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2022) 리뷰
실존 인물을, 그것도 세간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연기하기란 비단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와 함께 인생의 한순간을 지나왔다면 더더욱 그럴 수 있겠다. 이러한 연유로 배역을 고사하기도 하고 각고의 고민을 했던 순간이 있었지만, 촬영 직전 배역의 이름을 ‘김운범’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김대중’을 연기한 설경구 배우와 실존 인물의 선거 참모진이었던 ‘엄창록’을 연기한 이선균 배우의 영화 <킹메이커>가 지난주 개봉했다.
영화 <킹메이커>는 1963년 목포시 국회의원 선거부터 1967년 총선, 1970년 대통령 후보 경선 그리고 제7대 대통령 선거까지 김운범과 함께했던 선거 전략가 서창대의 이야기다. 도덕적이며 정의로운 김운범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뜻을 품지만 연이어 선거에 낙선한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듣고 뜻을 함께하고자 결심한 서창대는 그의 선거 캠프에 들어가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판도를 바꾼다. 상대방이 지저분하게 나오니, 나 역시도 그렇게 응수해야 이길 수 있으며 이겨야지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결과론자’인 서창대의 전략에 따라 김운범은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한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의 자리까지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서게 된다.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김운범의 대의와 정의에 따라 그의 그림자처럼 지내던 서창대였지만, 김운범이 점점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더 이상 그림자로 남고 싶지 않은 그의 욕망도 점점 커져 간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서창대의 마음은 ‘거의 다 왔다’ 생각할수록 더 조급해진다. 하지만 김운범은 여전히 자신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 취급을 하며 곁을 내주지 않는다. 분명 ‘우리’라는 이름으로 그와 같은 꿈을 꾼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창대의 입장에선 답답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려주었는데, 여전히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는 울화와 서러움, 더 나아가 원망의 감정을 갖는 서창대의 감정선이 그려진다.
<킹메이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의 씨네21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대목이 있다.
<킹메이커>의 감정이란, 결국 창대의 감정일 것 같은데…. (고민하다가) 멋있게 표현 안 하겠다. 좋아하면 잘 삐지잖나. 보통 다른 사람한테는 삐지지 않을 문제도 좋아하는 사람에겐 삐지는 이유가 된다. <불한당>의 경우, 설경구 선배가 시완이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하고 썼다면 <킹메이커>에선 창대가 운범을 더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인정 욕구도 있는 창대가 운범에게 삐진 거다. 그런 창대를 운범은 철저히 인정해주지 않았고.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닌 두 사람의 ‘관계의 영화’라고 칭할 정도로 이 영화는 김운범이라는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서창대라는 캐릭터에 더 집중한 영화라 볼 수 있다. 서창대에게 ‘공천’과 같은 정치적 욕망보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김운범’의 승리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를 승리시켜야지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쓸모있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가볍게 이야기하면 ‘덕질’을 하는 대상인 스타를 위해 투표를 하고 기사를 공유하는 팬들의 마음은 자신의 덕질 대상이 누구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서창대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김운범의 승리를 곧 자신의 승리로 여길 수 있는 그 마음은 덕질 대상인 김운범에게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음과 동시에 순수한 애정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본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 사람을 닮고자 노력하거나 혹은 그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창대에게 ‘김운범 덕질’은 유한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존경하고 애정했던 김운범의 옆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지만 태생부터가 다른 이북 출신 서창대는 자신의 덕질 대상과 자신이 동일시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지난한 실패보다는 수단을 가리지 않은 성공을 원하는 자신과 또 한 번의 실패를 선택한 김운범의 결정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애써 외면했지만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서창대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더러운 네거티브 방식으로 남을 비방하고 깎아내리는 전략을 취한 서창대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과 우려도 있지만, 이러한 비교가 되는 인물 군상을 보여 줌으로써 또 한 번 지는 방식을 택한 다음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의 대의와 정의를 지켜 민주적인 대통령이 되었다는 김운범의 선택이 더 무겁고 가치롭게 느껴진다. 때로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킹메이커>의 메시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과정을 한두 번은 무시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중심을 잃지 말라는 것 아닐까. 여전히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중요한지 확실히 답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올바른 과정을 통해 조금 늦게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정의’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