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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Dec 24. 2022

바람이 불었던가 하며 손을 뻗었다

인도 두 번째 편지

 자이푸르로 넘어온 후 메마른 땅 위에 부유하는 먼지와 낯선 지형, 낯선 사람들 틈을 걷습니다.

 이대로 숙소까지 걸을 생각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머리와 등위에 짐을 짊어지고 걷습니다.

 거리 위 몇몇 사람들은 신발을 신지 않았지만 크게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발은 땅을 밟아 평평해졌고 두터운 각질 혹은 굳은살이 그 발을 간신히 보호하고 있습니다.

 보온 통을 들고 다니며 인도식 홍차를 파는 사람들의 "짜이~짜이~"하는 외침이 들리고, 거리 곳곳에 자리를 잡고 선 상인들이 로티를 굽습니다.

 로티는 난과 달리 발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부풀지 않고 납작하게 굽는 빵인데 화덕이 필요하지 않은 탓에 어디에서나 굽고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심의 풍경 속에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하릴없이 앉거나 서서 허공에 시선을 던지는 이들입니다.

 해가 떠서 밝은 낮에도 이들의 행위는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들은 가녀린 육신에 가벼운 옷가지만을 걸쳤고 정적인 움직임 속에 어떠한 탐욕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으나 일견 하기엔 그렇습니다.

 명상, 요가, 수없이 많은 신, 종교 등 내가 일전에 갖고 있던 인도에 대한 일종의 이미지 혹은 단어의 조합에 의해 연상된 것인지 어떤 면에서 경건함에 가까운 듯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허허롭고 매우 연약한 존재 같았으나 타인에 의해 그들의 행위가 침범받을 때면 억척스럽고 고집스러운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부라리는 눈과 일그러지는 입매를 보며 경건함보다 괴팍함이었던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발걸음이라도 멈출 때면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다가갈 때면 10배 100배 부풀린 가격을 농담처럼 던졌습니다.

 부푼 가격은 흥정할수록 거품처럼 꺼졌고 이것이 그들 삶의 방식이기에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이들의 방식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는지 별스럽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은 오랜 생활로 그들의 물가를 꿰고 있거나 한두 번쯤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며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뿐인 듯합니다.

 겪어보지 않고는 쉬이 상상되지 않는 인간상의 집합입니다.

 그간 지나온 나라들은 건축물이나 도시의 형태, 지형 등으로 저마다 고유했는데, 이곳은 사람과 문화가 매우 독특하고 고유합니다.


 낯설고 모든 것이 낙후된 땅이지만 걷는 것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지도를 보며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지도의 간격만으로 이동 시간과 거리를 짐작하며 갈 수 있습니다.

 지난 이탈리아 도보 여행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25km를 걸을 수 있었던 사실이 모든 걸음의 척도입니다.

 두 다리로 이겨낸 거리만큼 갈 수 있습니다.

 끝을 정해두지 않은 내 여행은 시간과 싸우지 않고 발을 딛는 모든 순간이 여행이 되므로 이것은 이동보다 여행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물론 여행에서 이동이 별개로 정의될 수 없지만, 아무튼 모든 순간이 여행에 속하기에 시간과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시간에 제약이 없다는 전제에서 걷는 것은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차는 차도로 기차는 철로 위를 달려야 하지만 두 발은 어디든 자유롭습니다.

 가장 느린 이동 방법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자세히 볼 수 있고 가고 서는 것에 자유롭습니다.

 몸을 지탱하고 땅을 밀어야 하는 다리와 짐을 지는 어깨, 더위에 신음하는 피부의 아우성을 감내하고,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은 욕심을 다독여야 하지만 어딘가로 곧장 직진하더라도 공간을 격하고 목적지로 이동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걷는 동안 끊임없이 주변을 보게 됩니다.

 크고 작은 짐을 짊어진 사람들은 끝없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수많은 릭샤 기사들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합니다.

 대지는 열기에 끓어오르지만 메마른 공기 탓인지 극심한 더위를 느끼진 않았습니다.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 여행의 대부분은 보는 것으로 이뤄진다.

 체험하고 참여하는 활동은 여행지의 하루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건축물과 사람들, 도시의 일상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는 여행, 시선의 여행에도 여러 형태가 있으나 내 경우 특정 명소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한 장소가 도시를 대표하거나 총체적인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장소의 모든 것을 최대한 보길 원하지만 이러한 탐욕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도 결코 완전히 만족할 수 없다.

 스무 살에 도착한 서울 땅도 몇 해를 보내고도 다 탐닉하지 못했다.

 시간은 늘 유한하고 그 유한함 속에서 어느 정도를 놓아야 하는 미학 아래 탐닉한다.

 우선순위를 헤아린다면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의식주는 어떤 형태인지를 대체로 먼저 궁금해한다.

 이것이 문화라는 단어로 총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그게 맞다면 내가 탐하는 것은 문화다.

 또렷한 형체가 없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지나치는 중에도 나는 그러한 것을 탐하며 눈에 담는다.


 여행자가 도시를 거니는 동안에도 거주민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주어지고 계획하고 받아들인 삶을 산다.

 여행자로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한계가 있고, 여행자는 엄연히 여행자일 뿐이어서 현지인들의 시선과 사고가 다르다.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도 다르다.

 나는 이방인일 뿐이다.

 대부분 여러 가지 형태로 스쳐 지나며 볼 수만 있다.

 일상을 사는 이들이 무엇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는 동안 여행자는 눈에 담는 것으로 여행을 채우려 하는데 본다는 것이 극에 달하기는 한없이 어렵다.




 버스에서 내린 후 한참 동안 황량한 땅과 노후된 건물들을 보며 걸었습니다.

 회전 교차로와 거대한 문을 지난 후부터는 중심가에 들어섰는지 사람들과 차들이 많습니다.

 외벽을 핑크색으로 두른 건물들이 도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섰는데 구글 지도에 핑크 시티라고 표기된 것 이유가 이것인 듯합니다.

 큰 도로변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은 시장이고 지붕 위로 꽤 많은 원숭이들이 무리 지어 뛰어다닙니다.

 어느 무리든 어른 원숭이가 앞장서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아기 원숭이들을 이끌었는데 아주 작은 원숭이조차 건물을 넘고 오르고 내리는 것에 능숙해서 다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좌우로 늘어선 건물마다 이동하는 원숭이들을 보는 재미가 꽤 대단했습니다.

 대지가 메마른 탓인지 도시 안에 서있는 나무는 몇 그루 없었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의 터전을 공유하며 지내는 것인가 하는 근거 없고 불필요한 생각을 하며 계속 눈으로 좇았습니다.

 시장은 여행자들을 위한 물품을 판매하는 곳과 거주자의 생활 용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크게 나뉘는 듯했습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가 현지 주민들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쉽게 상인들의 눈에 띄었고 많은 이들의 호객 행위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헤이 브라더", "마이 프렌드"

 붙잡는 모든 이들이 나를 형제나 친구로 여겼고 이방인을 대하는 이들의 넉살이 싫지 않았습니다.

 유쾌한 수다쟁이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가야 했기에 그들을 눈인사와 미소로 지나치고 현지인들의 일상을 눈에 담았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하와마할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도착의 여운을 즐깁니다.

 핑크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수없이 많은 창을 낸 다소 기괴한 건축물 하와마할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오기를 갈망하게 하고 감탄사를 내뱉게 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보편적인 것보다 조금은 특별하고 상징적인 건축물 혹은 또 하나의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에서 그 여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초자연적 현상과 세월로 빛은 자연의 경이로움과 달리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문명의 파편은 예술적 감각의 실현성과 노력에 감탄하게 되는데 하와마할은 그런 경이의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행은 총체적인 것의 집합이어서 사람들이 특별하다 말하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시간 안에서 저마다 특별함을 발견하고 간직합니다.

 어찌 됐건 나는 또 하나의 장소에 도착했다는 것에서 만족감과 안도감, 미묘한 흥분 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와마할 앞에 일렬로 늘어선 릭샤 기사들이 말을 걸어와 서로 아는 단어를 주고받으며 희희낙락 거리다가 해가 뉘어가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추천해 준 전망 좋은 카페로 올라갔습니다.

 건물 3층 옥상에 위치한 카페는 하와마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꽤나 전망이 좋았습니다.

 입장권을 끊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전면부를 보는 것이 더 좋을 듯했습니다.

 도심의 건물은 대부분 5층 높이 이하로 균일한 탓인지 시야에 가림이 없었고 덕분에 노을 지는 하늘이 높았습니다.

 계산대 앞에 섰으나 수중에 가진 돈이 부족해서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없었고 겨우 물 한 병을 사서 앉았습니다.

 부유하는 먼지를 마셔서 인지 하루 종일 ‘미안하다, 아니다’는 답변을 해서인지 목이 칼칼했습니다.

 인도 온 이후로 릭샤 기사들과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관심과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보겠나 싶어 불쾌하진 않았습니다.


 해가 뉘어가고 산들한 바람이 불어 이마를 간지럽힙니다.

 시장 건물의 지붕과 마찬가지로 하와마할의 지붕에도 원숭이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가장 높은 첨탑에 원숭이 한 마리가 석양을 보고 앉았습니다.

 궁전이라는 사람들의 성역은 동물들에게 통용되지 않습니다.

 나 역시 지는 해를 보고 앉아서 붉은 노을을 봅니다.

 잔뜩 엉킨 이어폰 줄을 가방에서 꺼내어 풀고 Andra Day의 <Rise up>, <City Burns> 두 곡을 틀었습니다.

 런던에서 만난 여행자가 일출 일몰 때 들어보라며 추천해 준 곡을 이곳 인도 자이푸르의 카페테라스에서 듣습니다.

 그는 내가 인도에서 이 곡을 듣게 될 줄 알았을까.

 유독 짙게 붉고 노란 노을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이 마음을 파고듭니다.

 내게는 겨우 20루피밖에 남지 않았고 점심을 잘 못 선택한 탓에 오늘 먹은 것이 없을 정도지만 그런 궁핍한 사실보다 이 순간에 노래를 들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몸이 가볍고 마음은 가득합니다.


 석양이 여전히 붉어 좋은 순간에 카페를 내려와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금세 어둠이 내려앉아 막연한 두려움 속에 걸어야 합니다.

 오래된 것은 아님에도 벌써 인도를 좋아하고 있지만 아직은 인도가 온전히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낯설고 조금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등 뒤로 해가 지는 동안 반대쪽 하늘은 파스텔 빛으로 물들었고 그 하늘엔 연이 떠있습니다.

 하나의 연이 눈에 띄고, 그다음엔 수십 개의 연이 곳곳의 하늘에 떠있음을 발견합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과 같습니다.

 연의 가녀린 실을 따라 시선을 지상으로 내리면 집 옥상마다 서서 팔을 흔드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빨갛고 파란 연을 띄우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용케 그 작은 공간에서 연을 띄워 올립니다.

 동네마다 가장 높은 연을 꿈꾸는 아이들의 즐거움이 노을 속에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었던가 하며 손을 뻗어 바람을 느껴봅니다.




 여행하는 동안 그런 것*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든다.

 *마음에 있는 욕심이나 티끌도, 내가 알게 모르게 써온 가면들과 경직된 많은 것들도.

 나라는 인간이 살아온 세월은 길지만 세계 여행자로서 나는 신생아처럼 갓 태어나 세상을 환호하고 있다.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세상이 놀이터란 것을 알 수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놀라워한다.

 상상과 현실이 수시로 융합되기 때문에 현실에 상상을 덧입혀서 그 나름의 놀이를 즐긴다.

 세계여행 중의 나도 그렇다.

 그냥 바라보는 풍경에도 상상을 덧입혀서 더 새롭고 아름답다 여긴다.




 지난 수개월의 여행 중 많은 돈을 사용했기에 되도록 최소한의 돈으로 여행하려 노력하는데 당장 수중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숙소로 가는 골목길에 ATM을 발견하고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다가갔습니다.

 수중에 큰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민 끝에 1,000루피를 인출했는데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20루피만 있을 때와 1,020루피가 있을 때의 마음이 다릅니다.

 어느 것이든 먹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저녁 식사메뉴는 어느새 가진 것에 맞는 메뉴로 바뀌었고, 어둠은 위험하고 몸은 피로하니 발품을 팔아 주변의 식당을 찾기보단 숙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좋겠다며 자기 합리화도 했습니다.

 숙소의 한 끼 식사는 200루피로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거리에서 사 먹는 것보다 저렴하진 않습니다.

 별거 없는 식사에 200루피를 지불하고 게걸스럽게 탐하는 한국 여행자가 신기했는지 주방장과 숙소 주인, 보안 담당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인도인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흥미롭게 여긴 일본 여행자도 다가와 질문을 건넵니다.

 숙소는 도시의 후미진 곳에 있고 밤과 함께 낯선 지역의 음산함이 내려앉았지만 이들 덕분에 밤이 무섭거나 적적하진 않았습니다.

 일본인과 한국인, 인도인이 타국의 언어(영어)를 빌려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서로 최선을 다해 의도한 바를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세 인도인의 두서없는 농담에 연방 웃음을 터트리다가 그들이 각자의 업무로 떠난 후에는 일본인과 서로의 여행기를 나눴습니다.

 어느 정도의 일정을 염두하며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나와 달리 그는 한 장소에 도착하면 하나의 숙소에 터를 잡고 몇 날 며칠 도시를 탐험했고 다음 도시로 이동할 준비를 마치면 그제야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단기 여행자들에 비해 시간의 제약 없이 충분히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의 여행이야 말로 시간을 자유롭게 유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근사하다는 내 말에 그는 쑥스럽게 웃었습니다.

 '본다'라는 것에 대한 내 생각과 방식에 그는 근사하다고 화답했고, 하루의 여행이 유별나지 않다는 내 말을 연신 중얼거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 여행은 특별하다는 말도 연거푸 따라 했습니다.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채워지니 나른함이 몰려왔습니다.

 전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한 것과 장시간 이동으로 인한 피로가 겹겹이 쌓여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오늘의 피로를 풀어야 내일의 여행도 할 수 있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한 남자아이가 내 방 안에서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일이 있었고, 나 역시 놀라 1층의 보안관에게 달려가는 소동이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서 가지고 갈 물건이나 귀중품이 없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침대로 가기 전에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보안관에게 주의를 요청했습니다.

 은은한 조명을 켜 두고 침대에 누우니 생각보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강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이불이 두 개나 되기 때문에 걱정이 덜합니다.

 전날처럼 창문을 열고 자진 않는지 한번 더 살펴보고 침대로 들어왔습니다.

 편지를 쓰기 위해 펼쳤던 노트북을 이제 닫습니다.

 어둠과 바람소리가 외로움으로 나를 덮치기 전에 잠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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