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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Aug 05. 202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와 단상 #5

넓은 키즈카페엔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작은 미끄럼틀 아래로 플라스틱 공들이 가득해서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는 아이들은 해맑았다. 미끄럼틀 외에도 사방의 놀이기구엔 아이들이 즐비했지만 어른들은 지쳐있었다. 그런 어른들 사이사이로 아이들은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일면식이 없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몸을 부딪쳤다. 몇몇 어른들은 뒤에서 쭈뼛거렸다.


왼쪽의 유다이는 방금 놀이기구 안에서 빠져나왔다. 서로 매달리며 플라스틱 공을 던져대는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놀았지만 체력이 금세 빠진 듯했다. 겨우 나와 오른쪽에 앉아있던 료타에게 말을 건넨다. 둘의 가족은 '어떤 사건'으로 엮어져 있었다.


유다이 - 료타 씨는 나보다 더 젊으니까 애랑 같이 있을 시간을 더 만들지 그래요.

료타 -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는 것도 괜찮잖아요.


료타는 말을 받았다. 유다이 보단 적은 나이의 그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였고, 삶 역시 여유로웠다.


유다이 - 목욕도 같이 안 한다면서요?

료타 - 우린 뭐든 혼자서 하게 하는 방침이거든요.


유다이의 질문에 료타는 고개를 돌려 대답한다. 그의 말투엔 건성이 가득했지만 유다이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말을 건넸다.


유다이 - 방침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걸 귀찮아하면 안 돼요.

료타 - 시간만이 중요한 건 아니죠.

유다이 -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죠,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유다이의 말을 들은 료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료타의 눈은 자신과는 다르게 보잘것없어 보이는 유다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료타 - 회사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늘 웃는 표정인 유다이의 표정은 빠르게 굳었다. 차가웠고 날카로웠다. 료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다이가 말에 답했다.


유다이 -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단상


난 늘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한다. '뭐가 재미있는데 꼭 봐.', ' 이건 꼭 봐야 돼, OOO 연기가 장난이 아니야.', '올해 이거 못 보면 큰일이다, 큰일.' 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 나의 형에게 전하는데, 그는 일찍 출가해 슬하에 아이가 둘이다. 이름은 지연과 수연으로 서로 7살 차이가 나는 자매지간이다.


이 영화는 그가 추천해 줬다. 두 딸의 아버지인 그는 두 번을 봤고, 두 번다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같은 아빠로서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냐며 물었다. 그는 내가 즐겨 쓰는 말로 질문을 회피했다.


"직접 봐."


나는 미혼이다. 미혼이라 자식이 없고 게다가 결혼을 한다면 2세에 관해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에 대해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식이 없는 나지만 내가 자식이었던 때를 생각했다. 어렸을 적 내 부모는 늘 부재중이었다. 가난은 서로를 찢어놨고 어린 나는 세상 모든 가족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특히 아빠는 늘 자리에 없었는데, 봄에는 벚꽃을 보고 가을에는 낙엽을 보러 홀로 돌아다녔다. 여름과 겨울은 덥고 춥다 하며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볼 수 없었다. 그런 아빠의 시간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아빠의 빈자리는 꽤 컸다.


가끔 놀러 오는 조카들을 보며 내가 아빠가 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의 형이 그렇듯 나 역시 퇴근 한 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듯싶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것이고, 늘 곁을 지켜 줄 것 같다. 가장이 된 나의 시간은 가족을 위해 흘러갈 것이고 멈춰버린 내 청춘의 시계엔 먼지만 쌓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렇게 아버지가 되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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