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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식 Sep 06. 2019

[A-6]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6]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상시 300 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19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고 있다. 상시 50 인 이상 300 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그리고 상시 5 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21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에 해 오던 관리방식이 바뀌어야 하므로, 입법 예고에 따라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 왔을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만약 어떤 회사의 상시 노동자 수가 299 명이면, 이 회사의 경우 올해에는 주 52시간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노동1 명에 따라 법 적용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사실 가벼운 사안은 아니.


따라서 노동자 수를 산정하는 방식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  노동자 수의 산정에 관해서는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나와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노동법을 공부해 보신 분은 알겠지만, 주 40 시간, 월 109 시간, 또는 탄력적 근로시간 적용 시 연장근로수당 산정 등 제법 까다로운 산수가 법 규정에 많이 등장한다.


당신이 말하는 이상은 이상인가? 초과인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공동결정법과 사업장기본법이라는 두 개의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이전 글 5.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독일 공동결정제도 및 이원제 이사회제도의 개념도’ 참고). 공동결정법에 따라 감독이사회 이사를 노사간에 어떻게 배분하는지에 관한 사항을, 그리고 사업장기본법에 따라 사업장협의회의 권한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제도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노동자 수를 산정하는 방법에 관해 알아보자. 노동자 수에 따라 이 법들이 적용되거나,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자료에서 오류가 계속 반복되기에, 2007년 출간한 졸저 ‘독일 노동법 실무’에서 이에 관해 설명 해 놓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이를 널리 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지금 현재도 여전히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portalkorea.com/index.php

노동자 수를 계산할 때는 그 사안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이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인지 혹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인지를 우선 구별해야 한다.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에서의 노동자 수는 ‘주당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정한다. 해고제한법 제23조 제1항과 민법 제622조 제5항에 관련 규정이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20 시간 이하인 (단시간)노동자는 0.5 명으로 계산하고, 30 시간 이하인 (단시간)노동자는 0.75 명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주당 노동시간이 20 시간인 노동자와 30 시간인 노동자 2명이 있다면, 노동자 수를 계산할 때 2 명이 아니라 1.25 명으로 계산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노동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식의 산정방식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인터넷으로 국내 사이트의 자료를 찾아보면, ‘독일에서는 상시 종업원 10 명 이상인 회사에는 해고제한법이 적용된다’고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해고제한법에 따르면, 상시 노동자가 '10 명'이면 해고제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독일의 관련 규정은 어떻고 또 이를 소개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의 해고제한법은 노동자가 10 명을 초과하는 사업장 또는 회사(의 근속연수 6 개월 이상인 노동자)에 적용된다’고 하거나, 혹은 '이상'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면, ‘10.25 명 이상인 사업장 또는 회사에 적용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복하지만, 노동자가 10 명인 사업장에는 해고제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10명을 초과한다고 해서, 우리 식으로 11명 이상의 사업장 또는 회사에 적용된다고 번역했다면, 그것 또한 오류라는 건 위에서 설명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사업장 또는 회사'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복잡해지므로 나누어서)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에서의 노동자 수는 주당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원수(headcount)로 계산한다. 공동결정법이 적용되는 회사는 상시 노동자 수가 2,000 명을 초과하는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2,000 명을 초과하는 회사라고 표현하거나, 혹은 2,001 명 이상의 회사라고 기술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 이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독일어(mehr als ~)와 영어(more than ~)에서는 ‘~ 보다 많은(초과하는)’ 이라는 표현을 쓰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오류이다.

이미지 출처: http://wechat.pe.kr/bbs/board.php?bo_table=wisdom&wr_id=20

아직도 독일에 있을 적 일이었으니, 대략 10 년 전 신문기사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 기업이 독일의 기어 제조회사를 인수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회사의 노동자 수가 500 명을 약간 초과했는데, 만약 그 상태에서 회사를 인수했다면, 독일의 ‘1/3 참가법(설명 후술)’에 따라 감독이사회의 1/3을 노동자 측 대표로 구성해야 했을 것이다. 외국 기업이 독일 기업을 M&A 할 경우, 만약 이런 경우라면 노동자 수를 500 명 이하로 조정해서 인수하려고 협상할 것이다. 공동결정제도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 기업에게는 독일의 경영관리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협력적인 노사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기업에게, 독일법에 따라 구성되는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를 관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일텐데(90년대에 삼성전자의 독일 현지법인이 벌였던 몰상식을 상기해 보라),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1/3이나 참여한다면, 아니 그런 내용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그 기업을 인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관련된 노동법을 잘 알아야 하겠지만, 노동자 수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공동결정제도


좀 복잡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제도에 관해 공부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복잡하다. 독일에서는 모든 제도를 설계할 때 비어있는 부분이 없이 촘촘하게 규정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점이 우리와 비교되어서 늘 부럽다.


대충 설계해 놓아도 사람들이 '당연히' 규정을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듬성듬성 제도를 설계하는 것과, 틈이 보이면 사람들은 그 틈을 통해 빠져나가려는 유혹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고, 촘촘하게 규정을 설계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을 더 잘 이해한 것일까? 꼭 인간의 심성을 나쁘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사회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또 해결책을 찾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되도록이면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구성하고 있는 법률은 아래와 같다.


1951년 제정된 몬탄공동결정법: 광산 채굴업, 제철 및 철강업을 주로 영위하는 상시 종업원 1,000 명을 초과하는 주식회사와 유한회사는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1956년 제정된 몬탄공동결정법 보완법률: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을 지배하는 회사(지주회사)에 적용된다.

1976년 제정된 공동결정법: 상시 종업원이 2,000 명을 초과하는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에 적용된다.

 2004년에 제정된 1/3-참여법: 공동결정법(1976)의 적용을 받지 않는, 상시 종업원 501 명 이상 2,000 명 이하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상호보험조합 및 협동조합은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 법은 원래 사업장기본법에 규정되어 있던 것이 떨어져 나와 2004년에 별도로 제정되었다.

1952년 제정된 사업장기본법: (사업장협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권이 있는) 상시 종업원 5 명 이상의 사업장에 구성되는 사업장협의회의 구성을 규정한 법이다. 1972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었다.


위 법률 중에서 몬탄공동결정법은 석탄 산업의 퇴조와 함께 그 중요성이 많이 퇴색해 졌다. 따라서 좀 더 압축해서 정리하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co-dertermination regime)는 1976년 제정된 공동결정법과 1/3-참여법을 한 축으로 하고(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라고 한다), 1952년에 제정되고 1972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된 사업장기본법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사업장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라고 한다)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라고 부를 때에는 이 두 가지 차원의 공동결정제도 모두를 말하는 것이지, 1976년에 제정된 공동결정법에 따른 제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번 더 강조해 둔다.


(번역)

•   노동자, 근로자, 종업원은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   Betriebsverfassungsgesetz 의 번역은 사업장기본법으로 하였다.

•   Betriebsrat 의 번역은 사업장협의회로 하였다.

•   Betriebsvereinbarung 의 번역은 사업장협약(단체협약에 對하여)으로 하였다.



<다음 글>

[7] 종업원대표이사제와 노동이사제, 그게 그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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