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에스니시티(Ethnicity)
2023년 WBC,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내야수 토미 에드먼은 한국 국가대표팀으로, 외야수 라스 눗바는 일본 국가대표 팀에 승선하였다. 샌디에이고의 내야수 매니 마차도는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으로 참가하였다. 먼저, 어떻게 이 미국인 선수들은 타 국가의 대표팀 선수로 참가할 수 있는 것일까?
'애브너 더블데이 신화'와 함께 MLB는 야구를 미국의 '가치'들이 반영된 국기 스포츠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야구의 기원이 미국에 있다는 이 주장은 세계 각국에 야구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주며 야구의 세계화를 막는 요인이 되었고,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한편으로는 야구시장 저변 확대 및 새로운 국제대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 탄생한 것이 WBC였다.
MLB 사무국이 야구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탄생시킨 대회였기에 WBC의 국적 규정은 상당히 느슨하다. 선수는 본인 또는 부모의 국적과 출생지 중 한 국가를 선택해서 출장할 수 있다. 이 규정 때문에 어머니가 한국계 미국인인 데인 더닝과 토미 에드먼은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할 수 있고, 마이애미 출신의 미국인 매니 마차도도 부모의 고향 도미니카공화국의 대표팀으로 출전 선언을 했으며, 수많은 유대계 선수들은 이스라엘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미국인들은 타국 선수로 WBC에 출전할까, 그리고 왜 매니 마차도는 두 대회 연속 도미니카공화국 국가대표로 뛰는 것일까?
나는 세 가지 가정을 제기한다. 첫째는 주전으로 뛰기 위해서이다. 미국의 라인업은 소위 '우주방위대'이다. MVP와 올스타,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가득한 명단에 한국계와 유대계 선수가 이름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출전을 원한다면 다른 국가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마차도는 다르다. 마차도는 이 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MVP급 스타플레이어다. 둘째는 돈과 명예이다. 많은 선수들이 WBC 등의 국제대회를 쇼케이스 무대로 활용하여 더 큰 무대로 진출하고, 더 나은 조건의 계약을 맺는다. 또한 ‘고국의 영웅'으로 금의환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차도는 미국인이고, 이미 검증된 최정상급 선수이며,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우승 가능성도 미국이 더 높다. 그렇기에 마차도의 경우는 더 특이하다.
마지막 이유는 민족성과 정치적 요인이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나라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최우선의 가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혈통을 중시하는 유대인이나, 가정에서 '한국인의 뿌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는 한국계 선수들- 토미 에드먼의 중간 이름은 '현수'이다 -이 각각 이스라엘과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2013년 WBC를 준비하며 페르난도 로드니는 말했다.
I want to represent the country. It will be a pleasure to be there in the dominican uniform. (...) You don't have to ask permission to represent your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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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마차도는 2017년 WBC에 출전하며 부모님을 위해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으로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층위의 질문이 등장한다. "이들에게 '국가성'과 '민족성'이란 어떤 의미인가?" 선수들의 이러한 태도는, 다민족 혼혈 인종으로 구성되어 민족 정체성이 약하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일반적인 특징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ᅠ 실제로 도미니카공화국은 단일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단일국적 국가와 달리 복수국적을 허용한다. '국가'를 외치던 페르난도 로드니도 2017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부모의 고국'을 말하는 마차도도 미국 단일국적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도미니카 소속으로 WBC에 참가한다. 이러한 독특한 현상은 북중미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특히 빈번히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정치적 이유가 깔려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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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수백만 명의 공동체는 11명의 이름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으로서 더 실제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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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인종과 문화를 혼합하는 인종 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스포츠를 통해 약한 국가정체성을 정의하고 민족성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스포츠는 정지된 텍스트가 아니라 실천되고 살아있는 특성을 지니기에, "민족 서사의 생산자"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스포츠의 실천적 성격은 이질적인 문화를 통합하고 민족주의의 뿌리내리게 하는 위한 현대적인 수단이 된다. 실제로 야구가 국기인 카리브해 국가들은 WBC에 관심도가 매우 높으며, 도미니카공화국 정부는 2013년 WBC 우승일을 임시 국경일로 선포하였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도 미국 태생 선수의 출전을 장려한다.
2017년 WBC 도미니카공화국 감독 토니 페냐는 "우리는 한 가족이고, 우리 가족은 세계 최고다," "네가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마차도를 독려했다. 스포츠를 통해 선수들은 미국 국적일지라도, 라틴아메리카인이자 카리브인이 된다. 그리고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이 '인종 민주주의'와 '상상의 공동체'가 잘 작동함을 보여주는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 야구는 거대한 스포츠시장을 통해 카리브해 국가들의 노동 이민과 노동 정책, 더 나아가 정치에 관여하려는 미국의 지속적인 시도에 저항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다. 강력한 대표팀을 구성하고, 미국에 대등하게 경기하고, 때때로 승리함으로써 도미니카인들은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반대로 쿠바야구연맹은 미국 망명 선수들을 대표팀에 차출하지 않음으로써 대내외적으로 메시지를 던진다. 즉, 카리브해 국가들에서 스포츠는 민족서사 생산 기능을 강화함과 함께, 백인사회의 개입에 신사적으로 저항하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매니 마차도는 왜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으로 WBC에 참가한 것일까? 그는 말한다. “도미니카 국민들은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행복하다.” 이것은 자기홍보와 마케팅일 수도, 백인 주류 사회에서 히스패닉으로 살면서 느끼는 저항심의 표현일 수도, 민족 서사 주인공이 되고픈 욕망일 수도 있다. 혹은 '정치의 도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가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으로 출전한 속내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카리브에서의 스포츠와 민족성은 아직 명쾌히 설명되지 못한 그 지역만의 독특한 특성임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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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Sports, https://mlb.nbcsports.com/2013/01/14/quote-of-the-day-fernando-rodney-on-playing-for-his-country-in-the-wbc, 검색일자 : 2023.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