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자다 깨서 그래"
엄마랑 전화를 끊고 집안일을
하는데 아무래도 찜찜해서
슈퍼에서 아빠 좋아하시는 토마토
엄마 좋아하는 홍시를 사 들고
친정에 갔다.
"엄마, 왜 불은 다 끄고 있어?
밥은 먹었어?
밥도 안 먹고 여태 있는 거야?
불 좀 키고 살아? 전기세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아껴
내가 내줄게 환하게 좀 하고 살아"
자식한테 폭풍 잔소리 하는 엄마
처럼 두더지 굴에 웅크리고 있는
엄마를 보니 속상한 마음에 폭풍
잔소리를 했다.
"왜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왔냐
너 아까 전화했을 때도 온단 말
없었잖아?"
"내기, 엄마네 오는데 허락받고
와야 하나 뭐.
엄마 목소리가 다 죽어 가길래
신경 쓰여 왔지?"
"입맛도 없고 나이 먹어서 그런지
다 귀찮아 그래, 별일 아니야"
"엄마, 가을 타! 우리 엄마 아직
소녀네.."
"뭐 먹을래? 넌 밥 먹었어?"
"먹었지. 시간이 몇 신데.. 이건
뭐야?"
소파에 펼쳐진 서류가 보여서
읽어 보았다.
아버지 종합검진 한 소견서였다.
한 장 한 장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
종합 소견란에 <인지장애>가
씌어 있는 게 보였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오늘의
엄마 컨디션이 이것 때문에 안 좋았
던 거였구나! 하고 느껴졌다.
작년에 파킨슨 질환 판정을 받고
꾸준히 치료 중이셨다.
"엄마, 아빠 약 드시고 요새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처음에
진단받고는 가슴이 철렁했는데
그래도 약이 아빠랑 맞아 다행인 거
같아!"
"니아빠, 나중에 더 심해져도
엄만, 니아빤 요양병원 같은 데
안 보낼 거야.니엄마 먼저 가지
않는 한, 엄마가 네 아빠 다 케어
할 거야
평생을 가족이랑 헤어져 살았는데
또 가족이랑 헤어져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엄마,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벌써부터 미리 걱정해?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자식들이랑
살면 되지. 내가 아빠 좋아하는
토마토랑 엄마 좋아하는 홍시 사
왔는데.. 아빤 어디 가셨어?"
"약속 있다고 나갔어.
좀 답답하신 가 봐"
우리 아빠는 현대건설에서 중동
지방에 해외 근로자들 파견하실 때
그분들 식사를 담당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를
했다.
엄마말에 의하면 아빠는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안이
가난해서 일찍부터 어린 나이에
나와 취직 한 곳이 식당이셨고
그 이후에 중식, 일식 자격증을
취득해서 그쪽 분야에 취직이
되셨다고 했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돈을 더 버실
요량으로 중동지역까지 나가시게
되셨고 그 첫걸음이 그 뒤로도
쭈욱 아버지를 타향살이하게
하셨다고 하신다.
오랜 외국 생활에 익숙해진 아버진
언젠가부터 내 나라 한국이 더 낯설게
느껴진 사람이셨다.
사실 난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요새 부쩍 연로해져 가는
아버지를 보면 속상하다.
그게 부모와 자식이어서 그런가
보다.
엄마의 불안함도 알 것 같다.
나 역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씩
말과 행동이 조금 어눌하고 느려져
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
세월을 멈추어 세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자꾸 불안해
하는 엄마를 다독거릴 수밖에
시간 날 때마다 그리고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자 노력할 수
밖에.. 그게 최선이기에..
친정집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에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자꾸만 하나씩 떨어지는 은행잎을
보며 금빛 반짝이는 낙엽 하나가
우리네 인생 같단 생각이 든 날이었다.
조만간 또 친정에 와야겠다.
서프라이즈처럼 놀러 와서 그땐
아빠가 좋아하시는 짜장면 한 그릇
탕수육 사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