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7편 7절~10절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회사에서는, 나아가 세상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나도 예수 믿기 전에는, 뻔뻔하고 조리 있게 잘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렇게 하는 게 왠지 남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잘난 척을 해도 안 알아줄 판에, 그냥 가만히 있다 보니 점점 더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는 꼴이었다.
며칠 전 상사에게서 작업 이력을 적어서 내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냥 최근에 한 굵직한 이력 몇 개만 적었다. 그런데 나중에 취합하고 보니, 내가 제일 적게 적어서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은 깨알같이 적었는데, 나만 적당히 대충 적어서 낸 거였다. 게다가 후배들보다도 작업한 것이 더 적어서, 경력 기간은 긴데 반해 하는 일은 별로 없는 사람 같았다. 내가 우스워보이기도 했다.
다시 이력을 수정하기도 뭣해서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오늘 또 그 일이 생각나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무실에서 내가 제일 작고 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잊어버리자, 그게 뭐 중요한 거라고 신경 쓰냐, 내가 말로는 예수 믿는다고 하고 아직도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 하는 마음에 자책감도 생겼다. 그러다가 오늘 철야예배를 드리고 오늘 아침에 큐티한 내용을 묵상하며 기도하던 중에 시편 27편 10절 말씀이 생각났다.
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물론 내 부모님은 날 버리지 않으셨고, 나를 잘 키워주셨다.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내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사람을 보지 말라는 마음이었다. 요셉은 야곱이라는 든든한 아버지 밑에서 채색 옷을 입고 자라다가, 어느 날 혼자 버려졌다. 하나님은 요셉을 한없이 낮추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서 높이셨다. 뭐, 나도 요셉처럼 될 것인지, 나를 엄청 높이실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위치에서 쓰실지,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내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주님은 이 세상을 다 주관하시는 분이시고, 내 앞길을 정하신다.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가는 것이고, 멈춰있으면 멈춰있으면 된다. (부디 그 시간에, 근심보다는 평안을 주시길 기도한다)
난 그저 깨끗한 그릇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내가 금그릇인지, 은그릇인지, 질그릇인지, 스뎅 그릇인지, 사기그릇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건 엄청 중요한 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금그릇이 되고 싶어 하고, 적어도 금그릇처럼 되길 바란다. 나도 이왕이면 좋은 그릇이면 좋겠지만, 역시 중요한 건 깨끗한 그릇이다. 주인이 배고파서 집에 있는 찬밥으로 밥을 비벼 먹고 싶을 때 꺼내는 것은 깨끗한 양푼이지, 더러운 금그릇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작업 이력을 적어내는, 아주 작은 일에도 넘어진다.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려던 영악함까지 놓아버리니 더 세상에서는 날 버리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주님 손 붙잡고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할 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신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담대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주님의 보혈로 내가 다시 깨끗해질 수 있음을.
내 아버지 하나님,
오늘 하루 세상에서 제일 멋지신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