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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식 Aug 19. 2021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다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부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를 전면 도입하자는 합의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졌고, 이어 국회에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노동이사제를 맨 처음 도입한 서울시는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근로자(노동)이사제 도입 사례집(백서)”에서 이 제도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의 법률 개정안 발의를 계기로, 서울시가 벤치마킹했다는 독일 제도의 원형은 어떠한 것인지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1.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자본에 대한 참가, 이익에 대한 참가, 그리고 의사결정에 대한 참가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의사결정에 대한 노동자의 경영참가 제도로서, 기업 차원과 사업장 차원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구성을 노사 동수(또는 1/3 대 2/3)로 강제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인데, 몬탄공동결정법(1951), 공동결정법(1976) 그리고 1/3-경영참여법(2004)으로 규율되고 있다. 


사업장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개별 사업장에서 사업장평의회(Betriebsrat)를 설립하여 노동자의 경여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사업장기본법(1952)으로 규율된다. 



1) 감독이사회의 구성


몬탄공동결정법(Montan-Mitbestimmungsgesetz)과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이 규정하고 있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에 관하여 살펴보자. 먼저 각각의 법이 적용되는 대상 기업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광산채굴업 및 철강업을 주로 영위하는 상시 근로자 1,001명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이고, 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2,001명 이상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이다. 그리고 1/3-경영참여법(Drittelbeteiligungsgesetz)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501명 이상 그리고 2,000명 이하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상호보험조합 및 협동조합이다. 


독일 기업의 감독이사회는 앞의 두 법에 따라 노사 동수로 그 구성이 강제된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노와 사가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감독이사회에서 경영이사회의 한 멤버인, 노동이사(Arbeitsdirektor)를 선임하는데, 앞의 두 법은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후술). 또한 1/3-경영참여법에 따라, 상시 근로자가 501명 ~ 2000명인 경우 감독이사회의 노동자 측 이사는 1/2이 아니라, 1/3이 배분된다. 한 가지 언급할 점은, 이때 노동자 측의 몫으로 배분된 감독이사회의 이사를 노동이사(Arbeitsdirektor)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이사이다.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른 감독이사회의 구성


몬탄공동결정법(1951)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경영학에서는 주로 종업원이란 용어를, 노동법에서는 근로자 또는 노동자란 용어를 쓰는데, 여기서는 혼용해서 쓴다) 수가 1,000명을 초과하는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이사의 수가 11명인데, 이 중 5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 측 이사들이고, 5명은 노동자 측 이사,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중립적 인사가 선임된다. 그리고 5명의 노동자 측 이사 중에서 2명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 중에서 사업장평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선출하며, 해당 기업이 속한 (산별)노조 및 그 상급단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되고, 나머지 3명은 노조의 상급단체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역시 사업장평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정하게 된다. 감독이사회 이사의 수는 납입자본의 크기에 따라 15명, 21명으로 점점 늘어나게 된다. 


감독이사회 구성을 노사 동수로 강제하고, 종업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이사의 선임을 규정한 몬탄공동결정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전쟁 수행에 협력했던 중공업 분야의 거대기업(주로 루르 지역의 철강산업)들에 대한 해체 및 정리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종전 후 연합국은 이 거대기업들의 자산을 몰수하고 해체 과정을 거쳐 23 개의 제철공장으로 분할하게 되는데, 이 공장들의 감독이사회의 구성을 노사 동수로 강제하도록 합의가 된 것이다.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라 일부 산업에 속하는 기업에게만 적용되던 공동결정제도는, 1976년 산업의 제한없이 모든 기업으로 적용을 확대하는 공동결정법의 제정을 통해 ‘공동결정제도 하면 독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게 된다. 


공동결정법에 따른 감독이사회의 구성


공동결정법(1976)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 수가 2,000명을 초과하고 10,000명 이하인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이사의 수가 12명인데, 이 중 6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 측 이사들이고, 나머지 6명은 노조 추천의 2명과 해당 기업의 사업장평의회 위원 4명이 선임된다. 종업원 수가 늘어남에 따라 감독이사회 이사의 수는 16명, 20명으로 점점 늘어나게 된다.

 

감독이사회에서의 통상적인 결의는 먼저 단순과반수로 표결하고, 그 결과가 가부 동수일 경우 재차 표결하며, 이 또한 가부 동수일 경우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이처럼 독일 대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서는 노동자 측의 목소리가 주주 측의 목소리와 동일한 비중으로 반영되긴 하지만, 의사결정시 노사간 첨예한 대립으로 발생하는 가부 동수의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감독이사회의 의장이 2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법에 규정함으로써, 결국엔 주주 측의 이해가 더 반영되는 구조이다.

 

감독이사회는 분기별로 최소 1회 이상 개최되어, 경영이사회의 각 이사들로부터 경영관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소관 영역에 대해 보고를 받음으로써 경영이사회를 관리 감독한다.

 

2) 기업 내 꼬마헌법, 사업장기본법과 사업장평의회


사업장평의회의 모태는 1920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제정된 사업장평의회법(Betriebsrätegesetz)이다. 이 법은 나치 정권 하에서 폐지되었다가, 이 후 과도 법률을 거쳐 1952년 사업장기본법으로 재탄생하게 되었고, 1972년 대대적인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떠 받치고 있는 2개의 기둥 중 하나인 사업장평의회를 통한 경영참여는 사업장기본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그 구성, 운영 및 권한이 규정되어 있다. 사업장기본법 제1조 제1항에 따라 선거권 있는 종업원이 5명 이상(이 중 3명 이상이 피선거권 있는 종업원이어야 하며,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 여부는 불문)인 사업장에서는 사업장평의회를 설립할 수 있다. 강제 사항은 아니고 원하면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큰 사업장의 경우, 예외 없이 사업장평의회가 설립되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사업장기본법 제4장(제74조~제113조)의 내용은 이 법의 핵심적인 것으로서, 인사와 관련된 사안, 사회적인 사안 및 회사 경영에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 단순한 정보권에서부터 협의권, 이의제기권, 거부권 및 강제적 공동결정권까지 근로자의 경영참여권(Beteiligungsrecht)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공동결정권(Mitbestimmungsrecht)이 부여된 사안에 대해서는 사업장평의회의 사전 동의가 없는 한 사용자는 이 사안을 단독으로 시행할 수 없다. 특히 법 제87조에 이러한 사안을 열거해 두고 있는데, 이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 간에 우리의 취업규칙과 유사한 사업장협약(Betriebsvereinbarung)을 다수 체결하여 운용하게 된다. 사업장협약은 사업장기본법상 사업장평의회에게 부여된 공동결정권을 개별 기업 내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다.


알다시피, 독일의 기업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기업 외부에서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가(경우에 따라서는 개별기업이)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근로조건을 합의하고, 기업 내부에서는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가 단체협약상의 임금 기타 근로조건을 최저 기준으로 삼아, 공동결정권이 부여된 사안에 관하여 사업장협약(Betriebsvereinbarung)을 다수 체결함으로써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노사가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업장에서 경영참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사업장기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업장평의회의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디폴트 값은 ‘협력’과 ‘평화’이다. 사업장평의회는 사내에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사업장 내에서는 평화롭고 협력적인 분위기에서 경영참여를 하라는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경영참여권이라는 강력한 권한도 함께 부여하고 있다. 사업장기본법 제74조에서 노와 사의 협력의무와 평화의무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감독이사회에서의 종업원대표의 경영참여와 사업장평의회에 부여된 경영참여권이 ‘한 세트’가 되어 운용되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최고 상층부에서, 다른 하나는 노동 현장인 사업장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 이원적 이사회제도


우리와 달리 독일 기업에서는 이사회가 이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이사회(Vorstand)와 그 경영이사회를 관리감독하고, 경영이사회의 이사를 임면하는 권한을 가지며, 회사의 중장기 전략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로 구성된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네덜란드 등이 이러한 이원적 이사회제도(Two-tier Board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1) 경영이사회의 구성과 역할


경영이사회도 감독이사회와 마찬가지로 필요적 상설기관으로서 합의체(kollegiale Führung)이다. 경영이사회에서의 (보통)결의는 단순과반수로서 행해진다. 위에서 경영이사회의 이사는 감독이사회에서 선임된다고 하였다. 노동이사(Arbeitsdirektor)는 위에서 언급한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에 따라 감독이사회가 임명하는 이사로서, 경영이사회의 여러 이사들 중의 한 명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선관의무 등). 

경영이사회의 이사는 분기별로 최소 1회 이상 개최되는 감독이사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맡은 소관영역에 대해 보고를 함으로써 관리감독을 받고, 감독이사회 이사와 함께 정기주총에서 해당연도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면책(책임해제)을 받음으로써 한 회계연도를 마무리하게 된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별 경영관리 영역은, 주식회사 정관의 임의적 기재사항인 경영이사회 이사의 업무분담규정(Geschäftsordnung)에 따라 나누어진다. 경영이사회의 이사 중 한 명인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로서 감독이사회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의 이해와 고충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정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업원을 독려하기도 해야 한다. 회사가 종업원에게 요구하는 것과 종업원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최적의 조합으로 조율하는 역할과 함께, 경영이사회에서 인사노무관리에 관한 전문가로서 다른 경영이사회 이사들에게 자문역할을 하면서 인사노무에 관한 전략을 기업 전체의 전략에 정렬하여 수립 및 운용해야 한다. 


2) 노동이사의 선임 절차


몬탄공동결정법(1951)에 따르면,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의 노동자 측 이사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선임될 수 없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이 적용되는 기업에서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이 적용되는 회사의 노동이사와는 달리, 종업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법적 의무가 부과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몬탄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 절차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의 노동자 측 이사가 표결로서 선임한다. 실무에서, 노동이사는 노조 또는 사업장평의회가 추천하고, 사업장평의회 또는 노조가 교차로 동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공동결정법(1976)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는 좀 더 까다롭다. 감독이사회 이사에 의한 1차 표결에서 부결되면, 감독이사회의 의장, 부의장, 노측 이사 1인 및 사측 이사 1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여기서 재차 표결하고, 다시 가부 동수일 경우에는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결정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노조 친화적인 노동이사는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 대상 기업에서 그러하고,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의 노동이사는 더 이상 노동친화적 요인이 노동이사 선임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인사노무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이 선임의 결정기준이 된다. 6-70년대 광산업 및 철강업의 퇴조로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대상 기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현재 대다수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노동이사들이며, 주로 직함도 인사담당임원(Personalvorstand)이다. 슈뢰더 총리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어젠다 2010”을 실무적으로 이끌었고, 한국도 몇 차례 방문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페터 하르츠(Peter Hartz) 위원장이 바로 폴크스바겐(VW)의 노동이사 출신이다. 


4. 나가며


실사구시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사실에 토대를 두어 공리공론에 치우치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라고 한다. 필자는 다른 해석을 지지하는 편인데, 그것은 “사(事)를 실(實)하고, 시(是)를 구(求)한다’이다. 실사(實事)란 제대로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그리고 구시(求是)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파악하고, 개념 정의를 정확하게 내린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노동이사라는 명칭은 독일에 특유한 이원적 이사회제도에서 경영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중 한 명을 말한다. 우리가 도입하려고 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종업원대표이사제 혹은 근로자대표이사제,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자이사제라고 하는 것이 좀 더 그 의미가 명확할 것이다. 물론 용어야 우리가 우리 특성에 맞게 만들면 그만이지만, 독일 제도를 벤치마킹했다고 하니 혼동을 줄 여지가 있는 용어는 구분해서 쓰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내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통합된 전체(unified whole)로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을 구성하는 개별 제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개별 제도들이 통합된 전체로서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모습을 또한 망원경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노사관계에 있어서 독일의 관련 제도를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일을 제대로 완성해 내기 위해서는, 그 제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구시(求是)를 가장 우선시하고 또한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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