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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시음회 Nov 18. 2022

보물

[금요시음회]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요즘 아이들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소풍 날이면 보물찾기를 했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눈에 불을 켜고, 혈안이 되어서 종이쪼가리를 찾아다녔다. 일 등을 놓친 적은 없었다. 양손에 가득한 종이들, 나는 찾지 못한 친구에게 선뜻 종이를 내어주는 아이였다. 남이 가진 보물도 뺏고야 마는 해적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지. 가진 자의 여유였을까. 내 손에 쥔 선물은 하나면 충분했다. 이 게임에서 나에게 보물이란, 내 손에 쥐어진 선물이었을까. 꼬깃한 종이 쪼가리였을까. 헷갈리곤 했다.

 

    학교에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쟁취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였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도 그랬다.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린 시절의 보물찾기처럼 몸을 더 부지런히 놀린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나는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바늘구멍 같은 목표를 향해 친구들은 코피를 쏟고 잠을 팔았다. 돌아보면 내가 입시 전선에서 스스로 발을 돌린 이유가 실은 종이쪼가리 하나도 가지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까봐. 그런 내게 실망할까봐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없어서 그랬구나, 이제와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진 게 많지 않은 사람은 의미 부여에 능하게 된다. 하지 않은 이유, 선택하지 않은 이유. 반대로 저걸 꼭 가져야 하는 이유, 저게 꼭 가지고 싶은 이유.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 타당성만 부여하다가 지쳐버린다. 쉽게 이뤄지는 건 당연히 없고, 매정하지만 결과가 노력과 언제나 상응할 순 없다. 욕심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 데다, 마침내 무언가 손에 쥐게 되었어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한다. 허탈하고 허망하고. 말로에는 결국 다른 보상을 바라게 되기도 한다.

  

사이트 가입할 때마다 우리는 만만한 질문 하나를 만난다.  


“ 당신의 보물 1호는 ? “ 


     가족이 보물이라는 뻔한 대답을 적고야 말았던 건, 내가 너무 가진 게 없어서, 아니 이룬 게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스스로 바로 서지 못해서. 실제로 내 삶의 지분 가운데 가족은 여전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 엄마아빠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지만, 아이 둘을 둔 엄마가 된 지금도 낮 밤으로 번갈아 전화를 주시며 내 몸과 마음을 살핀다. 그리고 덜 자란 나는 그들의 걱정이 싫지 않다. 외려 가족의 사랑과 위로에 너무 익숙한 인간인 내가 약간 싫어진다.

     내 가족에게 천착하고 의지하며 살아온 나는 빚쟁이나 다를 바가 없다. 가족에게 진 빚은 꼭 복리로 더해져서 엄마아빠의 주름이 늘어날수록 나는 볼품없이 가난해진다. 언제 다 갚지, 받아온 마음들을 죽기 전에는 갚을 수 있나 싶고. 그래서 내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만 하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 부모처럼은 못 해줄 것 같아. 그래서일까. 나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고, 조금 더 주체적이고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이기적이게도 욕심낸다.

 

     가끔 엄마에게 말한다. 나중에 애들이 손주 봐달라고 하면 솔직히 겁날 것 같아. 나는 그런 말도못했는데 엄마가 선뜻 나서줘서 늘 고마워. 우리 부부의 평화가 엄마아빠로부터 온다는 걸 잊지 않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과연 그래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고 그러면 엄마는 그때쯤 돼선 나라가 해줘야지 ! 불같이 화를 낸다. 

너는 꼭 네 인생을 살라고.

  

     내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누군가 네 보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의 중심이 온전히 '나'에게서 기인하는 어른으로 선우와 준우가 자랐으면 한다. 


     그렇지만 홀로 오뚝이처럼 살다가 힘들고 지쳐서 너덜거릴 땐 다시금 하나가 되기도 하는 거라고. 언제든 와서 쉬어도 좋다고 말해줄 것이다. 사람은 비빌 구석이나 편히 누울 자리 같은 게 내 속에 적어도 한 평쯤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한데, 그 자리가 꼭 우리였음 한다고. 그리고 그게 전혀 부담이 아니길 바란다고도 전할 것이다. 


     쏟는 마음을 돌려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섭섭해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소년과 나는 더욱 돈독히 지낸다. 적당한 결핍은 아이를 성장시킨다는 말을 굳게 믿으며 가끔 우리는 무심한 부모가 되기도, 이따금 정 없이 굴기도 한다.

     아이들이 살면서 우리에게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아가 우리 몸을 걱정케 하는 일도 없어야겠지. 그래서 우리는 건강을 챙기고, 벌써 노후 계획을 세운다. 

     한해 두 해 더해갈수록 참 어른이 되는 일은 더욱 어렵기만 하다.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란 자고로 몸도 마음도 죽어가기만 하니까. 퇴보하는 일만 남았으니까.


     보물을 묻는 질문에 가족이 아닌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의 나에게는 상상조차 어렵다. 실은 부럽기까지 하다. 앞으로 내 꿈은 더욱 독립적인 인간으로 나이 먹기. 그래서 먼 미래에 나에게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내가 소년도 아니라 오롯이 ‘나’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할머니는 아이들을 어서 빨리 키워두고 예쁘게 좀 다니고, 바깥에서 일도 하며 살라고 나를 볼 때마다 말씀하신다. 그러는 자기는 일흔도 넘어서야 혼자 살기 시작했으면서. 옅고 얇은 입술로 나처럼은 살지 말라고 말할 때마다 내 여정은 더욱 짙고 두터워진다.


     그녀들이 찾지 못했던 보물을 나는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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