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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Sep 20. 2023

예쁜 디자인

디자인의 심미성에 대한 이야기

나는 시각디자이너다. 공부를 시작한 지는 9년 차가 되었고, 현업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는 군복무 기간의 공백을 제외하면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배워온 것보다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이 아직 많겠지만 누군가의 선배로서 혹은 동료로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지식을 다듬어나가면서 성장하고픈 마음에 글을 적어 내려간다.


오늘은 디자인 결과물이 가진 미감(또는 심미성,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디자인을 배울 당시 가진 마음가짐으로는 기능적인 측면에 대한 것보다 미적인 부분에 크게 집중하여 작업을 했었고, 디자인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기능적 측면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 아마 나를 제외하고도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디자인을 처음 했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나와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디자인에 대해 공부할수록 경험이나 의도, 목적, 메시지 같은 단어를 자주 접한다. 디자인된 결과물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디자인된 것들은 대게 큰 관심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에서 첫눈에 예쁘게 보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경험 디자인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기반한 것인지 미적인 부분보다 기획에 중점을 두는 작업도 자주 보인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도 이 흐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간단한 조작으로 높은 완성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자연스럽게 기술적인 능력보다 기획적인 능력이 부각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디자인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시각디자인이라고 하면 시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말한다. 우리 시각디자이너는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나 분위기를 인간이 가진 가장 큰 감각인 시각으로 표현해 낸다. 행동을 유도하거나 안내하기 위한 사이니지 디자인이나 가독성과 판독성을 위한 타이포그라피 등 시각디자인의 분야는 분명 기능적인 역할이 중점이 될 때가 많은데 기능적인 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거부감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 적힌 책이라고 궁서체와 같이 대부분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서체로 적혀있다면 그것은 글자로 받아들여지기 이전에 거부감이 든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눈을 뜨고 생활하는 우리는 어떤 디자이너의 노고를 거친 이미지를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 스쳐 지나가며 무의식적으로 시각적 미감이 길러지고 있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적어도 좋은 미감을 가진, 거부감보다 호감이 들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서 보고 머릿속에 담아두고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체화해야만 할 것이다.


시각적 결과물에서 심미성과 기능성 중 무엇이 먼저 작용할까 생각해 보면 자신 있게 심미성이 먼저라고 답변할 수 있다. 우선 거부감이 들지 않는 정도의 미감이 있게 된 후에 기능적인 부분이 작용한다. 못생긴 디자인은 어떻게 되었든 좋지 않은 디자인이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덜 예쁘게 디자인된 결과물은 기능적인 부분으로 그 가치를 높일 기회가 있지만 못생긴 디자인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학생일 때 좋아하던 말이 있다. '의도된 불편함'이다. 한창 기능적, 기획적 요소가 디자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할 때였었다. 미감이 중요하다고 열심히 적어놓긴 했지만 나 역시 일부러 조금 엉성하거나 못생긴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사람은 보편적이지 않을 무언가를 보면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나기도 하는 종족이니 말이다. 어떠한 목적, 예를 들자면 시선을 끌게끔 만드는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선이 끌릴지 보자마자 불쾌함을 느낄지는 결과물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 그저 그것을 만들어가는 구성원들끼리 의논하고 실험해 볼 뿐이다.


순간 떠오른 생각을 전하는 입장이다 보니 다소 단정 짓는 어투로 글을 적게 되는 것 같다. 생각이 바뀌게 되면 이전에 작성한 글을 다시 작성해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도 성장의 방향과 정도를 체감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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