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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Nov 03. 2023

나에게만 평범이 허용되지 않는 것 같은 삶

강원도 어느 산속에 있는 절의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아이와 남편을 집에 두고 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사고, 휴게소에서 호두과자와 커피를 사 먹고, 시내버스로 갈아타 굽이굽이 한 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절이었다.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해 혼자 온 사람도 있었고, 친구와 온 사람도 있었고, 말 그대로 한국 불교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외국인도 있었다. 각자 방이 배정되는데, 마루 가장 끝방 앞에는 운동화 세 개가 쪼르르 놓여있었다. 템플스테이 기본 수칙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저 끝방 가족 분들은 휴식형으로 오셨는데, 어제부터 삼천배에 도전하러 오셔서 프로그램에는 같이 참여 안 하신다고 했다. 그동안 몇 차례 삼천배를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아 성공을 못했고, 이번에는 꼭 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했다.


나는 프로그램을 다 돌고 저녁공양을 하러 갔다. 그때 삼천배를 하러 왔다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부모와 성인인 딸이었다. 딸은 시각장애인이었다. 딸은 나이가 지긋한 부모의 양팔을 붙잡고 걸어왔다. 부모의 든든한 양팔이 있어서인지 그녀에게 처음 밟는 흙길은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세 가족은 모여서 공양을 했고, 나는 그 옆에서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우고는 저녁예불을 가기 위해 밖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딸의 식사모습이 보였다. 딸은 식사를 다 하였지만 섣불리 일어서지 못했다. 처음 와본 공양간에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닐 테다. 아버지는 공양을 마치고 테이블로 돌아와 딸을 일으켜주기에 앞서 들고 온 무거운 가방을 척하고 어깨에 짊어진다. 가방을 메다가 올라간 옷매무새를 단정하고 그다음 딸의 팔을 잡아 나가자는 시그널을 준다. 어머니는 딸을 대신해 딸이 사용한 그릇과 수저를 깨끗이 씻는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혀 힘들어하는 내색이 없었다. 세 가족은 옹기종기 붙어 밥이 맛있다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저녁예불을 드리러 길을 나섰다.


나는 4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과는 주말부부라 주중에는 일을 하며 어린이집의 도움을 받고 내가 육아를 한다. 나는 출산 이후 몸의 회복도 더뎠지만, 부모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너무나도 더뎠다. 내가 중요하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출산 전의 삶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있기는 하다는 마치 전생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는 아직도 육아가 많이 버거워 요새는 내가 전생에 저지른 과업이 얼마나 중한 걸까 생각해 보다가 템플스테이에까지 이르렀다. 성인이 된 시각장애인 딸을 여전히 육아 중인 어르신들을 보니 마음 한켠이 아렸고 찡했다. 그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혹은 이 순간 평온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삼천배의 성공을 그토록 바라던 거 아녔을까?


우리는 모두 항상 무언가를 소망한다. 내년에는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등과 같은 소망을 비는 사람도 있을 테다.


국선변호인 일을 하면서 내 방에 오는 피고인들은 암에 걸린 엄마가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를 본 적이 없어 아빠를 보게 해 주세요, 하루 만원도 없어 라면 말고 밥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다리 마비로 평생 앉아서만 살아야 해서 걸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덜 고통받게 해 주세요 등과 같이 그 소망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자신에게는 쉽게 허용되지 않는 삶이더라도 너무 춥지 말고 따뜻하길 바란다.


세 가족은 내일 다시 삼천배를 처음부터 시작하신다던데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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