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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Oct 10. 2024

사랑을 말하려거든 서울말로 하세요

팀원 중 반이 경상도 출신이다. 이들은 서울에 올라온 지 꽤 되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지방 출신인지 서울 출신인지에 대해 평상시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에 팀원들과 함께 컵라면을 먹고 나서 대화하던 중 경상도에서는 '졸리다'는 말을 안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리다'고 하면 귀여운 척하는 것 같고 애교 부리는 것 같아서 영 불편하게 들린다고. 그 대신 '잠 온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팀원 한 명이 부산에 내려가서 친구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졸리다는 말을 썼다가 친구에게 맞을 뻔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우, 졸려. 졸리다. 안 졸려요?"라며 경상도 출신 팀원들을 자극했다.  


경상도에서는 '~했니?'라는 말을 쓰면 큰일 난다는 얘기까지 이어졌다. 재수 없다고 욕먹기 딱 십상이란다. 이건 경상도 출신이 아니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중학교까지 전북 군산에서 살던 나도 (부모님이 서울 출신이라 나 역시 사투리는 거의 쓰지 않았지만) 서울에 올라와서 '~했니?'라는 어미가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경상도 출신인 상사는 본인이 20대 때 서울에 올라와 서울 여자와 연애했을 때 서울과 지방 출신의 확연한 차이를 많이 느꼈다고 얘기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가부장적이고 촌스럽던 자신이 세련되고 자상한 서울 남자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투박했을까 싶다고 했다.

"에이, 안 그래요! 서울 남자라고 뭐 다 세련되고 자상한 줄 아세요?"라고 나는 반박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 남편이 바로 서울 남자임을 떠올렸다. 나는 사람을 볼 때 딱히 어디 출신인지 생각을 안 하며 살아서 그동안은 남편이 서울 출신임을 딱히 자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소싯적에 연애 경험도 거의 없어서 서울 출신 남자와 지방 출신 남자의 축적된 데이터라곤 전무한 상태라 누가 세련됐네, 촌스럽네 말할 건덕지도 없었던 것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 만에 오셨던 베이비시터 이모님은 얘기하셨다.

"건이 아빠는 참 자상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발끈했다.

'아니, 대체 어디가요? 뭐가 자상하다는 거예요? 물론 건이 아빠가 울보 건이를 편하게 안아줘서 울음을 잘 그치게 하지만 그게 자상한 건 아니잖아요?'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 만에 오셨던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얘기하셨다.

"건이 아빠는 참 자상해."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애기를 잘 보긴 하지만 나한테 다정한 건 아닌데 왜 다들 남편에게 자상하다고 하는 걸까?'


시간이 한참 흘러 생각해 보니 원주 출신이었던 첫 번째 이모님과 북한 출신이었던 두 번째 이모님 모두 서울 남자의 서울말에 홀렸던 건 아닌지.

"~했니?"라는 그 어미만으로도 일단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랑을 말하려거든 서울말로 하세요. 별말 아닌 말도 아주 자상하게 들리나 봅니다 ㅋㅋㅋㅋㅋ

자상한 남자와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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