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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러기퐝 Nov 30. 2020

호형호제

여의섬5


  10여 년 전 당시 편집국 중간간부 중에 회사 내부에서 기인(奇人)이라 불리는 선배가 계셨다. 전형적인 똑게(똑똑하고 게으른)형 상사 스타일이었는데 판단은 빨랐지만 지시는 늘 굵직굵직했고 어젠다를 제시할 줄 알았다. 그 선배는 늘 점심 저녁으로 사람을 만났다. 한 선배는 그 선배에 대해 “전국에 ‘호형호제’하는 사람이 1000명은 된다"고 했다.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를 돌 때 나는 여기자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경찰 내부에 남성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남자경찰들은 남기자들에겐 싸했지만 여기자들에게는 “김기자 오늘은 안 피곤해?,”“커피 한잔 줄까” 등으로 나긋나긋하게 대했다. 남녀 간에 아무래도 이성에 더 친절한 법. 그것 때문에 나도 여기자를 앞세워 쫓아다니며 보고거리를 찾고, 대신 같이 택시를 타고 택시비를 내거나 밥을 샀다. 정글에서 사는 수컷의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자들의 세계에선 나름 무기가 있었다. 여기자가 각종 취재원에게 “오빠~~”라고 하면 구설수에 휘말리게 마련이지만. 남자는 술과 호형호제라는 무기가 있었다. 첫 만남엔 직책을 부르고 두 번째 만나 식사를 할 때는 선배라고 칭했다. 그 뒤에 저녁에 소주를 한 잔 마시면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라고 불렀다. 수컷들의 세계에선 의리라는 게 불문율이다. 호형호제를 하게 되면 뭔가 끈끈한 의리가 생기는 것이다.

  때론 여기자가 남자 취재원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더럿 봤다. 아마 여기자들도 이런 남자들 간의 브러더십을 부러워하며 자신을 남성화시키려던 고육지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 남기자의 메리트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이 흐른 뒤에 이제는 취재원 중에 여성 취재원도 많아졌고 때론 내가 앞장서서 여기자들에게 보은하기도 했다.

  그렇게 호형호제를 남발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때론 친하지 않아도 형님이라 부르는 이들도, 정말 친한 형님들도, 때론 형님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때론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듯 호형호제를 맹세하기도 한다. 위에 언급한 대선배만큼은 아니어도 500명 이상의 형, 동생과 누나, 여동생들이 있는 느낌이다. 그들에게는 그냥 안부전화를 해도 반갑고, 술에 취해 전화가 와도 고맙고, 정보를 주면 더 고맙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호형호제는 상대방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령 상대방에게 “우리 말 놓자”,“우리 사귀자”,“말씀 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지 않으면 “내가 왜 형님이죠?”,“내가 왜 선배죠? 무슨 대학 나왔나요?”라는 식의 답변이 되돌아 올 수 있다.


  딱 한번 호형호제를 거절당한 적이 있다. 결국 수개월인지 1, 2년인지 지난 뒤에 수락을 받았지만. 전직 의원 출신의 유력 정치인은 까칠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최소 5회 이상 만나고 술자리에서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는데 “내가 왜 O기자 형이야?”라고 했다. 근데 그런 거절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수개월 닦달한 결과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도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호형호제를 남발하다간 한 번 만난 사람이 마치 관포지교 사이인 양 행세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의도치 않게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 언제나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적정선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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