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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Jun 17. 2021

일상생활이란 무척 대단한 것이었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을 때

만 서른 살이 되자마자 조금 큰 수술을 하게 됐다.

건강검진을 통해 췌장에서 발견된 이 원인 불명의 혹은, 현재로서는 증상도 없고 생명에 지장도 없지만 놔두면 언젠가 지장이 생길 것이므로 조치가 필요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수술은 예상보다 커졌고, 배에는 명치부터 배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 3주간의 병원생활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하나하나 부담이 되어 다가왔다. 누워있다가 일어나거나 허리를 굽히는 것이 어려웠고, 걸음 많이 느려졌으며, 식사량 줄어 체력이 몹시 떨어졌다.

분명히 회복은 순조롭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할 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도 한계가 있다. 수술은 이미 끝났고 정해진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직장인의 숙명. 병가 기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그래서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이리저리 요령을 피워보기로 했다.


몸 상태 모니터링하기

병원에 있는 동안은 측정 지옥이었다. 체중, 체온, 혈당, 혈압은 물론 얼마큼 먹고 배출하는지까지 모두 기록다. 거기다가 며칠에 한 번씩은 X-ray와 CT 촬영까지... 의식이 가물가물했을 때 침대를 통째로 옮겨서까지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측정했다. 퇴원하고 나서는 이 정도까지의 케어는 필요 없지만 수술 후 상처와 수술부위의 회복 상태를 가늠하기 위해 몇 가지는 계속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었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실연이 아니라 질병이었다

입원 중에는 수술 직후 1주일 정도 금식을 했음에도 체중이 5~6kg 정도 불었었다. 매일의 체중에 따라서 이뇨제의 투약량이나 먹어야 할 약이 결정됐다. 이후에는 며칠 사이에 10kg 정도가 빠져서 오히려 원래 몸무게보다도 살이 많이 빠졌다. 퇴원 후에도 어느 정도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는지, 살이 급격하게 찌거나 빠지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체중은 계속 확인하고 있다. 신경을 안 쓰면 입맛이 없어 체중이 조금씩 줄었다. 그러면 기운이 없어서 못 움직이고 또 못 먹는 반복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어느 정도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스마트 체중계가 꾸준히 몸무게를 기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왜 건강검진 문진항목에 '급격하게 살이 찌거나 빠졌습니까' 항목이 있는지 이해됐다.

움직이세요 환자여...!

외과 병동에 있다 보니 주변에는 모두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었는데, 주치의들의 공통적인 피드백은 잔인하게도 수술 후에 계속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스스로 못 움직이니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낮이든 밤이든 한두 시간마다 누군가가 와서 나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며칠 후에는 내 몸 여기저기에 꽂혀있던 관을 하나둘씩 빼면서 직접 걸어보게 했다. 이때부터 내가 스스로 링거가 걸린 카트를 끌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운동을 계속 하시라 했다.

그런데 개인 간 편차가 커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계속 걸으라고만 하지 어느 정도로 운동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객관적인 수치로는 얘기를 안 해준다. 가장 서러웠던 건 운동을 덜 했다고 의사 선생님한테 혼난 것이었는데, '나 전 날 엄청 많이 걸었는데... 간호사 선생님한테 운동 열심히 한다고 칭찬도 받았는데...' 싶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프면 두배로 서럽다. 퇴원하면 스마트 워치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4천 보정도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7천 보 정도로 목표를 상향했다.

퇴원 후에는 내게 적합한 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걸음이 많이 느려지고 불편해져서 어느 정도부터 무리가 되는지 가늠이 안됐다. 목표 걸음 수를 정해놓고 멀리 가지는 않고, 복대를 하고서 조금씩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덕분에 골목 곳곳에 숨겨진 가게들과 아파트의 샛길까지 알게 됐다.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까운 서점이나 쇼핑몰에도 나가보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최적 경로도 파악하게 됐다.


빅스비, 불 좀 꺼줘!

누워있는데 장실 환풍구를 타고 불쾌한 냄새가 넘어왔다. 평소 같으면 얼른 일어나서 환풍기를 켜고 왔겠지만, 혼자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는 이조차도 쉽지 않다. 나는 그저 환풍기 전원을 켜고 싶을 뿐인데. 안타깝게도 다급하게 불러서 불 꺼달라고 말할 동생이 내게는 없다. (내가 바로 그 동생이다) 그야말로 말 한마디로 기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접근성이 필요했다. 다행히 요즘 휴대폰에는 대부분 AI 기능이 기본으로 탑재되어있다. 호환이 되는 기기만 있다면 휴대폰이 조명이나 TV 정도는 켜고 꺼줄 수 있다. 평소에는 '신기하다' 정도로 여겼던 스마트 기능이 아주 유용해졌다. 냄새 측정 센서와 스마트 플러그를 주문해서 화장실 환풍기에 적용했다. 이제 언제 냄새가 날지 걱정하지 않아도 센서가 연동되어 자동으로 환풍기를 틀고 꺼준다. 혹은 그냥 '하이 빅스비! 욕실 환풍기 켜줘!'라고 외치면 된다.

공기질 측정 센서와 스마트 플러그를 화장실에 설치했다. 모든 냄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최소한 치명적인(?) 냄새를 신경 쓸 필요는 없게 되었다.

하나 설치해보고 나니 로봇 청소기도 사고 싶고, 조명도 사고 싶고 집안의 모든 기기를 스마트화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그렇다고 한두 푼도 아니고 멀쩡하게 잘 쓰 전자제품을 싹 다 바꿀 수는 없다. 특히 별도의 허브를 이용하는 제품은 1,20만 원이 우습다. (이런 건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한 뒤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2만 원 대의 스마트 플러그를 몇 개 더 샀다. 똑딱이 스위치를 쓰는 제품들은 단순하다. 파워 플러그만 스마트기기로 바꾸면 된다. 물론 공기청정기나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대기 전력이 필요한 디지털 스치가 있는 제품은 전원을 켜고 끄는 것 만으로는 컨트롤이 어렵지만, 탁상용 조명이나 서큘레이터, 선풍기처럼 대기전력이 필요 없는 기기에는 아주 유용했다.

스마트 플러그를 연결해서 휴대폰으로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다. 타이머나 집에 들어올 때 자동으로 켜지도록하는 등 스미트 설정도 가능하다.


'잘' 지내는 것은 어렵다

수술 전부터 주치의가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환자 스스로가 본인의 병이나 몸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구글링 해서 공부도 해보고 그다음 외래에서 궁금한 점도 물어보라고 했다. 의사는 바쁘다. 기본적인 병에 대한 설명은 해주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또 과학자는 장담을 할 수 없으니 언제나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런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점이 참 어렵다. 수치와 전문가의 경험을 믿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결국은 느낌과 직감, 분위기 같은 것들이 작용한다. 이런 불안함이 병에 대한 오해를 만들거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유사과학의 힘을 빌리게도 만든다. (때문에 주변에 병에 대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가고, 매번 먹은 것을 기록하고, 얼마나 움직이는지 신경 쓰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했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몸이 약해지면 심리적으로도 약해진다. 몸은 이렇게 힘든데, 내가 정말로 괜찮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기록된 수치는 나의 약해진 마음에 객관적 지표로 작용했다.

어차피 생사를 논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당신은 이제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열심히는 못 살 수도 있다. 당분간은.

수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받아들여야 했다. 몸이 약해지면 약해진 대로, 당분간은 거기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가기로 했다. 체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못 먹으면 못 먹는 대로 그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버텨본다.

다만 더운 날 맥주 한 잔을 못 하는 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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