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Jul 02. 2020

퇴사를 하던 날의 회고

심리상담 일을 그만두던 날

이 글은 심리상담사로서 퇴사를 결심한 2019년 8월 어느 날의 회고이다.


“저.. 다음 달까지만 일하고 퇴사하겠습니다.”


  휴가로 친구들과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부서장에게 던진 이야기였다. 부서장은 조금 놀란 기색으로 앉아보라며 다른 직장으로 가는 건지, 왜 그만두는 건지 등 전에 없던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상담 말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돌이켜보니 길지 않은 2년 간 나는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부서장은 네가 하고 싶은 분야의 자격증 가져오면 퇴사를 허락해주겠다는 소릴 했다. 나는 퇴사를 허락받으러 온 게 아닌데. 일주일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부서장을 뒤로하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퇴사하기 한 달 전에 사직서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2018년, 아니 이 직업으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고민해왔던 문제였다.

1. 이 일이 적성에 맞는가

2. 흥미로운가

3. 보상이 충분한가(물질적, 정신적)

4. 계속하고 싶은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해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변하지 못하게 됐을 때,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고민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눈 결과로 나는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상담 사례지도를 받을 때도, 프로포절을 준비할 때도, 논문지도를 받을 때도 난 순탄치 않았다. 지도를 받을 때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지도를 받는 시간이 나에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대닐 때도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상담이 잘 안 맞나 봐.' 내가 지나치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자의식이나 피해의식이 커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곧잘 하면서 저런 소리를 한다며 위로를 해주었지만, 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돌은 좀처럼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돌이 점점 내가 숨 쉬는 걸 방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작할 때 긴장과 두려움도 컸지만 그만큼 내담자를 만나는 것이 재밌고 흥미로웠다.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도 있는가 하면, 라포 형성이 잘 되고 쿵작이 잘 맞아서 만남이 기다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하던 상담의 모습과 실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나의 마음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성격유형검사만 기계적으로 실시, 해석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울 때가 있었고, 밀려드는 학생을 주체하기가 어려워 정신과에서 항불안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필요성이나 목적을 알 수 없이 그저 하라니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담자가 두려워졌다. 기쁘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 사람을 피하려고 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그렇다고 직업 안정성이 높거나 보상이 두둑했나? 적어도 그렇진 않았다. 현 직장에 계약직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연봉은 최저임금이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연봉이 1,000만 원 차이나는 직장에 합격하기도 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출퇴근 거리도 가까워서 옮기진 않았다(당시 후회는 많이 했다). 어딜 가도 계약직, 요구하는 스펙과 경력에 비해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 걸쳐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싶어 슬프기도 했다. 10년이 넘도록 유망직종이라 하는 상담사라는 직업은 그저 유망하기만 할 뿐, 언제쯤 여건이 나아질지는 요원할 뿐이었다. (지금은 온라인 상담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상담사로서 수익성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이런 와중에 내가 이 일을 평생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종교가 없는 내가 종교재단의 기관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매주 아침마다 직원 예배를 드리는 것도 날 지치게 만들었다. 부서장의 고압적인 태도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도 마찬가지. 휴가를 다녀와도 일에 대한 피로감과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1년을 고민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평소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내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타인은 나에게 꽤나 관심이 있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을뿐더러 별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 직장은 교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니 나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젊은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꽤 있었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아무튼 그들이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괜히 나도 좀 아쉽고 미안했다. 나만 그렇게 부담스러워했나 보다.


  퇴사 소식이 알려지고 나면 으레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나가면 뭐하려고?', '어디 정해진 곳은 있고?'가 대표적인데, 사실 난 이 두 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쉼 없이 달려오다 방전이 되어버린 나에게 환승하듯 이직하는 건 무리였다. 직장이라는 굴레 바퀴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퇴사를 고민하면서 내가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차례차례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 사진, 회계, 영상편집, 장비 운전 등. 사직서를 내기 직전까지는 나도 떠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겁이 나서 많이도 망설였지만, 이제는 주사위가 던져졌다. 나는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더 잘 해왔으며,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잘 해낼 테니까. 함께 일하는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떠오른다.


“먹고사는 건 결국 어떻게든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