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섯 번째 편지
이른 아침 웅성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초점이 맞는 동안 꿈속의 나는 현실에 도달했고 곧장 꿈을 잊었다.
몸이 둔했으나 기지개를 켜는 동안 사지에 저릿함이 뻗은 후 곧장 유연해졌고 정신은 맑았다.
우습게도 찰나의 시간뒤 다시 수면욕을 느꼈다.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 무언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한번 더 눈을 떴을 땐 여덟 시였고 여전히 수면욕은 남아있었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순응하며 눈을 감았다.
이때 가장 곤한 잠을 잤다.
중력과는 별개로 무언가 온몸과 정신을 땅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나태하게 지났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모두 떠났다. 너도 집에 가야지"라고 외쳤다.
간밤에 몸 상태가 괜찮았고 걱정했던 탈수 증세도 오지 않았다.
몸이 회복을 원하며 곤한 잠을 잤나 보다.
부탁한 아침 식사 포장용기를 손에 들고 자이살메르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다.
같은 차 같은 인원인데도 사막에 올 때보다 실내는 여유롭다.
각자 사막에 무언가를 덜어낸 걸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내 안에 고요한 열기가 있었고 머리는 맑았으며 마음은 평화로웠다.
껍질을 벗긴 바나나를 입안에 넣으며 손을 차창 밖으로 뻗었다.
바람이 손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은 변함없이 맑았고 먼 곳까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넓은 대지는 황량하다.
인도에 온 후로 흐린 날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으나 먼지와 공기 오염으로 뿌옇던 것 외엔 늘 맑았다.
황량한 대지를 무념으로 바라보다가 무언가 떠오를듯한 간질거림이 있었고 오래전 듣던 노래를 생각해 냈다.
'푸른 양철 스쿠터-마이 앤트 메리'
이어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귀에 꽂았다.
노래는 기억을 담고 있어서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이 노래를 즐겨 듣던 해에도 열기가 그윽하고 머리는 맑았다.
부지런히 놀았고, 필요한 만큼 공부했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사랑을 했고, 미래를 쫓았다.
그때 내면의 평화는 쉴 틈 없이 전진함으로써 자연히 찾아온 것이었고, 지금은 멈춤으로써 얻은 것만이 다르다.
창밖을 보며 기억을 더듬는다.
언젠가 직장인이 된 현석이 형이
"그때 네 자취방에서 매일 모여서 수다 떨고, 야식 시켜 먹고, 게임하고, 새벽까지 놀다가 잠들던 그 시간이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좋았다"라고 했다.
누군가의 자취방에 모이는 일은 4년 동안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해 겨울은 유별났다.
2학년을 막 마치고 있었고, 우리는 삶의 어떤 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부터는 미래를 스스로 꾸려야 했고 4년이란 대학교 기간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마지막 카운트 다운이었다.
선배들이 말하길 1학년이란 수능을 마치고 군대 가기 전까지 시간으로 놀아야 하고 3학년부터는 취업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2학년은 공부는 해야 하지만 취업에는 자유로운 독특한 시기로 여겨졌다.
대학을 마칠 때 취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취업이 아닌 무언갈 택한 사람들은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내신, 수능, 대학교, 학과와 학점 그 모든 것의 종착점이 취업인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졸업하는 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취업 여부를 묻고 회사와 연봉을 궁금해했다.
어느 것도 누군가 정해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적 통념은 안정성이란 가치를 중심으로 관통하고 있었을 뿐이고 보편적이라거나 평균적이란 단어로 삶의 형태를 그려뒀을 뿐이다.
혼란스러워도 어찌 됐건 인생의 안정성을 위해 취업을 염두하는 게 좋았다.
선택은 언제나 열려있었지만 미지의 것이었고 내딛을 용기와 실패를 받아들일 담력과 무용해질지도 모를 시간의 받아들임을 필요로 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그 시기에 무엇을 하건 무용하지 않고 설령 얼마의 시간이 무용하게 흐르더라도 두려워할 것 없단 걸 알지만, 그때 내겐 시간의 무용함이 가장 두렵고 무거웠다.
아무튼 그런 고민과 조금은 떨어진 2학년의 밤에 자취방에 모여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다 보면 우린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거나 서로를 놀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2학년의 술자리에선 누구도 미래를 고민함으로 인해 아파하지 않았다.
사랑이 우리의 가장 큰 과제였고 이야깃거리였으며 사건 사고였다.
떠들고 웃다 보면 삶을 스치는 어떤 고민조차도 모두 사라지거나 미뤄졌다.
하룻밤은 우리끼리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넘었고 그런 날들을 반복하다 보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기간이 왔다.
미래를 딛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지만 왠지 무엇도 할 수 없었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수업시간이 찾아오기까지 시간의 공백 속 공허함이 문을 두드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모여 앉았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학기가 끝나는 것은 금방이었고 시간이 나를 앞으로 밀어 올리는 동안 나는 어디로 올라서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기대와 조바심이 뒤섞여 꿀렁이는 마음으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 길 위에 있는가를 물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그런 조바심을 달랠 수 있는 건 무언가 하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것이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기로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염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었다.
그래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탈력감을 느낄 만큼 내가 가진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
탐색과 내면의 질문이 멈출 때면 공부, 동아리, 사랑, 우정, 아르바이트 등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시간과 마음을 쏟았다.
시야는 좁았고 세상에 대한 지식은 얕았고 재정은 궁핍했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어린 나이의 여유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학자금 대출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덤덤했다.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좋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비로소 내가 내 삶을 짊어지는 듯한 기분에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로 선택함으로써 짊어져야 할 무언가를 부모님이 부담함으로 인해 그간 마음이 무거울 뿐이었다.
서울 사립 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이곳에 오기로 한 선택의 이유보다 심히 무거웠으므로.
따분한 수업 중의 하루는 길었지만 인생에서 나의 위치를 생각할 때의 하루는 짧았다.
길고 짧은 하루가 반복됐고 미래에 내가 감당할 몫이므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곧 별것 아니게 됐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이 왔다.
방학이 시작되던 기말고사 마지막 날,
모든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학생회관 앞에서 기다리던 그녀를 만났다.
헤어지자는 말에 담담히 알겠다고 답하고 돌아섰다.
군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던 겨울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3월 개강을 하고도 서울의 겨울은 여느 때처럼 길었지만 추운지 모르고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를 보내는 마음이 노란 개나리와 같고 옅게 붉은 벚꽃 같았다.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좋아했다.
잘 웃었고 쾌활하고 가끔 엉뚱해서 눈길이 가던 사람.
이전에 듣지 않던 음악, 보지 않던 문학, 모르던 서울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쓰기만 하던 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 사람을 만난 후부터다.
어느 곳에서나 자유로웠고 필요할 땐 자기주장을 하던 사람.
수없이 뱉던 헤어지자는 말의 이유는 매번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은 마침내 이별이었다.
길었던 시험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낸 몸과 마음에 탈력감이 가득했고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은 내면은 고요하고 티끌 없이 맑았다. 진심이었다.
말을 뱉은 건 당신인데 알겠다는 답변에 무너진 것도 당신이었다.
돌아서곤 뒤돌아 보지 않았고 마음은 담담했다.
방학이 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들이 위로를 핑계로 하나 둘 모이더니 겨우내 집은 청춘들의 아지트가 됐다.
아침부터 기사 자격증, 토익 등을 준비하던 이들도 밤이 되면 내 방으로 모여서 밤새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새벽에야 서로 살을 맞대고 잤다.
청춘에 눈이 빛나고 볼이 상기되던 이들은 취업 전선 앞에서 초라해졌다.
자신의 프로필에 대학과 학과, 동아리 활동, 누구나 가졌을 자격증 한 두 개를 적고 나면 손은 갈피를 잃었고, 500자 이내의 자기소개를 적다 보면 쉽게 스스로를 잃었다.
개인은 고유한 존재로 사랑스러웠으나 그곳에선 출발선 앞에 나란히 선 수많은 대한민국 청년 중 눈에 띄지 않는 지원자 1과 같았다.
하나라도 더 눈에 띄는 존재가 되기 위해 혹은 그런 이들과 발을 맞추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고 대외 활동을 준비했다.
늦은 밤 오늘은 치킨을 먹자며 메뉴를 정하고 집에 모여 앉으면 몇몇은 이전보다 안색이 좋지 않았고 술이 몇 잔 돌고서야 혈색이 돌아오고 입매가 느슨해졌다.
나보다 일 년 앞서 졸업해야 하는 형들이 특히 그랬다.
이전처럼 날마다 새로운 추억거리를 쌓지 못하는 탓에 하루의 이슈를 짧게 나누고 나면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또 했고 그것은 여전히 흥미롭고 우스웠다.
사랑은 여전히 큰 과제였기에 누군가의 짝사랑 이야기가 늘 마지막 화제였다.
그러다 아주 늦은 시간이 되면 술기운과 피로에 일제히 잠들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누군가 올려둔 난방의 뜨거움을 피해 좁은 침대 위로 어떻게든 몰려들었고 하나쯤은 반대편 구석에 빠지거나 걸쳐 있었다.
그땐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작은 방안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자면서도 서로의 온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외로운 타지 생활, 스스로 결정하고 걸어가야 하는 삶의 순간에 그만큼 온기가 필요했다.
아침 해가 뜨면 비틀 거리며 일어난 형들이 학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밥은 먹고 가라는 말에도 손을 내젓던 이들 뒤에 하얀 입김만 있었다.
자이살메르의 숙소로 돌아오자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내가 돌아왔다며 인사하며 옥상에 올라왔을 때 그제야 내 마음의 편안함이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기인한 감정임을 알았습니다.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에 마음이 환합니다.
상투적으로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수많은 인도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은 정말 가깝고 특별한 사이인 것 같은 정을 느낍니다.
미리 야간기차를 예매했기에 자이살메르에서 하루를 더 머물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들 좋은 숙소를 만나도 여행자는 떠나야 합니다.
기차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구태어 숙소를 떠나 도시를 돌아다니지 않고 옥상에 앉았습니다.
노래를 듣고, 대화를 나누고, 주방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 헤어짐의 시간이 왔습니다.
미소와 악수로써 아쉬움을 대신하고 숙소를 떠납니다.
친구들이여 안녕히.
여유 있게 도착한 기차역에서 콜라는 찾지 못한 채 양파맛 감자칩 한 봉지와 생수를 샀습니다.
콜라가 먹고 싶었습니다.
이전에 없던 일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빨간 캔 안의 검은 탄산을 마시고 싶습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급격히 갈망이 커집니다.
이런 내 변화가 당황스럽습니다.
탄산을 즐겨 마시지 않는 탓에 스스로 콜라가 먹고 싶던 적이 없었고 최근에 이런 갈망의 단초가 될만한 게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빨간 캔과 그 차가운 캔에 맺힌 물방울, 기포가 솟아오르는 검은색 음료, 진하고 달달한 맛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책 와일드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셰럴 스트레이드가 PCT종주 중에 무슨 음료를 이유 없이 먹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런 것인가 합니다.
승객이 많지 않아 좌석은 넉넉하고 내부는 청결했습니다.
주변에 앉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그들 역시 서로를 소개하면서 웃음이 번졌습니다.
이럴 때 서로의 수줍음이 좋습니다.
낮 기차는 창문을 열어두기 때문에 바람을 맞으며 갑니다.
길게 뻗은 도로 위에 푸른 양철 스쿠터를 타고 달린다는 상상을 하며 다시 한번 마이엔트메리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시간 특유의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맑고 좋은 날 해가 기우는 시간대에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야외 공연장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몸을 두드리는 엠프의 진동, 밴드의 연주, 스탠딩 마이크를 부여잡은 어느 가수.
저절로 연상되는 것들입니다.
'Ready, get set, go-페퍼톤스 워리어스 Live ver, Payphone-Maroon5' 등의 노래를 들으며 그런 감정을 풍족하게 느꼈습니다.
언젠가 한강변의 넓은 잔디밭에서 인디들의 무대를 보던 것이 내 안에 깊이 남아 그 느낌과 생각을 언제든 퍼올립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겨울 내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준비했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했다.
누구도 어떤 일을 더 배워서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거나, 어떤 사업가의 이념에 감동받아서 함께 회사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나의 스펙을 더 갖추려 했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연봉, 인지도 있는 회사에 들어가길 원했다.
목표를 두고 걷기보다 걸어온 길에 맞춰 회사와 부서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결심하기가 어려웠고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한 톨 흘림 없이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기에 서로의 조언은 공허했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그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었다.
이따금 마음이 무겁고 외로웠다.
내게는 취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어려웠다.
취업을 한다면 어느 회사의 어느 부서를 가려하는 이유가 적어도 내 안에 있어야 했다.
무작정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면 시간의 유용한 활용, 돈, 안정성 그런 것이 이유가 될 법했으나 그것만이 선택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선배들이 찾아와 동아리 회장직을 부탁했고 3학년의 시기임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또 한 번의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서 도서관에는 강의를 복습하거나 예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공과목이란 수업 중 이해된 경우가 드물었다.
열의 없이 흘러가는 지식과 질문하기 힘든 강의 환경에서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붙잡는 방법은 사전에 이해하고 다가가거나 일단 듣고 적고 녹음 한 뒤 스스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적합한 질문은 이해가 있어야 나올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 것조차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교수님은 질문 있는지 묻고 곧장 강의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아주 짧은 침묵만 있었다.
불과 2-3초 내에 의문을 정제하고 내뱉을 명석함이나 그 적막 속에 손을 들고 질문을 꺼낼 용기가 그땐 없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주변을 둘러보면 자체 휴강을 선택하고 자거나 창밖을 보며 수업 종료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결국 도서관에서 하는 것은 복습도 예습도 아닌 자습일 때가 많았다.
대학이란 과거의 힘든 노력으로 어렵게 들어오고 학자금을 납입함으로써 쉽게 졸업하는 것일까.
공부의 양은 많아지고 학점 4점 대의 준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내가 가진 지식은 아주 얕고 넓어서 조악한 수준이었다.
다방면의 지식을 폭넓게 배우는 게 이 학과의 특성인 듯했고 폭만큼 모든 것이 얕았다.
좁은 범위에서 깊게 파고들며 지식을 탐닉하는 학과를 이따금 부러워했다.
방법은 있었으나 학과 공부에 흥미가 붙지 않았고 자연히 지식은 깊어지지 않았다.
지식은 탐닉하지 않으나 열심히 공부했으므로 자연히 그 이유가 학점 관리가 됐다.
공부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지만 그런 노력의 이유가 지식 탐닉이 아닌 학점이란 사실이 이따금 나를 허탈하게 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기억에서 빨리 휘발되고 지식의 충만함으로 인한 즐거움을 얻기 힘들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 다음에 대학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을 준비했던 탓이다.
대학교는 누구나 가야 하는 것 그리고 직업으로 가는 계단 정도의 의미로 전락해 있었다.
배우는 지식과 수업 분위기와 환경,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태도는 대체로 지식의 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이란 신분을 유지해 주는 것만이 학교로부터 얻은 최고의 가치였고 그 안에서 나의 답을 찾기 위해 궁리할 따름이었다.
한 사람의 세상은 그 사람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으로 이뤄지는데 내가 경험한 것은 그러했고 모두에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다.
어떻게든 시간은 갔고 다시 겨울이 왔다.
그 해 내내 분주했던 탓에 별다른 잡념도 불안감도 없었다.
늘 머리는 맑고 마음은 평화로웠다.
그때까지 나는 어떤 모험도 하지 않았으므로 사회가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틀 안에 있었다.
엄마는 내가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믿었다.
저녁 10시 50분 기차가 조드푸르 역에 도착했다.
역 인근에는 기차 시간에 맞춰 몰려든 릭샤 기사들과 주전부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고 그들의 호객행위를 환영으로 받아들이며 별다른 생각 없이 숙소까지 걷기 시작했다.
낯선 도시의 밤은 달갑지 않지만 늦은 저녁임에도 일하는 상인들과 분주히 오가는 누군가의 존재가 위로된다.
지도와 거리를 번갈아 보며 숙소 근처 시장 골목에 들어섰을 땐 아무도 없었다.
괜스레 경직된 몸의 변화를 느끼며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다시 한번 낯선 지역의 밤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숙소로 향하는 길은 하나였고 좁아지는 길목 끝에서 눈을 들었을 때 여기저기에 누워있던 열두어 마리의 개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몇몇은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놀라게 하거나 물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해한 존재인 것처럼 그들 사이를 이전과 같은 속도로 걸어간다.
고개만을 든 채 나를 바라보는 개가 있었고 일으키던 몸을 다시 누이는 개도 있었다.
그들을 지나 다음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잔뜩 경직된 근육과 식은땀으로 서늘한 신체를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도에서 얼마 안 남은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을 미리 전달받은 직원이 입구에서 반갑게 맞아주며 곧장 방을 안내했다.
1층 안쪽에 방은 아늑했고 침구에선 은은한 향이 났다.
비로소 모든 경계심이 몸 안에서 사라지며 힘을 뺀다.
보금자리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꽤나 만족스러운 숙소를 둘러보고 서둘러 샤워를 한 뒤 하루를 마무리한다.
허기지지만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