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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줌마 Dec 19. 2023

정신과 진료를 결심했다.

상담사도 정신과 환자일 때가 있다 - 2

  2023년 9월 1일 금요일, 육아휴직 첫날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회사 업무를 하고 있었다. 8월까지 마무리를 했으면 좋으련만, 업무 효율이 떨어져서 일을 마치지 못하고, 업무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했다. 나의 육아휴직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휴직 후 첫날이 어떤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잘 쉬라는 인사도 전해주었다. 그들의 메시지의 내용 대로라면 평온한 휴직 첫날을 맞이했어야 할 텐데, 현실은 재택근무 모드였다.


  휴직을 하니 오전 시간에는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간 후,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 4-5시간 정도는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필라테스를 등록하여 운동을 주 2회 더 할 수 있었고, 밀리의 서재에 어떤 책이 있나 맘껏 뒤져보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집정리와 빨래를 할 수 있으니 여유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불안한 감정이 반복되었고, 수면 시간이 충분함에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이 힘들다는 사인(sign)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 둘째가 돌이 지나면서 나는 지쳐갔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첫째와 한창 세상이 궁금한 둘째를 돌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화가 속에서 치밀어 오르지만 그 화를 표출하지 못했다. 괜히 문을 쾅 닫는다거나 물티슈를 쓰고 바닥에 던지는 정도로만 표현하면서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 2년 전, 나는 첫째의 특별한 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기본적으로 엄마-아들이란 관계라 성별의 차이로 첫째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것을 추가로 알게 되니 더욱 고민이 깊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고, 우는 일도 여러 날 있었다.

-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이 많은 엄마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너무 걱정된다. 아이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불안이 올라오고, 최악의 상상을 하며 조급해한다. 물론 반복된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잘해 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의 불안은 통제하기 어려웠다.


  되돌아보니.. 나는 마음이 힘들었던 일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 그 불안이 가장 심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신과에 가야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경험 상, 어떤 병원에 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내과나 이비인후과, 소아과의 경우도 병원(의사)마다 진단이나 처방이 다르다는 것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니 정신과 역시 병원 선택이 중요하다.) 믿을만한 지인에게 정신과 정보를 얻어서 해당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초진을 예약할 수 있었다.




  정신과 초진 예약일에 맞춰 병원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나의 발달과 가계력, 현재 증상 등을 묻는 질문지를 받았고, 많은 내용을 큰 고민 없이 작성해서 제출했다. 의사 선생님과의 첫 만남 시간은 짧았지만, 임팩트는 컸다. 나는 '내가 왜 정신과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 이런 일들이 나에게 힘들었던 것 같고, 요즘 어떤 점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쏟아 놓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은 해 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피부에 상처가 없을 땐, 씻을 때 전혀 아프지가 않다. 하지만 상처가 나면 물만 닿아도 아프다. 우리는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서 빨리 낫도록 한다. 그런데 심리적인 상처는 자꾸 생각하면서 더 고통스럽게 한다. 상처 부위를 후벼 파는 것처럼... 어쩌면 환자(나)가 이야기하는 그 일들이 심리적으로 건강할 때였더라면 아무러지도 않게 지나갈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이제 증상(불안)이 가라앉고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니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힘들 때, 즉 나에게 위로와 지지, 격려가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았구나. 그냥 흘려들어도 되었을 말인 것을 왜 그렇게 되뇌며 힘들어했을까. 뒤늦게 '그때의 나는 많이 힘들었구나.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구나.'를 알게 되었다.


2023년 9월 육아휴직 첫 달. 좌) 내가 원하는 수업 들으러 가는 길, 우) 가방에 노트북 대신 그림책 담기 


다음 이야기: 나는 '사회불안' 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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