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낡은 스타일을 지칭하는 개념. 구식의 느낌과 남루하고 초라한 개성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데 오늘날에는 틀에 박힌 것을 탈피하고 빈곤과 여유를 강조하는 경향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출처: [다음 백과] 광고 사전
예전에 폐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성수동의 어떤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이런 카페들은 대부분 낡은 벽돌, 세월이 흐른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있고, 겉으로 보기에는 남루한데 왠지 모르게 힙하다. 우리 집도 못지않게 남루한데 왜 힙하지 않은 걸까?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이제 더 이상은 전셋집에 뭔가 하지 말자고 결심했건만,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던 날, 빈티지에 대한모든 고민을 실천으로 옮겨야만 했다.
문이 잘 닫히지 않길래 철컥철컥 했더니 쿵 하고 문이 넘어왔다. 다행히 피했으나 기분이 몹시 참담했다. '이건 또 언제붙이지?'
우리 집은 왜 힙하지 않고 남루하기만 할까
낡은 것과 지저분한 것은 다르다. 지저분한 건 비위생적이고 불쾌한 느낌을 들게 한다. 빈곤과 여유를 강조하는 빈티지 인테리어는 바탕은 남루하더라도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은 늘 고급스러운 제품이고, 깨끗하다. 벽이 남루하면 문이 고급스럽거나, 문이 남루하면 문고리가 고급스럽거나 하는 식이다. 콘크리트는 부서져 있더라도 먼지는 있으면 안 되고, 철 구조물은 세월의 흔적은 보일지언정 녹슬어있거나 위험해 보이면 안 된다. 결론은, 오래된 티는 나지만 깨끗해야 하고 부분 부분 뜯어보면 고급스럽고 안전해야 한다.지저분하면 그냥 빈곤만 너무 강조된다.
기본은 청소다.
일단 지저분한 것부터 없애보기로 했다. 쓸고 닦고 하는 기본적인 청소부터 시작해서, 화장실과 주방의 타일은 락스 청소도 마쳤다. 부엌은 입주할 때 집주인께서 싱크대를 새로 해주신 덕분에, 벽의 기름때만 없애고 나니 금방 깔끔해졌다. 그러나 기본적인 청소로 끝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실리콘
실리콘을 칼로 제거한 뒤 새로 쏴주었다. 실리콘은 다이소에서 2천원에 구입.
지저분하게 남아있던 실리콘을 제거했다. 이 위치에는 실리콘이 아니라 백시멘트로 메꿔야할 듯.
화장실에는 왜인지 전체적으로 실리콘이 두껍게 발라져 있었고, 여기에 얼룩진 곰팡이는 실리콘 안쪽에 피어있는 것이어서락스를 써도 사라지지 않기에 칼로 실리콘을 제거해버리고 새로 쏴주었다. 특히 문틀 테두리의 실리콘은 이전에 세탁기를 집어넣을 때 문틀을 잘라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는데, 문틀을 다시 붙인 후에 보수를 위해서 더 두껍게 바른 것 같았다.
철물
이 철재 랙은 입구보다 큰데 어떻게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베란다 한쪽 벽에 철재 랙이 있었는데, 녹이 슬어 있어서 활용하기가 애매했다. 동네 철물점 사장님의 조언을 얻어 사포질 및 녹 제거 후 락카를 뿌려주었다. 지금은 잡동사니를 수납하고 있다.
경첩에도 페인트가 칠해져있어 나사못은 볼트리무버로 간신히 빼냈다.
현관문 경첩, 잠금장치 등 쇠붙이 곳곳의 오래된 흔적은 녹 제거제로 청소 후 방청제(WD-40)를 뿌려주었다. 문제는 문틀과 똑같이 페인트로 뒤덮여 있던 방 문고리와 경첩. 이전에 페인트칠을 할 때 마스킹을 안 한 듯한데, 지저분하고 소리도 나고 한쪽이 살짝 주저앉아 불안한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있었다. 결국 경첩을 교체했는데, 이후에 문제의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음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시 달았다. 오래돼서 헐거워진 나사못이 문제였고 지금은 튼튼하게 잘 달려있다.문고리도 모두 교체하고 싶었는데, 문틀 크기가 약간 달라서 규격에 맞는 문고리를 찾기가 어려워 그냥 뒀다.
나사못이 헐거워진 자리엔 이쑤시개를 채우고 드릴로 박으면 튼튼해진다.
최소한의 페인트칠
페인트칠까지 제대로 하면 너무 힘들다. (안 그래도 요즘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다녔다) 문짝이 떨어진 김에, 유난히 많이 닳아서 지저분해 보이는 욕실 문지방 부분에만 전에 쓰다 남은 페인트를 칠해뒀다. 말려가면서 2번씩 덧칠해주었고, 젯소 -> 페인트 -> 바니쉬 순으로 발라주었다. 젯소를 칠하지 않으면 힘들고 귀찮게 칠한 페인트가 금방 벗겨질 것이고, 바니쉬로 마감하지 않으면 크림색 문지방이 곧 발바닥 색이 될 것이었다. 약 1주일 경과 다행히 아직까진 크림색 문지방을 잘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 색이 크게 이질감이 들지는 않는다. 이래서 화이트 화이트 하나보다.
보일러실 철문도 핑크로 덮여있였는데, 녹을 제거 해봐도 이미 빈티지를 넘어선 상태인 듯했다.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문의드린 결과 이런 색은 락카로 색을 맞추기 힘드니 페인트를 조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인트칠은 한 번 시작하면 집안 전체를 다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얘만 튄다) 그리고 상대는 철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색이 비슷한 인테리어 필름을 주문했다. 인테리어 필름은 말릴 필요도 없고 마스킹을 할 필요도 없이 손잡이만 떼었다가 다시 달면 되어서, 페인트칠보다 간편했다.
꽃행거는 드라이기로 더운바람을 쏘이면서 스크래퍼로 떼어냈다.
빈티지는 비싸다.
처음에 집을 볼 때 부동산에서는 조금 더 비싸고 덜 낡고 더 큰 집도 보여줬었다. 그러나 아직 짐이 많지 않았기에, 차라리 좀 더 싸고 낡고 작은 집에 들어와서 좋은 물건으로 채우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입주할 때부터 가구와 가전제품은 예쁘고 쓸만한 제품으로 신경 써서 골랐는데, 집안을 예쁘게 꾸며도 안전성에 위협을 받는 요소가 있으면 집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구로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화장실 가는게 스트레스이면 그 집에서는 오래 살기 어렵다.
위생적이지 않아 보인다거나, 불쾌한 냄새가 난다거나, 소음이 들리는 집에서는 편안하게 쉴 수 없다. 약 3개월 동안 집에 오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회사 일도 바쁜데, 집에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어서 진도를 못 내던 것을 문짝이 떨어지던 날, 서러움 반, 오기 반으로 그냥 저질러버리게 되었다. 후각적인 불쾌함에 이어 이제 시각적인 불쾌함도 상당 부분 극복하였다. 몸은 힘들어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단지 불안한 점이라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나는 여전히 택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