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30
오늘은 여름휴가의 첫 번째 날이다. 출근을 했다. 그것도 새벽 5시에 말이다. 정확히는 새벽 5시 20분쯤에 공장에 도착했고, 시간에 맞춰 도착한 형에게 늦었다며 사과했다. 4-5년 만에 얻은 첫 휴가날 내 입에서 처음 나온 소리는 '미안해'였다. 생각해보면 그 미안함은 먼저 도착한 형제을 위로하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직장이라는 것을 그만 둔지 4-5년 정도 되었다. 무역업의 수입과 수출을 기본에 두고 그에 해당하는 관세법 상담을 해주는 업체였다. 10여 년 만에 성장한 회사는 작지 않았다. 각 지역의 항만과 공항에 지사가 있었고 본사는 당연히 서울에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공항과 항만이 그렇게 많은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대표의 나이는 당시로 40대 후반으로 꽤 젊었다. 젊어서 밀어붙이는 것이 강했고, 젊어서 답답한 것을 싫어했다.
직장을 다닐 때 여름휴가는 보름 정도로 꽤 길었다. 부서마다 달랐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렇게 쉬었던 걸로 기억한다. 회사의 복지가 좋아서 그렇다기보다는 연차에 월차를 붙이고 거기다 '서로 조금만 더 힘들면 긴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암묵적인 타협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휴가를 보내는 직원의 15일과 휴가자의 업무를 몰려 받은 직원의 15일은 속도가 달랐다.
그때는 미안함도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휴가 앞에선 쌍방과실이었다. 다만 인간의 도리로서 최소한의 업무 정리는 하고 가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형과 작은 공장을 운영중임으로, 저런 식의 여름휴가는 다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느끼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휴가 이틀날인 내일도 역시 새벽 5시에 출근하기로 한 뒤 책상에 앉았다. 이럴 거면 휴가는 뭐하러 있냐는 형의 퉁명스러운 말에 바쁜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며 무덤덤하게 전하고 끊었다. 그것이 작은 위로가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