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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Sep 23. 2024

마음이 차오르면 연락을 해

연락 한번 해봐야 하는데.

설거지를 할 때마다 생각했다.


몇 달 전, 지방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 몇 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친구가 일이 생겨 급히 내려가는 바람에 우리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이유를 묻진 않았다.


급한 일은 잘 해결됐는지, 또 올라올 계획이 있는지 친구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는데 그게 매번 설거지를 할 때라 바로 연락할 수 없었다. 그리곤 까먹었다. 설거지할 때면 띄엄띄엄 친구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차오르다 넘친 어느 날, 설거지를 마치자마자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가 조만간 우울증 검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우울증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친구가 그간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결혼하자마자 일을 관두고 연고도 없는 지방에 가서 사는 것도 녹록지 않았을 텐데, 도와줄 사람도 없이 혼자 쌍둥이를 키우기 힘들었을 텐데, 드센 시댁의 공격을 받느라 힘들었을 텐데.


상담받으며 좋아지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조금 안심하고, 내가 더 늦지 않게 연락해 다행이라며 안도도 했다. 한편으론 이 정도면 무탈한가 싶은 나날이 이어지던 중이라, 나는 나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영희 작가의 '어쩌다 어른'이란 에세이를 읽었다. 그중에 '인기 없는 여자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챕터가 마음에 확 와닿았다.

작가는 친구들이 30대가 되어서 각자 가정을 꾸리느라 자신에게 내어줄 틈이 없었을 때 (작가는 비혼) 여자들의 우정이 부질없게 느껴진 날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어릴 적엔 친구들이 자신보다 잘될까 봐 친구들을 질투한 적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나 역시 10대와 20대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나보다 성적이 좋을까 봐, 예쁠까 봐(예뻤다), 인기 많을까 봐(인기 많았다), 더 나은 인간일까 봐 질투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는 비교가 부질없음을 느끼고 친구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던 참이었다.


무난해 보이는 인생을 사는 친구들부터 어디 사연이라도 나올 것처럼 기구해 보이는 인생을 사는 친구들까지, 나에게 소중한 그들이 모두 무탈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 바람이 연락까지 닿지 못하고 나 혼자의 바람이었을지라도.


지방에서 쌍둥이를 키우는 친구는 이번에 나와 카톡으로 대화하며 울고 웃었다. 자기 상황을 기억해 줘서, 자기 맘을 알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10월에 친구가 서울에 올라오면 꼭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친구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인기 없는 여자란 무엇으로 사는가'의 결론은 이러하다. 우정은 연금보험 같은 거라고. 우정이란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 작가는 '나'의 부족함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섣불리 나를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쓸쓸하다 싶을 때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 작가는 그런 친구들 없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삶을 살 수 없다고 한다.


나도 내 친구들이 쓸쓸하거나 고달플 때 툭툭 무심하게 때론 다정하게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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