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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발랄 Jun 30. 2022

워킹맘 이발랄씨의 공유라이프

아가는 잠을 자지 않고, 시어머님은 이발랄씨의 속옷을 빨아주신다

복직 후 아가는 밤 열한시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이발랄씨는 아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아가는 퇴근을 하고 돌아온 이발랄씨에게 자신이 하룻동안 익힌 것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책을 보며 나비 흉내도 내고, 새가 우는 흉내도 낸다. 자신이 하룻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발랄씨의 반응을 기다린다. 이발랄씨가 칭찬을 해주면, 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웃음을 짓는다. 엄마 뽀뽀, 하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뽀뽀를 이발랄씨의 볼에다가 해준다. 이렇게 무한반복되는 행복충전 시간- 이 시간이 계속되길 바라며 엉엉 우는 아가를, 아빠 이자상씨가 억지로 안고 재우고 나면 밤 열한시다.


그러면 이발랄씨는 설거지를 해치우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속옷 서랍을 열면 시어머님이 (세탁기에 넣어) 빨아서 고이 개어주신 팬티가 보인다. 정리정돈을 안해 뒤죽박죽인 속옷 서랍 위에 고이 접힌 팬티가 낯설다. 엄마가 아닌 사람이 속옷을 빨아주는 것은 굉장히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가  다음엔 감사한 일이 되었다가 이제는 무덤덤해져 버렸다. 어깨를 으쓱하고 보송보송한 팬티를 꺼내 입은 이발랄씨. 문득 구멍난 낡은 속옷이 부끄러워 인터넷으로 속옷을 주문한다. 어머님이 내가 너무 택배를 자주 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어깨를 으쓱하는 이발랄씨다.


복직 후 이발랄씨의 시어머님이 아가의 주양육자가 된 이후 본격적인 공유라이프는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아가의 사생활은 시어머님과 이발랄씨가 최우선으로 공유해야하는 것이다. 아가가 똥을 몇번 쌌는가, 밥을 얼마나 먹었는가, 기분은 어떠한가, 잠은 잘 잤는가-. 편식쟁이 아가가 밥대신 즐겨먹던 떡은 탈락 위기에 처했다. 떡집에서 포장되어 오는 비닐에서 다이옥신이 많이 나온다는 시어머님의 의견이었다. 이발랄씨는 주양육자의 뜻에 절대로 토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던 대로, 네, 했다. 사실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발랄씨보다도 주양육자에게 더 힘든 일일 것이다.  


아가의 사생활 뿐만 아니라 이발랄씨와 이자상씨의 불규칙한 식생활, 옷이 널부러져 엉망인 방, 빈약한 냉장고, 음침한 냉동실, 눅눅한 빨래 바구니 역시 공유되고 있다. 시어머님은 아침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오신다. 이발랄씨와 이자상씨는 건강해지고 있고 그건 좋은 일일 것이다.


이발랄씨와 이자상씨가 쓰던 침대는 없어졌다. 대신 커다란 토퍼를 깔고, 아가와 셋이서 잠자리를 공유한다. 하루종일 떨어져있는데 잠이라도 같이 자야지 아가가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가끔 자다가 아가의 발길질에 얼굴이 차이기도 하고, 이발랄씨는 잠결에 팔꿈치로 아가의 얼굴을 찌르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모두가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것도 적응이 곧 될 것이다.  


나이가 벼슬은 아니지만, 이발랄씨는 이럴 때에는 나이를 많이 먹고 아가를 낳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민하고 자존심이 콧대를 찌르던 20대였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하려고 했을 것 같다. 공유라이프를 살아간다는 건 이발랄씨 자신을 수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감당하려 했다면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는 욕심이 이발랄씨를 짓눌렀을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오늘 하루를 살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회사 1 카페에 가서, 혼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있을 것이다. 낡아진 팬티는 화사한 원피스 안에 가려져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다. , 아무래도 월요병이 없어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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