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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시음회 Feb 16. 2023

가현의 <머물러요, 이곳에서>

#1. 404호



   아홉 시도 안 되어서 고요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나 일찍 잠이 들다니. 아이들은 보통 아홉시 반에서 열 시 사이에 잠드니까 삼십 분 정도 꽁으로 얻었다. 미역국을 먹지 않아도, 케이크를 자르지 않아도 괜찮은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 선물인가 싶어 산뜻한 기분이 된 찰나 두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 소년의 코골이가 들려온다. 그러면 그렇지.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다.


   널따란 거실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막내(태어난 지 오십일이 채 되지 않았음)가 아직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나는 졸린 기운을 만들어 놓고선 노트북을 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입과 손과 몸뚱이가 더러워진 아이를 씻겨야 하므로 부엌 정리는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갈 젖꼭지를 빨고 있는 소리가 귓가에 머무는 걸 보니 때가 이르다. 어떤 날 물소리는 기가 막힌 백색소음이 되어주고, 어느 밤 물소리는 어마 무시한 소음이 되니까. 싱크대 앞에 선 나는 절반의 확률을 가진 패에 배팅해야만 한다. 성공의 여부로 밤사이의 평화가 결정된다.


   정해둔 당번은 없지만, 식사 후에는 커튼을 친다. 우리 집은 사 층. 거실 창으로부터 멀찌감치 서서 밖을 바라보면 가까이에는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로 둥지, 둥지를 오가는 새가 앉아 있고, 저 멀리 낮은 산이 보인다. 산 중턱에는 절이 있는데, 절을 품고 있는 주변의 광경으로 계절을 실감해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지붕이 하이얀 눈이 오래도록 쌓여있었다. 고가 도로도 보이는데,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는 밤낮이 없다. 구급차가 부산스레 빛을 내며 달려가는 새벽이면 나는, 남편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자연히 생각하였다.


    창으로 다가가면 흐르는 천과 단지 내에 놀이터를 내려다볼 수 있다. 여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도록 해.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없다) 사랑스러운 말을 남기고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가만히 창가에 서서 오래오래 내려다보았다. 바라보고 있을 때면 울컥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눈물의 염도는 감정에 따라서 달라진다던데, 아마도 내 건 옅고 단맛이 났을 것이다.


   누군가 쳐둔 커튼을 걷어냈다. 보통은 밤새도록 거두지 않는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반년이 넘게 붙여져 있던 포스터도 떼어냈다. 귀여운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것 하나, 아이가 좋아하는 상어들이 묘사된 것 하나. 그 위에 둘째가 연필로 크레용으로 그려둔 낙서가 가득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첫째가 그것을 발견하곤 이거 누가 한 짓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조심히 뗀다고 했는데도 결국 찢어졌다. 어차피 다음 집에는 가져갈 수 없을 텐데 왜 이리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떼어냈지. 병이다.


   가려져 있던 곳이 적잖았는지, 바깥이 훤해진 기분이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뭐든 칠흑같이 어둡고. 즐비한 가로등은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꼿꼿이 제 할 일을 한다. 좋다고 자부했던 시력이 어느 날부터 차츰 떨어져 난시인 채로 살게 됐다. 눈이 나빠져서 좋은 점은 뭐든 또렷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낭만은 덤이었다. 뿌옇게 번진 빛을 보고 있자면, 빛이 글썽이는 것 같고. 괜시리 따뜻해지곤 하였다. 


   전동 드릴도 없이 이 커다란 창을 가리는 커튼을 달아보겠다며 남편과 의자에 올라가 한참을 낑낑, 또 낄낄댔다. 삼십 센티 차이나는 우리가 이 미션에서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달아둔 것이었다. 제법 마음에 들었다. 안방에는 커튼을 여전히 달지 못했다. 마음에 들었던 커튼의 천이 단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그만한 걸 찾지 못해 그냥 없이 살았다. 이면 창에 남서향인 우리 집 오후 내내 해가 드는 가을이 무려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이었다.


   놀이터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 보면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커튼을 달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우리는 잠시 벌거벗은 채로 거실을 오가기도 했다. 누군가 우리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순 없고, 앞으로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여태 살았다. (안방에 작은 발코니가 있는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집에 처음 발들인 날. 한겨울인데도 깊숙하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니, 온몸을 휘감았다. 보일러를 후끈하게 돌려두신 걸까. 살아보니 아니더라. 종일 쏟아지는 빛으로 가득한 멋진 집이었다. 그간 내가 살아온 곳은 어두컴컴하거나 창틀이 헐거워져 냉기가 들이치곤 했다. 나는 빛을 싫어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는데, 아니었나 봐. 그냥 이 정도의 온도를 누려본 적이 없던 것이리라. 이래서 사람들이 볕이 잘 드는 집이 좋다고 하는 구나, 싶었다. 비단 나만 이리 생각한 건 아니었다. 너무 다르고, 어딘가 비슷해 부부가 된 우리는, 이 집에 머무르는 노란 빛에 압도되어 이곳에 머물기로 한다.


   없는 살림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친정에서 첫 신접살림을 꾸린 우리였다. 짐은 고작 파란색 일 톤 트럭 하나에 채워졌다. 평생의 벗을 만나고도 이제야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그 말인즉슨 살 것투성이란 소리였다. 육아로 휴직을 시작한 나와 이제 막 입사를 한 소년이 얼마나 변변찮았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신상 가전은 물론 성한 가구를 마련할 돈도 마땅치 않았다. 모았다고도 할 수 없는 쥐꼬리만 한 돈으로 우리는 찔끔찔끔 집을 채워갈 수 있었다.



   비로소 시작, 진정한 독립이었다. 



   너른 거실에서 쏟아지는 볕을 작은 두 발로 아장아장 걸어가며 느끼라고 소파도 두지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리는 내리 집에 머물렀다. 거실에 커다란 토퍼를 깔아두고선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맨몸으로 이부자리 위를 뒹굴었다. 소년이 출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창가에 매달려 피어나는 꽃나무를 세며 봄을 맞고, 꽃이 떨어지고 먼 산이 푸르러지면 여름인 걸, 가로수가 빨갛게 노랗게 달아오르고 천에 우리 가족이 등장하면 비로소 가을, 놀이터가 온통 하이얀 색깔이 되면 겨울이란 걸 아이들은 알게 되었다. 거실 창에 액자처럼 걸린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꼭대기에 훨훨 백로가 앉는 아침이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도.


   어, 잠시 아이들에게 가봐야겠다. 자다 깬 아이가 또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있다.


   선우는 두려움을 배우고 있는 만 다섯 살. 설거지를 하다말고 달려가 아이의 등을 두드려 준다. 캄캄한 밤 중에 크게 외치면 잠자는 동물 친구들도, 아가들도 깬다고 알려줬잖아. 엄마 왔으니 진정해보자. 날 선 목소리로 부탁하는 내게 울다가 만 채로 이야기한다. 엄마 왜 손이 차가워 ? 괜찮은거야 ? 내가 만져줄게. 따뜻한 어린이로 자란 것 같지.

   내가 그다지 좋은 엄마가 아니란 걸 알고 있으므로 아이의 다정함은 이 집이 만들어 준거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며 공간의 힘을 더욱 믿게 됐다.

   아이들도 아이들인데, 우리야말로 404호에게서 안정을 선물 받았다. 특히나 소년은 더욱 느꼈을 것이다. 떠도는 유년이었으니. 돌아갈 곳 없는 생이었으니. 나는 이곳에서 불면을 고쳤고, 소년은 역마살을 잃었다. 여덟 시간, 독립 전까지 딱 잠자는 시간만 집에 머물던 소년이었다.

   삶을 지탱하던 불안과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시절 병원에서 그랬다. 본인을 식물이다 생각하시고, 하루에 한 시간은 꼭 햇살이 있는 곳에서 광합성 해보세요. 햇님의 온정일까. 이제 불행에 의지하지 않아도 똑똑히 두 발로 설 수 있다.


   부모님이 이사 갈 집에 처음 가던 날. 짐이 다 빠진 거실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그려진 낙서를 보았다. 78. 83. 86. 97. 105. 111. 120. 132. 숫자 옆에 그어진 형형색색의 선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장성한 두 형제가 자라는 동안 남겨둔 흔적일 테다. 리모델링을 위해 그쪽의 벽지를 떼어내며 감히 이걸 내 손으로 정리해도 되는 걸까 저릿한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추억을 지워내는 기분이 들어서.

   404호에도 당근과 동굴과 바다가 있다. 가구를 옮기다가 까진 벽지를 아가 선우가 야금야금 뜯어냈다. 마침내 기다란 세모가 되었기에 내가 초록 머리숱을 만들어 준 기억이 난다. 준우가 고장 나   작동하지 않는 빌트인 오븐 속으로 조명을 받으며 들어가는 장면. 욕실의 욕조가 아이에게 너무 커서 무용지물이었는데. 어느새 커졌는지 물 한가득 받아두고 우리는 아이 해달이에요, 어푸어푸 수영하는 모습까지.


촘촘한 기억들이 캄캄한 집을 걸을 때마다 스위치 켠 것처럼 훤히 밝게 떠오른다.


   누군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순간이라고 답했다. 너무 나쁘거나 정말 좋아서 뚜렷하게 새겨진 날은 꼬리처럼 기다란 불안이 따라다녔으므로. 


   집의 모서리, 흠집난 바닥이나 유리창에 남겨진 작은 손바닥들. 살짝 열어둔 방문으로 새어나오는 귀여운 소리와 커튼 뒤에서 만드는 마르고 기다란 그림자. 세 개의 방과 세 개의 발코니. 거실과 부엌 마디마디 일상 속에 너무도 자잘한, 생각하려면 잘 떠오르지 않는 하루 이틀로 여기 가득 채워져 있다. 


   울부짖으며 뒹굴던 바닥은 나쁜 날을 기억할 텐데. 원목 마루는 틈새로 먹어버린 내 눈물의 맛을 분명 알 텐데. 떠나는 마당이라 그런 건 새까맣게 잊었나. 나고 자란 집을 떠나던 형제의 눈동자, 그들의 엄마가 흘렸던 눈물을 기억한다. 지금 나도 두고 가기 아쉽다는 생각만 든다.

고마웠다, 고 적다가 불현듯 빌고 싶은 소원이 생겨 몸을 일으켰다.


   ‘ 행복은 바라지도 않아요. 죽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감히 제게 주세요. ’ 


   기도하던 나는 404호에 온 후로 더는 나를 위한 생일 소원을 빌지 않는다. 행복하거든. 셋으로 들어온 이 집에서 삼 년 만에 다섯이 되어 나가니 말 다했다. 살았다. 정말 잘 살았다. 남부럽지 않게, 열렬하게. 이 공간을, 이토록 뜨거운 곳에서 사랑을 했다.


   좋아하는 곳의 좋아하는 부분을 발견하며 오래도록 머물기를 좋아하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영영 내가 누울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남은 삶이 채워질 것이다. 그래도 긴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흔적을 지우는 일은, 낙서를 지우거나 벽의 포스터를 떼어내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고, 여간 아쉬우니까. 


   그래서 안녕, 이제 702호로 간다. 볕이 조금 덜 들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이니 되었다. 사실은,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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