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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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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Lee Apr 04. 2020

알코올 탐닉

정병일기 2

거실 바닥에 뺨을 대고 누웠다. 시원하다. 디스코 팡팡처럼 마구 흔들리던 방바닥이 일순 가라앉았다. 정신없이 콸콸 쏟아져내려서 금방 둑이 터질것 같던 머릿속 생각들도 잠시 물줄기가 줄어들었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아니 조울증 약 부작용은 그리 걱정되면서 술은 왜 못끊어요? 이 약에 부작용이 있대도 술보다는 훨씬 덜한 거에요."

"술은... 옛날부터 남들도 다 마셔온거니깐 문제가 생겨도 덜 억울할것 같아서요"

생님은 내 농담에 예의바르게 웃어주었는데 그게, 부끄러웠다. 재치있는 척 안간힘을 쓰던 내가 새삼 지겨웠다. 그래도 난 돈을 지불했다. 어쨌든 의사도 서비스 직종이니까.



술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부딪히며 돌아다니던 생각의 속도가 줄어든다. 이럴때 좀 가만히 누워있으면 머릿속 압력이 점점 낮아지면서 뱃속까지 부드러워진다. 같은 증상에 술이 그렇게 나쁘다지만 이러니까 아예 안 마시기 어려운 것이다. 며칠간 참았으니까 오늘쯤 한두잔 마신다고 뭐 그리 금방 죽지는 않을 것이다.



바닥에 닿았던 오른쪽 빰이 이제 차갑고 먹먹하다. 왼쪽 뺨으로 바꾸어 대면서 바닥에 내려놓은 유리잔을 올려다보았다. 색이 진한 에일 맥주의 표면을 아래편에서 올려다본다. 작은 기포들이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서는 표면으로 떠올라서 붙는다. 컵을 조금 흔든다. 더 많은 기포들이 기세 좋게 솟구치다가는 표면 가까이에 갈수록 힘없이 빨려들어서 달라붙는다.



누운 상태로 이메일을 확인한다. 잘하면 내일 아침 일정을 움직여서 늦은 오후에 붙일 수도 있을것 같다. 이대로 좀더 마셔도 될 것이었다. 냉장고에 반쯤 남은 자몽소주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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