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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자 씨는 욕심쟁이

by 문학소녀

나는 학창 시절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시고는


"인영아, 혹시 미술 학원 다니니?"

물으셨다.


"아니요.

그냥 제가 상상해서 그려요"


"미술학원 다니면 더 잘할 것 같아!

색채감도 너무 좋고.."


난 그날 집에 가자마자 처음으로

엄마한테 뭔가를 배워 보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음에 보내 줄게. 엄마가 형편

나아지면.."


엄마의 그 형편이 나아지면은 내게

늘 희망고문 같은 거였다.

끝내 난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마다 잘 그린

그림을 뽑아 교실 게시판에 걸어

주시는데 늘 내 그림이 뽑혀 걸어

있는 걸로 만족했던 어린 시절이

였다.

.

.

.

세월이 흘러 난 고등학생이었고

바로밑에 내 동생은 중학교 3학년

이였는데,, 며칠에 한번 꼴로 과외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미웠다.

내가 그렇게 미술학원 보내 달라고

했을 땐 형편이 안 된다고 하시더니

동생은 과외를 다니고 있다 생각

하니 동생도 미워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공부를 참 잘했다.

늘 전교 3등 안에 들었으니까.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신감까지

들었었다.. 사춘기가 크게 온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나와 동생을

편애하나!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잠깐 엄마랑 동생한테 평상시랑

다르게 툴툴거렸던 시기가 있

었다. 그리고는 또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갱년기가 오고 뭔가 내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맨날 누구 딸,

누구네 며느리, 누구의 와이프,

누구 엄마로 사는 게 슬펐다.

내 이름이 이젠 가물가물 해져서

소멸해 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들도 성인이고

이제 내 길을, 내 이름을 찾고 싶었다.

제일 먼저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13살 나이에 그렇게나 가고 싶었던

그곳에 드디어 입성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가 그림을

배우러 가는데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미술 배우신 적 없다 하시지 않은

셨어요? 색채감이 너무 좋으세요"


첫 수업에 칭찬을 받았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그런데 갑자기

잊고 살았던 그때 일이 생각났다.


수업이 끝나고 마침 엄마한테 들릴

일이 있어서 칭찬받은 그림을 가지고

엄마네 갔다.

마치 초등학교 학생이 미술상이라도

받아온냥


"엄마, 나 선생님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해 주셨어"

하고 그림을 보여 드렸다.

70대 우리 명자 씨는

내가 건넨 그림을 보더니


"내 딸, 진짜 그림 잘 그리네

엄마가 딸 재능을 오랫동안

몰라 보았구나!

진작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

그땐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내가

신경을 못 썼어"


먼저 말을 꺼내시에,


"엄마,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그때 인선인 왜 과외시켰어?

나한텐 학원 보낼 돈이 어딨 냐고

했잖아~ 나 고등학생 때도 우리

아빠 사업 이후 많이 힘들었는데.."


"그게 서운했구나! 그때 인선이는

반공짜로 한 거야. 학원 선생님이

인선이가 공부 잘해서 아무래도

과외 간판 홍보겸 해서 그때 당시

과외비 반만 내고 다녔을 거야

엄마도 말은 안 했는데 늘 그게

목에 가시처럼 걸리더라"


"그랬구나 뭐, 지금이라도 내가

배우면 되지! 이렇게 취미로.."


그날 이후로

엄만 내가 그때 가져간 그림을

액자에 껴서 걸어 두시고는 매일

닦고 또 닦고 늘 보신다고 들었다.


작은 에피소드 같은 사건이지만

이제라도 오해가 풀려 다행이다.

사실 며칠 뾰로통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어렵게 고생 많이 하시고

살아온 것을 누구보다 제일 먼저

느낀 장녀였기에.. 난 많은 것을

동생들한테 양보했던 것 같다.


2월에 있을 전시회 준비로

오늘도 시화 작품을 완성했는데

한 작품 한 작품 완성될 때마다

누구보다 더 좋아하시는 엄마다.


꽂히는 그림마다 다 달라셔서

우리 집에 있는 내 그림보다 엄마네

집에 가 있는 내 그림이 더 많.


딸 그림이 너무 이쁘다고..

거실, 안방, 부엌, 작은방 안 걸어 두신

공간이 없으실 정도이다.


어린 마음에 반짝 엄마를 오해해

미워했던 내 마음이 미안해 해질

지경이다.


"딸, 오늘은 무슨 그림 그렸어"

톡으로 사진을 찍어 보여 드렸더니

"어머, 이것도 이쁘네! 이건 또

엄마 언제 줄 거야?"


"엄마,, 엄마네 벽보다 그림이 더

많은 거 알지?"


"딸이 주면 내가 이고라도 자면

되지!"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 왠

그림 욕심이 그렇게 많아?"


"나도 눈 있다 얘

내가 아무 그림이나 다 좋대니

내 딸 그림이니 그러지.."


그렇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우리 삼 남매를

제일 사랑하시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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