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졌을 때
볼로냐의 숙소가 생각보다 훨씬 더 볼로냐 서쪽 외곽에 치우쳐서 모데나로 향하기 전에 볼로냐 시 반대편으로 이동한 뒤 1박을 더 하기로 했다.
덕분에 남은 일정 동안 하루에 20km 정도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확실히 걸음이 수월하고 여유 있다.
볼로냐 반대편으로 이동하면서 어둠 속에 보지 못한 도시를 마주했다.
볼로냐 또는 라구 볼로네즈라고 부르는 볼로네즈 소스는 모두 이 지역의 라구 소스를 가리킨다.
도시는 소스의 붉은색을 닮았다.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그 안의 건물들, 특히 아꾸르시오 라고 불리는 궁전은 모두 볼로냐 소스와 같은 붉은빛을 내뿜었다.
궁전 앞 광장(Piazza Maggiore)은 도시의 중심부로써 사면이 르네상스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음악가와 시민들이 모여있었다.
강렬함으로는 런던에 비교할만했다.
다른 유럽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영국 런던에 갔을 때 이곳은 다른 유럽과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벽돌 건물들과 오래된 형태의 택시, 빨간색 이층 버스 등이 주는 느낌이 진하고 강렬했다.
이탈리아 도시 중 볼로냐도 마치 그러하다.
도시에는 볼로냐 대학이 유일하고 이 학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다.
수업을 듣거나 학교 내부를 탐험할 수 없지만 가장 오래된 대학교란 명성이 주는 묵직함에 학생들이 많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저녁 또한 학교 거리에서 먹었다.
마치 이 학교의 학생인 것처럼 기둥에 기대어 앉아 책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볼로냐 지도를 확대하면 6각(또는 7각) 형 모양으로 도로에 둘러싸인 중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곳 전체를 시내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한 대학교와 광장, 궁전, 성당, 두 개의 사탑 등 명소가 모두 이곳에 있고 시장과 식당, 상점 등도 시내에 밀집해 있다.
이곳에도 관광객들이 있겠지만 그들보다 학생들이 도시 분위기를 이끌고 있고, 대학교가 관광 중심부와 함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대학가의 느낌이 녹아있다.
덕분에 굉장히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간식이 가득한 보조가방을 두드리며 볼로냐 호스텔을 나섰다.
시내를 구경하면서 음료와 간식을 샀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짐에 불과했다.
물과 앉아서 쉴 때 먹을 과일만이 적합했다.
볼로냐를 완전히 벗어나서 양옆에 광활한 밭을 끼고 걷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진 불상사가 있었다.
도시를 벗어난 뒤의 일이라 가까운 카페나 마트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밭으로 걸어갔다.
땅에 자양분을 공급했으나 왠지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늘의 짐을 짊어지고 간간히 지나다니는 차 옆을 묵묵히 걸었다.
피렌체까지의 길이 푸른 포도밭이었던 것에 비해 이쪽은 밀과 보리, 벼 같은 농사를 지은 곳으로 보인다.
그 탓인지 장소뿐만이 아니라 계절을 넘어온 기분이 들었다.
이번 숙소는 도시나 작은 마을이 아닌 논 한가운데에 있는 민가다.
모데나로 향하던 중 숙소로 가기 위해 좌측 논두렁으로 방향을 틀었다.
볼로냐에서 모데나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숙박을 결정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논길을 걸으니 혼자 농활 하러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짐과 지친 발걸음 탓에 여름방학 중 잠자리채를 들고 시골 할머니 집을 찾아간 기분과는 달랐다.
그 어떤 차 소리도 없이 적막한 가운데 이따금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문을 열기도 전에 개들이 뛰어나와 왈왈거리며 반겨줬고, 멜빵바지에 부츠를 신고 창이 넓은 모자를 쓴 아주머니께서 뒤를 이어 나오셨다.
일을 하기 위해 나가야 했는데 마침 잘 왔다며 웃으시는 모습이 몹시 건강해 보였다.
방을 소개해주신 후 직접 만든 와인이라며 화이트 화인을 한병 주시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셨다.
포도밭을 일꾸러 가시는 듯했다.
숙박 환경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무장해제된 기분이다.
샤워를 하고 마당으로 나와서 와인과 전날 사둔 간식을 먹으며 책을 보고 때때로 멍하니 논과 하늘을 바라봤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볼로냐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시며 와인이 더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다.
시골 인심은 다 이런 건가 싶었다.
와인에 불콰해진 얼굴로 글을 쓰고 단잠을 잤다.
다음날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꾸며둔 주방에서 동화 같은 조식을 마칠 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후 모데나까지 20km를 걷는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탈리아 여정을 떠올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부근이었다.
모데나에 진입하면서 여행자 최고의 식당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했고 늘 그렇듯 만족스러웠다.
유럽을 통과하면서 여행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걷기 시작했고 이 선택은 여행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렸다.
이동 한 뒤 목적지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여행은 걸어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목표이자 여행이 됐고,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하루에 25km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행지에서 여유와 자신감을 줬다.
온전한 하루를 지니고도 도시를 제대로 여행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도착해서 다시 떠날 때까지 반나절 남짓의 짧은 시간으로도 인상 깊은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걷던 중에 떠오른 상념들은 메모장을 빼곡히 채웠고 온 힘을 쥐어짜서 걷고 또 걸을 때 머리가 비어버리던 순간이 좋았다.
여행 중 하루가 헛되고 의문으로 남기보다 보람과 성취감으로 남았다.
토스카나의 넓은 밭과 구릉, 그 구릉마다 서있는 나무들, 작은 소도시와 성, 요새, 포도밭을 하나하나 밟아온 길을 마음에 품었고 터널에서 비를 피하고, 도로에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던 순간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도 간직하게 됐다.
모데나에서 그대로 북상하면 베로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갈 수 있고,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직진하면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에 갈 수 있다.
볼로냐로 돌아가서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가면 이번 여행에서는 제외한 베니스에 갈 수 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자 더없는 자유가 있었다.
이탈리아 도보 여행 글을 쓰면서 그때 과정과 힘듦을 몸으로 되짚기 위해 자전거를 탔다.
집에서부터 원효대교까지 전력을 다해서 간 뒤 바로 자전거를 돌려서 성산대교까지 다시 전력으로 갔다.
첫날은 땀에 젖는 정도지만 다음날이 되면 마포대교쯤부터 호흡이 가쁘고 다리가 무거웠다.
또 다음날이 되면 원효대교까지 가는 길부터 멀게 느껴졌다.
몸상태와 무관하게 페달은 늘 최선을 다해 밟았다.
내 여행도 그랬다.
가진 바 모든 힘을 쏟아붓고 싶었다.
이 뜨거운 것을 밑바닥까지 토하고 싶었다.
별안간 마음에 솟구친 뜨거움을 풀어낼 필요가 있다.
살면서 뜨거움을 속으로 되삼켜야 할 때가 많았지만 여행에서는 가능했다.
청춘의 발버둥을 치며 세계여행을 결심한 내 지난 과정과 도보 여행을 결심하던 마음이 닮았다.
여행이 삶과 닮아 있어서 여행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끝없이 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