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성식 Sep 04. 2019

[A-5]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독일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알아보자

[5]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 독일의 기업지배구조


엔론(Enron)이라는 에너지기업이 있었다. 미국에서 7 번째로 큰 대기업이었고,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지에 의해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6번이나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의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로 꼽히기도 했고, 하여튼 여러 매체로부터 가장 잘 나가는 회사로 수도 없이 꼽혔었다.

엔론의 창업자 케네스 레이

엔론을 창업한 케네스 레이(Kenneth Lay)는 이 회사의 이사회 회장이면서 대표이사(CEO)였고, 당시 미국 대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기업인이었다. 그는 분식회계에 의한 사기죄로 24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다음 달(2006년 6월)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그의 후임자로서 그와 함께 2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제프리 스킬링(Jeffrey Skilling)은 그 후 항소심에서 감형되어, 최근에 만기 출소했다고 한다. 출소 후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플랫폼 회사의 설립이라고 외신은 전한다. 명예 회복인지 더러운 욕망의 때가 아직 덜 벗겨졌는지 두고 볼 일이다. 참, 스킬링은 레이가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로부터 스카우트한 인물이었다. 야심차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모여든다는 그 회사 말이다.

2001년 그 동안 회사가 저지른 분식회계(회계장부 조작) 사실이 발각되어 결국 파산했는데, 이 사건은 규모면에서 그때까지 미국 경제계가 경험하지 못했던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이런 희대의 스캔들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집권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단행한 전력에너지 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클린턴 정부는 다시 규제를 강화했지만,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또다시 규제를 풀어버렸다(우리나라의 부동산 재건축 시장도 노태우, 김영삼 정부때 규제를 풀었다가 90년대 재건축 시장이 폭발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규제를 강화했고, 다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규제를 풀고, 다시 문재인 정부는 강화하고...). 우리에게도 너무나 낯익은 풍경, 단어들이다: 규제 완화, 시장에서의 무한경쟁, 불로소득, 분식회계, 거짓으로 포장된 허명에 대한 열광 등등.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으로 21,000 여명의 엔론사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아 앤더슨(Arthur Andersen)이라는 세계적인 회계컨설팅법인이 문을 닫았다.

이 사건 이전까지는 회계컨설팅법인이 한 회사의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컨설팅까지 하면서, 동시에 그 회사의 외부(회계)감사까지 수행했는데, 엔론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회계법인은 회계컨설팅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기업의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회계법인이 그 회사의 회계장부를 작성하고, 회계컨설팅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불과 20년 전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회계법인(Accounting Firm)과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에도 모 회사의 분식회계로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데, 여하튼 기업과 회계법인의 책임성(Accountability)이 사회적으로 좀 더 강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로 산동회계법인 등이 문을 닫았다.

엔론 사태를 계기로 미국은 2002년 사베인즈-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을 제정하여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독립성 강화, 기업의 내부통제 강화 및 투자자 보호 등을 한층 엄격하게 만들었다.


엔론사의 이사회 장이 케네스 레이였다. 엔론사의 대표이사(CEO)도 케네스 레이가 맡고 있다.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감독해야 할 이사회의 회장(의장)을 대표이사가 겸직하고 있는 것을  수 있다. 포춘지 선정 미국 20대 대기업의 67%(2013년)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바람직할까?


기업지배구조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란, 넓게는 기업이라는 경제활동의 단위를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들간 관계를 조정하는 매커니즘을 말한다. 여기에는 주주,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등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정부까지 포함된다. 다소 좁은 의미로는 주주총회와 이사회간의 권한배분 문제를 말하며, 가장 좁은 의미로는 경영자 통제 매커니즘을 가리킨다. 실무적으로는 최고경영진과 이사회간의 관계, 주주와 이사회간의 관계, 회사와 주주 및 임직원들간의 관계, 회사와 자본시장간의 관계, 그리고 회사와 사회 및 국가간의 관계 등과 같은 제반 측면을 최적의 상태로 정비함으로써 기업경영의 효율을 높이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며, 분쟁을 방지하게 하는 지식과 경험의 체계로 정의할 수 있다(김화진,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금융, 2012).


여기에서는 기업의 의사결정기구들 사이의 권한배분의 문제로 그 의미를 한정해서 쓰면서 독일 기업과 미국 기업의 차이점을 언급해 보려고 한다.


영미식의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인 주주 모델(shareholder model)에 대(對)한 개념으로서 독일의 기업지배구조는 이해관계자 모델(stakeholder model)을 취한다고 말한다. 이해관계자란, 주주 이외에 회사와 경제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회사의 영향을 받는 경제주체들을 말한다. 한때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로까지 인식되던 주주 모델은 주주가치 극대화 전략(주주의 재무적 이익 극대화)을 추구하며, 자본시장을 통한 자본조달, 그리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경영효율성을 강조하는 모델이다.


반면에, 이해관계자 모델은 장기적인 관계를 가지는 기업 내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기업의 운영은 주주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행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기업은 이윤만 추구해서는 안되고, 사회적 책임도 다 해야 한다. 미국식 주주모델에서는 주주들 단기적 이익지나치게 추구고, 경영자 본인의 지위 및 연봉 역시 단기적인 성과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장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경영은 항상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독일식 이해관계자모델은 단기적 성과 위주의 경영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경영이 가능하고, 이해관계자들간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이 조정되며, 주요 이해관계자로서 주거래 은행의 경영감시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경영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주주의 이익이 경시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주주모델 또는 이해관계자모델 중 어느 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영자의 행동을 통해 표출되는 기업의 행동과 국가의 기업정책이 달라진다. 종업원들의 입지도 달라지므로 이는 정치 프로세스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김화진, 2012).


독일 기업의 이원제 이사회 구조


우리나라와 미국 기업의 경우는 일원제 이사회의 구조를 가진다. 즉, 이사회(board of directors) 가 실질적으로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된다. 이에 반해 독일 기업은 이원제 이사회의 구조(two-tier board system 혹은 dual board system)를 가진다. 이런 구조를 가진 국가는 독일 이외에 오스트리아, 스위스, 네덜란드가 있다.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관리를 담당하는 경영이사회(managing board)와 기업의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며, 경영이사회를 감독하고, 그리고 경영이사회 이사에 대한 임면(임명과 면직) 권한을 갖는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가 있다. 따라서 독일 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가 경영이사회(Vorstand)의 상위기관이 된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및 이원제 이사회제도의 개념도(자체 작성)

감독이사회의 이사는 경영이사회의 이사가 될 수 없고, 경영이사회의 이사 또한 감독이사회의 이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감독이사회의 이사는 (종업원 대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업 외부의 인사로 채워진다. 우리나라(미국식)의 이사회 제도와 일견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어서 독일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굳이 매칭을 시켜 본다면, 독일기업의 감독이사회가 우리 식의 이사회의 역할을 하고, 경영이사회는 우리나라 주식회사의 경영진(CEO, COO, CFO 등)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하기가 용이할 것도 같다.


어떤 구조가 더 바람직한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사회가 경영진의 업무 집행을 감독한다는 취지를 강조한다면 양자를 분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회사가 주주들의 단기적인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영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종업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경영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데,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co-determination regime)이다. 그래서 다음 글은 자연스럽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 대 이야기가 되겠다. 회사 안에서 횡행하는 황당한 갑질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SNS 등에 글을 올리는 등 분개해 마지 않는데, 이런 갑질이 사회에서 예사로 행해지도록 만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들이 없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도 전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역시 제도의 문제이니까.



<다음 글>

[6]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