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나는 종종 알레르기 때문에 안과에 간다. 어느 날 안과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 의사: 눈이 많이 충혈되셨네요.
- 나: 알레르기가 심한가요?
- 의사: 충혈은 증상이고 그 원인은 다양해요. 알레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안구 건조증이 심해서일 수도 있고,
결막염이나 안구 질환 때문에 충혈이 되기도 해요.
내가 평소 알레르기로 안과에 방문하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충혈 = 알레르기가 심한 것> 이란 도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충혈은 하나의 증상일 뿐, 충혈이 나타난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내가 알레르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이 충혈된 것이 언제나 알레르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담사로서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산만한 모습 = ADHD 증상> 이란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경우를 종종 접한다.
물론, 아이가 ADHD이기 때문에 산만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가능성이 0%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산만한 이유에 대해 언제나 ADHD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산만함은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아이와 성인 모두)이 산만한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불안한 마음이 크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
- 우울이 심한 경우, 집중력이 떨어져서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
-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산만해진다.
- 몸이 힘들거나 피곤하면, 주어진 과업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해 산만해진다.
- 지적 능력이 낮은 경우, 또래와 비슷한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해 산만해 보인다.
- ADHD를 가진 경우, 산만한 증상을 나타낸다.
이렇듯 아이가 산만한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ADHD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다 보니, 아이의 산만함에 대해서 ADHD를 쉽게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산만함이 ADHD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ADHD는 성격 특성이 아니라 진단명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적응 정도와 발달력을 체크하고, 주의력과 관련한 심리평가가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다른 공존병리가 있는지 체크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산만한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모습이다.
아이가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여 ADHD를 의심하며 아이가 보이는 행동에 대해 ADHD의 증거를 모은다면, 전문가를 만났을 때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수가 없다.
부모들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아이가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ADHD 진단명을 바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 뭐가 힘들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더불어 전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은 기분이 좋을 때도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아이는 즐겁고 설레는 마음에 고양된 모습을 보였는데,
부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