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워 외면했던 따릉이에게 사랑에 빠지다.
부산 사람인 내가 처음 따릉이와 만난 것은 노원에서였다. 학교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걸어서 20분. 오르막길 없이 완전 평지라 자전거 타기 딱 좋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거리에 있는 따릉이들을 외면했다. 일단 예뻐 보이지가 않았다. 초록색이 촌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180이 넘는 키인 내가 타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다. 따릉이를 타려고 등록하는 과정도 귀찮아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 길을 몇 개월동안 그냥 걸어 다녔다.
따릉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것은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동기 중에서 굉장히 세련된 서울출신 여자가 있다. 명품도 잘 알고, 백화점도 잘 다니고. 헤시태그를 금지하는 힙하고 멋진 공간도 어떻게 찾아다니는지 척척 찾아낸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그 친구와 접점도 딱히 없었고 세련되고 힙한 공간보다는 국밥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그 친구와 그렇게 친하진 않다. 동기이자 인스타 DM으로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고, 그 친구한테는 말은 안 하지만 그 친구가 갔던 공간을 나도 가보고 신기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세련된 친구가 어느 날부터 자기가 따릉이 타는 걸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세련된 이 친구와 촌스러운 따릉이? 전혀 매칭이 되질 않았다. 어쩌다 한 번 타는 게 아니라 자주 타고 즐기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세련된 동기들과 선배들도 그 촌스러운 따릉이를 타고 즐기는 것이다! 촌스럽고 작고 사용환경도 구려 보여서 외면했던 따릉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해에 살기에, 바로 따릉이를 타볼 수는 없었다. 가끔 서울에 출장 때문에 올라갈 때는 차를 가지고 갔기에 대중교통을 탈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따릉이를 한동안 잊고 있었다.
따릉이를 다시 만난 것은 잠실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작년 가을에 서울로 올라갔을 때다. 내가 노원에 있던 18년도만 해도 따릉이는 뭘 복잡하게 등록해야 하고 어려워 보였는데, 친구가 말하길 이제는 앱만 깔고 QR코드만 찍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해보니 매우 간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가격도 매우 착했다! 1000원에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니. 7일권도 3000원밖에 안 했다. 버스 지하철보다 저렴한 가격에 감동을 받았다.
친구와 커피와 디저트를 사들고 잠실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상쾌하진 않았지만, 지하철로 항상 지나쳐 서울 구석구석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따릉이를 타고 도심을 느끼며 한강공원까지 자전거를 타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예상했듯 따릉이는 안장을 최대한 높여도 나에게 낮아서 타는 게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부산과 다르게 서울은 도시 대부분이 평탄한 편이고 자전거길도 잘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진 않았다. 내 TREK 로드 자전거보다는 당연히 훨씬 기어비가 작은 3단 기어지만, 도심에서는 나름 쓸만했다.
자전거 바구니가 있어서 짐을 싣기에도 굉장히 편리했다. 그리고 따릉이는 자전거 체인 위를 덮어주는 커버가 있어서 펄럭거리는 통바지를 입어도 체인 기름이 묻지 않는다. 꼭 체육복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탈 수 있다!
1시간권을 끊었기에 1시간이 초과되면 대여소를 찾아 반납 후 재대여를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것마저 퀘스트처럼 느껴지고 재미있었다.
따릉이를 타고 도착한 한강공원은 낭만적이었다. 노원에 살 때는 학교에 치여서 잘 놀러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한강공원을 간 것도 처음이었다. 늘 그렇듯 미세먼지가 나빠 저 멀리까지 야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밤의 한강공원은 너무 매력 있었다. 밤을 즐기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실컷 웃었다.
밤이 늦어 돌아올 때도 따릉이를 타고 천천히 도심을 느끼며 친구의 집으로 돌아왔다.
따릉이를 타면서 서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 미친 듯이 좋은 인프라! 수많은 따릉이 대여소들과 이 자전거를 유지 보수하기 위한 사람들. 편리한 따릉이 앱. 따릉이가 몰려있으면 다시 재배치해주는 인력들. 정말로 잘 되어 있는 서울의 자전거 도로들.
내가 사는 남해와 크게 비교가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서울과 비할 바 없이 기가 막히게 좋지만, 자전거도로는 커녕 인도도 잘 안되어 있어 위험하게 찻길 길가로 다녀야 하니까. 서울은 인프라가 이렇게까지 잘 되어 있으면 자동차가 정말 필요 없겠다 싶었다.
며칠 전에도 서울에 놀러 갔다. 이틀 동안 따릉이로 34km를 누볐다. 서울역에서 홍대에 있는 숙소까지. 한강길을 쭉 따라 난지캠핑장까지. 서울에 오면 늘 들리는 영등포에 있는 피아노 연습실에서 영등포 코끼리 베이글까지. 한 시간 반을 기다려 갓 구운 뜨거운 베이글을 호호 불어서 먹고 남해로 돌아가기 위해서 남부터미널까지.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서울 구석구석을 천천히 누비던 기억이 따뜻하다.
내가 타던 로드 바이크를 타면, 어쩔 수 없이 속도 본능이 생겨 씽씽 달리게 된다. 그러니까 주변 풍경에 주위를 기울이며 현재를 즐기긴 힘들다. 하지만 따릉이로는 속도 내기가 힘들다. 나를 쌩쌩 추월해 지나가는 로드바이크들을 보며, ’ 그래, 지나가라 ‘ 싶었다. 나는 따릉이와 ‘지금, 여기’에 머물며 따뜻한 봄햇살과 한강과 서울을 느낄 테니.
저렴한 가격으로 서울 어디든 마음껏 누빌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교통수단 따릉이. 하지만 몇몇 자전거들은 바디에 녹이 슬고 체인 오일이 없어서 뻑뻑했다. 너무 요금이 저렴해서 유지가 될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해 수십억씩 적자를 내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가격으로 올리더라도, 유지보수가 잘 되어 앞으로도 감동적인 공공 서비스로 남아, 서울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