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한 저녁. 해가 저물어 어둡지만 아직 깜깜하지는 않은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하던가. 낮과 밤의 경계를 이루는 시간은 왠지 모르게 싱숭생숭하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무렵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음식 냄새가 풍겨 온다. 가정에서 묻어오는 냄새인지, 식당에서 불어오는 냄새인지 알 길은 없다.
이 시간에 풍겨 오는 냄새에 나는 옛날 중국 기숙사에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 시간이면 나는 저녁을 먹으러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에 식당이 없었으므로 나는 교내 학생식당이나 학교 근처 식당을 찾아 나섰다. 오늘은 혼자 또 뭘 먹지, 고민하는 발걸음이 무거우면서도 설렜다. 메뉴도 잘 모르고 중국어도 버벅거려서 늘 심란했지만,한편으론새롭게 도전하는 게 기대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먹어본 메뉴들은 하나같이 다 맛이 좋았다. 토마토계란볶음,징쟝로쓰(춘장 양념 채 썬 고기), 궁바오지딩(닭고기 땅콩 볶음)등. 내가 선택한 메뉴들은 비싸지 않은 가정식 반찬들이었다. 여러 종류를 먹어보고 싶어도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밥과 반찬 하나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물만두(교자)를 근(斤) 단위로 시켜야 해서 애먹었던 기억도 있다. 한 근에 몇 개가 나오는지 알 수 있어야지. 정확히기억은 안 나지만 반 근을 시켜서 먹었던 것 같다.
토마토계란볶음,징쟝로쓰
궁바오지딩, 교자(물만두)
훗날에 룸메이트와 친구들이생겨서쓸쓸한 저녁은 중국에 도착하고 처음 한두 달 뿐이었으나, 그때의 복합적인 감정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배고프고 심란하고 우울하고 나 자신이 루저 같은데, 또 설레고 기대되고 재밌고 맛있고 배부르고 뭔가 하나 해냈다는 뿌듯함. 그리하여 오늘 같은 저녁 공기를 만나면 여지없이 옛 기억이 소환되곤 하는 것이다.
오늘 오전에 정기검진을 했는데 나의 몸무게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최근에 부쩍 몸이 무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언제 이리 쪘지? 이러다가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겠는데, 생각하는 순간 떠올랐다.
그래. 내 인생 최고 몸무게는 중국 어학연수 시절이었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던 날, 엄마는 둥글둥글 후덕해진 나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었다.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뭐가 가장 먹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인생 최고 몸무게 도달까지 2킬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식욕이 떨어지는 어스름한 저녁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