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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Oct 02. 2021

지나간 올림픽과 출근길 라디오 그리고 박장순 선수

#에세이 50

몇 달 전, 지겹던 코로나 시즌 중 개최되었던 도쿄 올림픽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렵게 열린 세계적 축제인 만큼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고, 그와 함께 대회 운영 미숙과 골판지 침대에 관한 에피소드들 또한 뜨거웠다.  모든 대중 매체들은 연일 현지에서 넘어오는 올림픽 관련 기사를 정리하고 방송했다. 잠시나마 코로나를 잊을 수 있었어 행복했고, 가슴팍에 단 태극기의 무게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올림픽 시즌 중의 아침 출근길이었다. 여느 출근길과 다르지 않게 도로는 넘실거리는 차들로 꽉 막혀있었지만 쾌청한 하늘은 뻥 뚫려있었다. 뻥 뚫려있는 하늘 위로 햇볕은 강렬했다. 몇 년째 같은 주파수로 고정되어 있는 자가용의 라디오에서는 올림픽 특집 보도를 하고 있었다. 예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의 출연과 함께 잊혀진 뜨거움과 지금의 뜨거움이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날의 출연자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74kg 급 금메달리스트 박장순 선수였다.


박장순 선수는 깊은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깊은 저음은 몸속 끝에서 또렷하게 올라왔다. 훈련 중 잦은 부상과 불투명한 앞날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잡고 훈련했다 말했다. 그때 그것은 자신의 전부였다고 도 말을 덧붙였는데, 훈련 중 뇌진탕 판정을 받고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은 훈련장 매트였다고 말했다. 그런 정신으로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그저 운이 좋았다." 라며 겸손은 더욱 자세를 낮췄다. 깊은 저음과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 내용은 그가 정의한 '헝그리 정신'이었다.


대전에서 상경한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성공의 도시 그 자체였다고 한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 세련된 옷차림을 보며 그것들을 동경했고 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그들 속에서 당당히 걷고 싶었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헝그리 정신의 헝그리는 저것들에 대한 굶주림이었다고 말했다. 부족한 지원과 식음료에 관한 굶주림이 노력으로 승화되어 승리로 피어나는 것이 아닌, 성공에 대한 깊은 갈증과 갈망, 욕구와 가난의 대물림을 자신의 대에서 만큼은 끊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에 대한 굶주림이 헝그리 정신의 밑바탕이라며 정의했다. 마지막으로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다였다라며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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