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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Dec 28. 2023

겨울 물놀이,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겨울 제주 호캉스

우여곡절 끝에 호텔 방에 입성했다. 지친 남편과 아이들은 침대에 누웠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 축하용 케이크를 사러 길을 나섰다. 신화월드의 지하에는 식당과 프리미엄 아웃렛 등 쇼핑몰이 있고 각 호텔도 이 쇼핑몰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쇼핑몰을 걸어 베이커리에 가서 조각케이크 두 조각과 와인 한 병을 샀다.

딸기 케이크와 망고 케이크


이젠 우리가 여행 온 목적을 이룰 차례다.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운을 걸치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입구로 입장하면 '스카이풀'이라는 야외 수영장이 먼저 나오고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워터파크다. 여름이라면 야외와 실내 워터파크를 함께 운영하여 많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겨울이다 보니 실내 워터파크만 이용할 수 있었다.


실내 워터파크는 조촐했다.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며 한 바퀴 돌 수 있는 유수풀, 아주 얕고 따뜻한 유아풀, 트램펄린처럼 뛰면서 슬라이딩할 수 있는 곳, 튜브를 타고 슬라이드 탈 수 있는 곳. 이렇게 네 군데다. 우리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게 다야?"라고 말했지만 이내 유수풀에서 신나게 잘 놀았다. 유수풀에 떠다니는 투명 튜브를 잡고 유수풀에 둥둥 떠있다 보니 편안하고 참 좋았다.


슬라이드를 타러 계단에 올라갔다. 줄이 길어 계단에 서 있어야 했는데, 축축한 물기 때문에 많이 추웠다. 우리는 기다리며 "기다리는 게 추워서 또는 못 타겠네."라고 말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2~4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슬라이드라 나와 아이 둘이 탔다. (스릴을 질색하는 남편은 아래에서 대기) 아이들 앞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타려고 했으나, '아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뒤로 가다 보니 슬라이드의 길이 안 보여서 더욱 무섭고 짜릿했다. 정말 재밌어서 또 타고 싶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추워서 그만 탔다. 이 날은 한 번에 그쳤지만 다음날 오픈런으로 왔을 때 사람이 없어서 실컷 탈 수 있었다.


워터파크에서 놀다 보니 우리 아이들과 같은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이 많았다. 둘째가 예리하게 물었다.

"엄마, 우리랑 수영복이 같은 애들이 많아. 왜 그런 거야?"

"그건 말이지. 쿠팡 로켓 배송에서 팔기 때문이야. 너희들 긴팔 래시가드가 없어서 엄마도 여행 오기 전에 급하게 샀거든. 사람들도 그런가 봐."    

있는 수영복을 입히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이 가진 수영복이 짧은 수영복이란 생각이 퍼뜩 들어 긴 래시가드를 급히 주문했었다.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워터파크에서 놀 땐 그나마 많이 춥지 않았는데, 야외 수영장으로 갔더니 추위가 살벌하게 느껴졌다. 아이들 감기가 깨끗이 낫지 않아 찬 공기를 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남편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해볼 건 다 해보는 게 좋지 않냐는 나의 입장이 달랐지만, 큰 갈등은 없었다. 목소리 큰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바람에 남편은 자신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소심한 저항을 할 뿐이었다.

(결국 큰아이는 잠잠하던 기침이 다시 도졌다. 흑!)

 

정말 춥고 따뜻했다.

공기는 찼지만 물이 많이 따뜻했다. 얼굴은 찬 공기를 쐬고, 몸은 뜨끈함에 녹는 기분이 색다르고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노천 온천을 하나 싶었다.


야외 수영장에선 조금만 놀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큰아이는 종아리에 쥐가 났다. 유수풀에서 튜브 없이 뛰어다녀서 종아리가 많이 긴장된 데다 극한 추위에 근육이 놀란 것이다. 물기를 잘 닦아주고 가운을 입혀 객실까지 걷게 하는데 아이가 너무 아파했다. 중간중간 남편이 아이 종아리를 주물러줬는데 건드리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는 통에 오래 주무를 수 없었다. 40kg가 넘는 아이를 안고 갈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방에 와서 남편이 다시 아이 종아리를 열심히 주물러줬다. 다행히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쥐 난 종아리가 풀렸다.

"이젠 안 아파요."

"아빠가 주물러줘서 풀린 거야."

"아닌데요. 따뜻한 물로 샤워해서 풀린 건데요."

아이의 말에 남편은 빈정 상하고 말았다.

   

저녁은 테마파크 근처 고깃집에서 먹었다. 한라산 소주도 맛보았다. 솔직히 소주의 세세한 맛 구분은 전혀 못하지만 그래도 제주도에 왔으니까! 리조트에 갇혀(?) 제주도 토속 음식은 못 먹을지언정 내가 한라산 소주는 마셔야겠다.

포식하고 방에 와서 캐럴을 틀어놓고 케이크와 와인을 또 먹었다. 케이크에 초를 밝히고 다 같이 촛불을 끄고 촛불 끄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건넬 생각이었는데, 케이크를 사면서 초를 안 받아왔다. 카드도 집에서 미리 써놨는데 챙겨 오질 않았다.


아이들은 케이크를 몇 입 먹더니 캐럴은 이제 끄고 유튜브에서 '흔한 남매'를 틀어달라고 하였다. '흔한 남매'를 보는 아이들 표정이 이 날 본 표정 중에 가장 밝다. 케이크고 뭐고 유튜브가 최고다.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따뜻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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