결혼 생활에 들어간 이유를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느라 그랬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그렇다. 서래와 해준은 서로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사이인데,
서래는 형사인 해준이 맡은 사건인 추락사한 남자의 부인이자 강력한 용의자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결혼을 한 몸인 데다 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품위를 지키는 해준은
서래가 진범이었음에도,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자책하고 서래를 떠난다.
하지만 나에게 영화의 제목은 금지된 사랑을 하는 둘의 관계를 중단할 결단이 아니라
이미 애정이 식어 숫자와 루틴만 존재하는 부부 관계에 있는 해준이나 파괴적인 관계에 있는 서래가
그러한 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힘이 필요하다는 뜻으로도 읽혔다.
따라서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어(그럼으로써 해준이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주기를 바라) 자살을 택하는 서래의 모습은
이제까지 필름 누아르의 전형적인 팜므파탈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던 서래가
스스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사랑의 완성을 두려워하는 비겁한 행동으로 보였다.
나도 예전에는 『유정』의 주인공에 이입을 해 생활감이 묻지 않은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을 동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사랑이 아닐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랑의 완성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관계 안에서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랑은 언제나 미결이고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을 하다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을 완전히 알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매혹적인 이유일 것이다. 열린 결말의 이 영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