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지혜학교, 철학교육 이야기 16화] 지혜학교의 학생 자치 활동2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학기에 들어오면서 지존최강이라는 큰 실험은 막을 내렸다. 학교의 모습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주어진 삼시세끼 식사와 저녁 간식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실험은 지혜학교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1. 지존최강 진행 과정
지난 15화에서 이야기했듯이 지존최강은 몇 가지 규칙을 바탕으로 2024년 4월 8일(월)부터 시행되었다. ① 생활관 내 화기사용 금지, ② 식수 인원 유지, ③ 배달 음식 금지, ④ 교사회의 2/3 이상이 동의하면 즉시 중단할 수 있다. ⑤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⑥ 공공장소에서 냄새나는 음식물 취식 불가, ⑦ 수업 중 교사의 허락 없이 음식물 취식 불가 (6, 7번은 뒤늦게 추가되었다.)
매주 모여서 지존최강 진행과 관련하여 소감을 나누고, 보완점, 논의거리들을 쏟아냈다. 응당 그렇듯이 추상적인 규칙은 구체적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여러 문제들 중에서 꽤나 심각한 것은 화기 사용의 문제였다. 5월 경에는 ‘화기사용 금지 규칙에서 전기포트도 화기에 포함되는가’를 둘러 싸고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서 입씨름이 평평하게 벌어 지기도 했다. 라면을 데울 뜨거운 물이 언제나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지존최강의 실험을 담보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 확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에 교사들은 안전상의 문제로 강력하게 거부했다.
두 달이 지나자 학생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여러 가지였는데, 무엇보다 매주 모여서 지존최강의 상황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점검 회의를 반복하는 일에 지쳤다. 앞에서 이끌어 가는 학생회 임원 학생들은 전체 학생들이 지존최강의 실험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은채 눈 앞의 간식이 가져다 주는 만족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서 지쳤다. 학생회 임원들의 뒤에서 따라가는 많은 학생들은 매번 모여서 비슷한 의견들이 쏟아지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엇하나 해결되는 것도 없는, 어정쩡한 상황에 지쳤다.
“지금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고 식수 인원도 줄고 생활관 내 위생도 떨어지고 있는데 생활관 자치회와 같이 고민해야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야지 이를 바탕으로 규칙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항상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안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6월 3일, 지존최강 회의록 중)
더 힘든 일은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존최강 실험을 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일단 뒤로 미루어 두었던 문제들이 쑥쑥 불거져 나왔으며,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일들이 점차 쌓여 가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사실상 학생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월요일에 지존최강을 하는 주체인 학생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생활관 선생님께서 하셨는데, 이후에 바로 관련된 논의가 되지 않아 의아했다. 또한 계속해서 (의견 수렴을 쉽게 하자는 취지에서) 구글폼으로만 설문을 받는 점, 설문 내용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 지존최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팀이 구성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 제기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지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 등 여러 문제들이 많다. 물론 학생들은 지존최강을 진행하는 주체이다. 하지만 막상 학생들에게 어떤 규칙을 보완하고 추가해야 하는지 온라인 설문과 회의 시간에 물으면 의견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6월 14일, 지존최강 회의록 중)
마침내 7월에 들어섰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지존최강 실험을 지속할지, 중단할지를 논의하자는 의견이 올라왔다. 이번 실험은 ‘실패했다’는 매서운 평가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솔직히 매주 진행하는 피드백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규칙을 찾고 만들기 위해 경험하고 협의하는 과정에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좋은 의견이 나와도 투표로 정하고 득표 수가 적으면 기각한다. 학생들은 그냥 자유롭게 라면이나 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좋은 의견이 나와도 반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고 해도 그 규칙을 잘 따를까? 의문이 든다. 학생들 중에 지존최강에 취지에 맞게 생각하며 음식을 먹는 사람은 내 주변에는 없었다.
지금 지존최강이 얼마나 취지에 맞게 진행이 된지 모르겠다. 규칙을 만들면서 거기에 맞는 데이터가 쌓였는지 궁금하다. 모두가 피드백에 열심히 참여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끝내면 뭘 얻었는지 모를 것 같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해도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1학기에서 일단 끝내고 지존최강에서의 여러 내용들을 방학에 정리를 한 후 2학기에서는 이후 논의만 진행해야 할 것 같다.
▲ 지존최강 회의 장면 교사와 학생들은 매주 강당에 모여 자신들의 생활에 대해 다양한 방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혜학교
한편에서는 지존최강 실험을 하면서 “교사회에 대한 기대치, 학생회에 대한 기대치.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학생이 지존최강의 취지를 충분히 알고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독였다. 여름 방학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혜학교의 총학생회장은 이렇게 떠올렸다.
“지존최강이 시작하고, 내가 배고플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눈을 비비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짜릿한 일이었습니다. 배가 부르니 생활할 때도 덜 예민해지고, 머리도 잘 돌아가더군요. 이 점 만큼은 지존최강을 하면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저는 지존최강을 진행하는 입장이니 만큼 그 의도와 취지를 제대로 실현해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습니다. 학생회장으로서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어느덧 막연히 마무리 되기만을 바라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관심도 저조와 이런 저런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지존최강의 열정이 하향곡선을 띠는 것을 보고 아쉽기도 했습니다.”
2. 교사회의 실험 중단 선언과 그 이후
여름방학에 들어가면서 지존최강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사그라 들어버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이다. 학생들이 패기있게 시작한 지존최강의 실험이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비록 이렇게 중단하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들은 이른바 ‘출구전략’을 고민했다. 여름방학 중 길고 뜨거운 논의 끝에, 4번 규칙 “교사회의 2/3 이상이 동의하면 즉시 중단할 수 있다”에 따라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지존최강 중단’을 선언했다.
교사들이 지존최강을 중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움의 공간에서 학생의 건강을 담보로 실험을 지속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둘째, 학생들 제시한 개혁안이 지혜학교 먹거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셋째, 2학기에 지존최강을 지속할 수 있는 집단의지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넷째, 학생 자치 활동이 지존최강에 매몰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 지존최강 이후 우리 공동체에 던져진 문제의식과 질문들이 가장 중요한 성과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지존최강의 최종 성패가 판가름 날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질문들이 제출되어 공동체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공론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학생들은, 앞에서는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뒤에서는 학생들 자신이 지존최강의 취지를 더 이상 살릴 힘이 없다는 점을 떠올리며 좌절했다. 교사들은 이런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며, ‘이렇게 실험은 중단했지만 이번 실험이 남긴 숙제들을 함께 풀어 나가자’고 손을 잡았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간식, 즉 초가공식품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서는 막고 다른 쪽에서는 요구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초가공식품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다 같이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전문가를 모시고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모여 ‘식품첨가물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괴로워 했다고 한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어. 모르면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있을텐데, 이제는 아는 채로 괴로워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잖아!’
이제 학생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것은 없다. 어떤 학생들은 허기와 욕망을 달래기 위해 ‘쿠킹클래스’(자율부엌)에서 있는 식재료를 활용해서 스스로 만들어 먹거나 교사들이 이따금씩 만들어 주는 간식을 쫓아 다니고, 어떤 학생들은 생활관 구석에서 몰래 간식들을 먹고 있다. 그 와중에도 특강 시간에 들었던 아질산칼륨, 식용염화칼슘, 소르빈산칼륨 따위를 떠올리며 흠칫 주저할 것이다.
▲ 밤을 줍는 학생들 지혜학교 학생들이 인근 숲에서 간식으로 먹을 밤을 줍고 있다. ⓒ 지혜학교
학생들이 한 학기 내내 뜨겁게 채웠던 회의 공간에는 이제 교사(5명)와 학부모(2명), 학생(3명)들이 오붓하게 둘러 앉았다. 지존최강이 남긴 숙제들을 이제 학교의 3주체(교사, 학생, 학부모)가 떠안고 학교 먹거리 정책을 점검하고 다듬어가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시간을 두고 자신이 떠난 자리를 되돌아보며 2024년 봄에 과감하게 뛰어들었던 그 실험의 의미를 물을 것이다.
아직 진행 중인 이 실험을 세세히 평가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다만, 지금 당장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학생의 삶의 터전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 학생 자치는 상상할 수 없다는 점. 학생 자치에 특정한 ‘성공’이란 따로 없으며, 지난한 노력의 연속일 뿐이라는 점. 이 과정에서 (지혜학교의 어느 교사가 이야기 했듯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불편하고 불만족스럽다면, 바꾸어 말해 각자 자신만의 성취와 그 의미를 확인하면서 활동이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점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더 나아가, 교사와 학부모가 뒷짐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학생 자치만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 ‘학생 자치’는 사실상 ‘학교 자치’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만 활짝 꽃피울 수 있다는 점. 이 과정에서 학생의 배움과 삶은 따로 나뉘지 않고 교사와 학부모가 여기에 서로 풍성하게 얽혀 들어간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겠다. 이렇게 지혜학교의 학생 자치를 보듬은 학교 자치는 차근차근 이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