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계기로 대학교 졸업 프로젝트가 (엔젤)투자를 받게 되면서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했다.
함께 했던 팀원들과 의기투합하여 스노보드 바인딩 회사를 설립했고 지역 신문과 라디오에서 인터뷰 기회도 얻으면서 작은 파도를 만들어 갔다.
나는 팀에서 디자인과 개발을 주도했고 어렵지 않게 기능 특허를 받으며 순풍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아메리칸드림의 꿈은 찰나였다.
프로토타이핑 단계에서 투자금이 모두 소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추가적인 펀딩을 받기 위해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프로젝트의 동력은 힘을 잃어갔다.
몇 달 동안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팀원들은 하나 둘 이탈하여 다른 회사 취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팀은 와해되기 시작했고 희망의 빛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결국 창업은 실패라는 경험을 남기게 되었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 또한 커리어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체외진단 의료기기 회사에서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의료기기 시장은 미래에 유망한 업종이라고 생각했기에 큰 고민 없이 일을 시작했다.
어서 빨리 이전의 실패를 만회하고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었다. 능력 있는 일잘러로 성장하길 원했고 일을 통해 자아실현과 만족감을 얻길 원했다.
그렇게 의료기기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 2년, 3년...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입사 초기에 상상했던 일잘러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직무 루틴을 소화하기 위한 소모적인 업무 처리에 급급했다.
무기력감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일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 갔다.
분기마다 오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다른 것들로 나를 채웠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TV를 보거나 가족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시간을 보냈고 주말엔 친구들을 만나서 놀거나 게임으로 시간을 불태웠다.
발전적인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다. 알을 깨고 나가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갇힌 느낌이었고 자신감은 점점 추락하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이대로는 답이 없음을 느끼고 변화를 모색했다. 먼저 일하는 환경을 바꿔보고자 하여 대기업 이직에 도전했다. 나의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서류 통과는 웬만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직무 면접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의 연속 낙방 이후 자만했던 자신을 뉘우치고 본격적으로 면접 공부에 돌입했다.
직장을 병행하며 이직을 준비했기에 퇴근 후엔 면접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찾던 중 '면접왕 이형'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났다. 이것이 예정된 만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채널은 내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일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해주었다.
면접에 대한 인사이트를 포함하여 이전엔 깨닫지 못했던 일에 대한 관점과 성과와 목표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일못러 주제에 깊은 공감을 했고 나는 일에 대한 관점을 배우기 위해 내용을 깊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면접왕 이형은 특히 시간 관리를 강조했다. 내게 필요한 일은 눈 앞에 이직보다 현직장에서 성과를 내는 일이었다. 시간 관리를 통해 목표를 달성해야하며 지금 당장 시작해야 했다.
시간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일잘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나는 즉시 이형이 추천하는 플래너를 구매하고 시간 관리를 무작정 따라했다.
나의 24시간 활동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낭비되는 시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테고리별로 사용한 시간 내역을 정의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강박적으로 시간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이 과정에서 초반엔 많은 변화를 체감했던 것 같다. 한 주간 나의 낭비된 시간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 관리를 시작한 지 3~4개월이 지날쯤 어느날. 시간 관리에 대한 본질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시간 기록이 점점 귀찮게만 느껴졌다. 반복적인 작업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성격 때문인지 시간 기록을 며칠씩 미뤄두기도 했었다. 미뤄둔 내용을 몰아 쓸 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억지로라도 시간 관리를 지속하기 위해 변화를 주기도 했다. 시간 카테고리를 바꿔 보기도 하고 업무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을 관리함에도 정작 목표 달성은 잘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록을 위한 시간 관리가 되어가면서 시간 관리로 일잘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가 약함을 탓하고 '이제 좀 쉬자...'라는 속삭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시간 관리를 끌고 간지 지 반 년 정도 지난 시점. 시간 관리를 잠시 덮어두게 되었다.
그 후로 몇 주가 흐른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간 관리에 대한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남들이 짜 놓은 시간 관리 프레임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들이 만들어 놓은 정형화된 프레임을 벗어나 나에게 맞는 시간 관리 프레임으로 짜 보면 어떨까? 기존에 있던 시간 관리 프레임을 벗어나 보자.'
산책에서 돌아온 후 시간 관리에 대한 마지막 불씨를 살리며 나만의 시간 관리 툴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시간 관리 플래너를 디지털로 옮겼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사용 시간은 자동으로 계산되어 그래프로 출력되도록 시각화를 시켰다. 그리고 시간 관리의 본질인 목표 중심적인 프레임 설계를 시작했다. OKR 방식으로 목표를 바꾸고 주차별로 진행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형식으로 변화시켰다.
시간 관리 툴도 플랫폼을 옮겨가며 다양한 툴을 시도해 보았다. 처음엔 엑셀, 그다음은 스프레드시트, 노션, 구글 캘린더 등 다양한 툴을 거치며 효율적인 플랫폼으로 조금씩 옮겨가며 적용했다.
플래너 -> 엑셀 -> 구글 스프레드시트 -> 노션 -> 구글 스프레드시트 + 노션 -> 구글 캘린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