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 살고 있는 거니?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술에 잔뜻 취해서 쓰는 글.
술이 깨고 나면 분명 후회할 글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어디에도 남길 수 없는 글..
오랜만에 한 회식.
회식을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 때는 좋다.
술에 취해 웃고 떠드면서 드는 여기 이 사람들은 내 편이라는 느낌이 좋다.
이 느낌을 맑은 정신으로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잦은 이직으로 여러 회사를 다녀봤는데,
여기 이 사람들은 내 편이라는 느낌이 있는 드는 회사가 있었고,
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내 편인지 모르겠는 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2년 정도를 다니고 있는데, 여기는 모르겠다. 내 편인지.
여러 명이 모여있는 회사에서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 편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느낌.
수시로 몰려오는 이유 없는 불안함과 끝없는 의심. 그리고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상담을 받으면서도 불안함과 의심은 없어지지 않고, 자잘한 강박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몰려드는 잘해야 만한다는 압박.
내가 잘해야 할 것 같고, 내가 실수하면 안 될 것 같고,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이게 아닌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너무 많이 자주 든다.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쁜 회사였지만, 나에게는 나쁘지만은 않았던 나의 전 직장은 이유 없이 마음이 가볍고, 내 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조직이었다. 내가 곤란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나를 위하는 말과 행동을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기에 작은 일에도 강한 자신감이 차올랐었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며, 내가 좀 못해도 그걸 같이 해결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다.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차이로 인해 다른 마음이 생기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소속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두 회사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고 있을까?
전 직장에서는 가끔 고민 상담하러 오는 직원들이 있었다.
같은 소속이기도 하고, 다른 소속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살아온 배경도 나이도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시간을 나눠 쓰곤 했다.
시간과 고민은 나눠 쓰는 사이여서 그랬을까?
사소한 든든함이 쌓이고 쌓여 같은 편이라는 마음이 쌓여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다.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렇다.
결국은 누군가에게 내 약점은 알려주는 셈이지.
그래서 누군가의 고민을 들으면 그걸 나에게 말해줄 만큼 나를 믿어준다니 이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이런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이것도 너무 강박스러운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고 있는 사람.
근데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그땐 배우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같이 뭘 해보고 싶으니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쓸모가 업무를 하는 게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성장에 쓸모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는 나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이 없다.
나의 업무가 필요할 뿐.
업무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업무만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업무를 하면서 힘들어진 마음을 함께 위로하고 업무와 우리의 목표에 대해 공감받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일까? 욕심이겠지.
간섭, 속박, 억압 이런 건 다 싫어하는데 묘하게 관심과 위로는 받고 싶고 그런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도 그런 관심과 위로에 크게 감동해 봐서였겠지.
하루 종일, 5분도 쉬지 못하고 일만 하다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퇴근길에는 누군가 나 대신 내 입장을 이해하고 대신 나서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 줄 알았다면 고작 조금 더 나은 근무환경에 나의 소속을 바꾸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내가 놓친 것이 아닌 버린 것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따뜻하고 강력한 유대감과 소속감.
술이나 마시고 이렇게 궁상을 떨 거면 그런 유대감과 소속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게 나을 텐데,
다른 사람들은 이런 유대감과 소속감이 필요하지 않겠지.
사실 나도 처음 누가 그렇게 나 대신 내 편을 들어줬을 땐 "쟤 왜 저래?"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때는 그게 몇 년을 머리에 박혀서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위로받을 줄을 몰랐다.
인생이라는 건 살면 살수록 재미있다.
10대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마음과 허약한 체력으로 너무 힘들었고, 뾰족하게 모나 있어서 매일이 날카로웠다. 나만 잘났다고 생각했던 20대에는 모든 것이 한심하고 답답했고, 화가 나있었다.
20대 후반에 몇 번의 돌연사를 겪으면서 나도 얼마 남진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나의 욕심에서 파생된 예민함을 놓고 매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료하면서 불안했단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목표로 했던 것을 모두 이루었던 나의 30대. 언제 가도 아쉬울 것도 없고, 언제 갈지도 모르는 인생 될 대로 돼라 했던 시절. 그래서 30대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고 산다는 건 사실 굉장히 지긋지긋한 일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고, 30대는 바쁘니까 대충 지나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30대에는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여줬던 나의 남편과 친구들,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의 예민함을 토닥여주던 후배,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을 쌓아갔던 동료들과 배우고자 하는 열의로 나를 더 자극시켜 주고 지친 내 손을 잡고 일으켜주던 후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지금 42세.
많이 아프던 시절에는 40대에는 내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뭔가 득템 한 느낌의 40대.
거저 얻은 인생이라 생각하면서도 뭐든 잘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고, 잘 해내고 싶고, 잘해야만 하고 그런 욕망과 불안감에 매일이 불안한 나의 40대.
잘하고 싶은 욕심을 버려야 모든 것이 나아질 텐데, 나는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커져간다.
내일은 그 강박과 부담을 내려놓기 위한 또 다른 연습을 하러 가야지.
얼마 전 옛날 노래를 듣다가 이런 노래가 생각났다.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 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그래 나는 문제없겠지.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갈 수 있겠지.
내가 잘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나의 친구와 가족이 있으니까 나는 괜찮을 것 같다. 괜찮아야만 하고.
술에 취한 채로는 잠에 들지 않는다.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봤으니까.
쓸데없는 미련을 굳이 글로 남기는 사이, 술이 깨고 맑은 정신이 슬며시 들어온다.
맑은 정신으로 보면 후회할 글은 그만 접어야지.
오늘은 너무 많은 말을 했고, 너무 많은 글을 남겼다.
나는 항상 내가 한 말과 내가 쓴 글을 후회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것을 왜 참지 못할까
그래 오늘 많이 떠들더라. 내가 왜 그랬을까... 어색해서 그랬겠지 어색해서.
내가 대인관계까지 좋아야 하나? 하는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충돌하는 밤.
그만하고, 내일은 내가 대인관계까지 좋아야 하나? 내 입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혼자 있으면서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