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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diary Oct 23. 2018

아주 조금 다른 일상.

하루일기



서부로 온 지 6개월이라 생각하니 아직 짧은 것 같고, 반년이라 내뱉으니 꽤 오래된 것 같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던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이 곳 생활은 한 1, 2년은 된 것처럼 나름 꽤 빠른 속도로 적응 중이다.  떠나오기 전 나름 뉴욕 출장을 자주 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여기서 빨리 정 붙이고 마음 두라고 그랬는지, 그 사이 뉴욕을 방문할 일은 없었다. 덕분에 이 곳이 점점 집 같아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많은 곳이 새로워서 일상 속 여행 다니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만, 가끔은 이 곳으로 오려했던 그 처음 마음을 잊을 것만 같아서 순간순간 그때의 마음을 곱씹어 보기도 한다. 작년의 나는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그때의 기억을 마주하면 아직도 조금 울컥한다. 스스로에게 믿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불안한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매일이 꼴깍거리는 삶이라 생각이 들만큼 휘청거렸던 나날 들. 아직도 많은 것을 겪어내고 경험해 내봐야 단단해지는 어른의 삶인가 보다. 

 


오늘은 글을 쓰고 싶었다. 뉴욕오피스에서 가끔 쉼 같은 하루들이 있었는데 그때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커피 마시며, 음악 들으며, 그 날의 기분들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쓴 글들이 ‘서랍’ 속에 참 많다. 오늘의 이 글도, 쉼 같은 하루에 주어진 일상의 기록 같은 일기 일터.

 


오늘 출근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정말 여기 있다!' 서부의 삶은 아직도 너무너무 신기하다. 매일을 사람들에 치이며 지하철을 타던 삶에서 차로 쏙쏙 가야 하는 곳만 가는 느스한 삶의 스타일이 하루아침에 급 바뀌어 그런지, 아직도 나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한가 보다. 나의 주말 풍경 속엔 뉴욕의 예쁜 브런치카페 대신에 스케일이 남다른 산과 바다의 풍경이 들어오고, 일상 속 내가 소소하게 즐길만한 취미가 생기고, 코워커는 집 텃밭에서 키우고 길러낸 유기농 깻잎을 건네준다. 서부 생활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었는데, 오히려 살아내고 있는 오늘이 환상처럼 아직도 가끔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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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사람이 오가던 뉴욕의 거리와 내가 좋아하던 퇴근길 산책코스, 집에 가던 길에 들르곤 했던 상점들, 가끔은 좋아하는 라테를 위해 몇십 분을 걸어갔던 워싱턴스퀘어 파크 지점의 스텀타운 커피, 저녁 후 뚜레쥬르의 팥맛 아이스께기 먹으며 브라이언트 파크까지 가는 수다스러운 길목, 정말 피곤하고 힘든 날 때마침 다음 역에서 내려주는 지하철 승객, 샘플세일 때 괜찮은 것들을 싸게 사서 돈 쓰고 돈 버는듯한 느낌의 쇼핑들, 책 한 권 들고 가기 딱 좋았던 좋아하던 노구치 뮤지엄의 앞마당, 가끔씩이라도 가면 그렇게 큰 위안이 되었던 해질녘의 아스토리아 파크, 아마 쓰자고 마음먹으면 그리운 것들이 한가득일 거다. 그때는 일상이라 몰랐는데 이토록 그립고 애틋할 것들이었다. 



오늘도 이 곳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예쁘다. 정말 예쁘다는 말이 꼭 들어맞을 만큼, 하늘은 높고 푸르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나무들은 알록달록 물들어가고 있다. 정말 신기할 만큼 뭐가 없는 곳인데, 예쁜 날씨가 많은 것들을 커버해 주는 것 같다. 



차가운 녹차 한잔에 바람 쏘이고 심호흡 한번 크게 해 보는 오후 4시 25분. 

2018년 10월 17일, 수요일의 하루는 이렇게 별거 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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