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중 반이 경상도 출신이다. 이들은 서울에 올라온 지 꽤 되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그래서지방 출신인지 서울 출신인지에 대해 평상시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에 팀원들과 함께 컵라면을 먹고 나서 대화하던 중 경상도에서는 '졸리다'는 말을 안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리다'고 하면 귀여운 척하는 것 같고 애교 부리는 것 같아서 영 불편하게 들린다고. 그 대신 '잠 온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팀원 한 명이 부산에 내려가서 친구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졸리다는 말을 썼다가 친구에게 맞을 뻔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우, 졸려. 졸리다. 안 졸려요?"라며 경상도 출신 팀원들을 자극했다.
경상도에서는 '~했니?'라는 말을 쓰면 큰일 난다는 얘기까지 이어졌다. 재수 없다고 욕먹기 딱 십상이란다. 이건 경상도 출신이 아니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중학교까지 전북 군산에서 살던 나도 (부모님이 서울 출신이라 나 역시 사투리는 거의 쓰지 않았지만) 서울에 올라와서 '~했니?'라는 어미가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경상도 출신인 상사는 본인이 20대 때 서울에 올라와 서울 여자와 연애했을 때 서울과 지방 출신의 확연한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얘기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가부장적이고 촌스럽던 자신이 세련되고 자상한 서울 남자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투박했을까 싶다고 했다.
"에이, 안 그래요! 서울 남자라고 뭐 다 세련되고 자상한 줄 아세요?"라고 나는 반박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남편이 바로 서울 남자임을 떠올렸다. 나는 사람을 볼 때 딱히 어디 출신인지 생각을 안 하며 살아서 그동안은 남편이 서울 출신임을딱히 자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싯적에 연애 경험도 거의 없어서 서울 출신 남자와 지방 출신 남자의 축적된 데이터라곤 전무한 상태라 누가 세련됐네, 촌스럽네 말할 건덕지도 없었던 것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만에 오셨던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얘기하셨다.
"건이 아빠는 참 자상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발끈했다.
'아니, 대체 어디가요? 뭐가 자상하다는 거예요? 물론 건이 아빠가 울보 건이를 편하게 안아줘서 울음을 잘 그치게 하지만 그게 자상한 건 아니잖아요?'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 만에 오셨던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얘기하셨다.
"건이 아빠는 참 자상해."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애기를 잘 보긴 하지만 나한테 다정한 건 아닌데 왜 다들 남편에게 자상하다고 하는 걸까?'
시간이 한참 흘러 생각해 보니 원주 출신이었던 첫 번째 이모님과 북한 출신이었던 두 번째 이모님 모두 서울 남자의 서울말에 홀렸던 건 아닌지.
"~했니?"라는 그 어미만으로도 일단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랑을 말하려거든 서울말로 하세요. 별말 아닌 말도 아주 자상하게 들리나 봅니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