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계획에 중요한 1.5의 법칙
팀장으로 살아가는 법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팀원들과 업무를 진행해 봤습니다.
주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제 경험상 실험 설계와 계획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누기 때문에
늘 강조하는 것은 계획! 실천! 점검! 반영! 이였지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시간관리.
내가 이 일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기록하여 계산해 보고,
그 시간을 반영하여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는 가장 중요한 점이 있는데요, 감속법칙입니다.
높은 곳에서 공을 굴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더 빨리지지만(가속),
사람이 하루에 하는 일을 계산할 때에는 일을 할수록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입니다(감속).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경험이 쌓여서 더 빨리 처리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대체로 몇 개월, 몇 년의 주기로 점검했을 때 그런 거고 사람이 오늘 하루동안 하는 일은 언제나 하면 할수록 느려지더라고요.
"일은 사람이 한다" 이게 핵심인데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오전에 10개의 시료에 전처리를 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면
점심 식사 후에는 10개의 시료 전처리에 3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속도가 느려지게 되거든요.
기계는 고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게다가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생기고 그럼 오히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립니다.
오전에 출근 후 2시간 동안 시료 10개를 전처리 했다면,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 중 전처리 할 수 있는 시료는 몇 개일까요?
단순 계산으로는 2 : 10 = 8 : 40 이므로 40개입니다.
그러나 제 계산으로는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1시간당 5개의 시료를 전처리 할 수 있다면,
평균적으로는 1.5시간에 5개의 시료를 전처리할 수 있다고 계산합니다.
그렇다면 1.5 : 5 = 8 : 26.67 이므로 26개 정도 할 수 있겠네요
열의가 가득한 직원들에 시간 계획을 요청하면, 보통 40개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웁니다.
열의는 기특하지만, 팀장의 입장에서 조금 불안하죠.
경험상 40개는 못하거든요. 그럼 열정이 가득한 직원이 야근을 해서라도 하루 40개를 채웁니다.
몹시 피곤 해질 테고, 다음 날 능률이 떨어지기만 하면 다행인데 높은 확률로 중간에 실수해서 일이 더 복잡해지죠.
1.5의 법칙을 알려주면 보통 27개 또는 28개 정도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문제인데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의 실험을 마친 후 설거지 등의 정리를 하고, 오늘 일을 연구노트에 기록하고 복기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럼 또 설거지와 연구노트 작성은 야근 또는 집에 가서 해오겠다는 직원이 생겨납니다.
요즘 SNS나 매체에서 언급되는 MZ세대들은 그럴 리가 없는데 희한하게 제 주변의 MZ직원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거든요(아마도 대학원에서 이미 힘들게 굴러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회사의 가치와 비전을 함께 공유하면서 업무를 수행한 직원이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지요.
맨날 야근하고 집에 가서 연구노트 쓰고 그러면 오래 다닐 수 있겠습니까?
저도 못 참는걸요.
그래서 제 기준은 다시 1.5입니다.
26개 또는 28개를 다시 1.5로 나누면 17~19개가 되는데요.
결국 오전에 출근해서 2시간 동안 10개의 시료를 전처리한 직원이 오늘 8시간 근무하면서 전처리 할 시료는 17~19개로 목표를 설정합니다.
그래야 오후에도 마음이 쫓김 없이 집중해서 실험을 할 수 있거든요.
몇 번은 이런 계획을 연구소장님 또는 대표님께 들킨 적도 있어요.
중간관리자라는 녀석이 정신 나갔냐! 28개 한다고 하면 30개 하라고 해야지!
진짜 급한 일인데 저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실험하고 집에 딱딱 가면 회사 망한다고요.
제 경험상 회사가 진짜 망할 때는 유능하고 경험 쌓은 인재들이 탈출했을 때이고,
인재가 한 명 탈출하면 걔의 역할만 공백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전체가 다 흔들리기 때문에 한 1~4주는 전체의 업무 분위기가 뒤숭숭하던데요..
그래서 늘 이렇게 설명을 드립니다.
진짜 급한 일도 구분을 못할 멍청이는 우리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거고, 진짜 급한 일이 생기면 담당자가 30개 아니 40개 시료 전처리하는 동안 다른 조금 한가한 녀석이 설거지도 해주고 기록도 해주면서 하루에 40개 하게 돕겠지요. 이게 안되면 우리 연구소는 어차피 망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팀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은 사람이 한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사람이 지치고 화나지 않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제조건은 우리 팀은 회사의 가치와 목표를 이해하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한다는 것이지만요. 근데 이런 전제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니까 이해하지 기계가 이런 걸 이해나 하겠습니까?
AI와 로봇이 빠르게 발전하는 요즘,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요
뭐 언젠가는 로봇이 시료 전처리를 대신해줄 거고 그러면 하루에 40개 지치지 않고 같은 속도로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인간의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위기상황에서의 재빠른 응용력 아닐까요? AI도 응용할 수 있지만 얘는 데이터가 쌓여야 하고, 사람은 감각을 이용해서 직감적으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AI시대의 인간 경쟁력은 사람은 일을 할수록 지치고, 지치면 속도가 떨어지고, 지치면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퇴사하고 싶고, 퇴사하려고 맘만 먹으면 누구도 잡을 수 없고, 그래서 열심히 하던 직원들이 항상 빨리 퇴사하더라.라는 알고리즘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현장에 바로 반영할 수 있는 순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은 잘하는데, 열받아서 나가는 팀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몰래 토요일에도 일하는 팀장이 일하기 싫어서 갑자기 주절주절 써보는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