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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Oct 18. 2023

자신을 수용하는 독서의 힘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독후감 응모작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대청소를 했다. 대청소를 하던 중, 우연히 고등학교 때의 졸업앨범을 발견하고 내 모습에 흠칫 놀랐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움츠러든 어린 동물처럼 주눅 든 모습 ……. 불행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얼굴만 앳되었을 뿐, 지금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느끼며 약간의 충격을 느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시절의 상처와 마음속의 응어리가 사라지지 않은 채로 아직 남아있었는데, 문득 나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바로 이 졸업앨범과 같았다. 큰 기대 없이 읽게 된 책이지만,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따끔하고 놀라게 되는 순간이 많았고 내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 이거는 나랑 똑같은데’, ‘아, 내가 그때 이런 상태였구나!’라는 말을 저절로 내뱉게 되면서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퇴사 후 힐링하며 즐겁게 살아간다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의 책인 줄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 책의 진짜 주제는 퇴사도, 힐링도 아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하는 자기 수용’에 있다고 느낀다.


책은 크게 서점의 주인인 ‘영주’와 바리스타 ‘민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두 사람이지만, 주변 인물들도 각자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비중이 있어서 주인공이 명확하게 있고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는 장편소설의 느낌보다는 여러 등장인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한 편, 한편 각자 주인공이 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단편 소설 혹은 짧은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이 돋보였다고 생각하며 소설 특유의 모두를 감싸 안아버리는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각각의 등장인물이 가진 사연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각 인물이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모습에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편치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가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아 편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와 닮아있었다. 회사에 다니다가 번아웃이 와서 퇴사와 이혼을 하고 서점을 차린 영주, 명문대를 나왔기만 원하는 그곳에 취직하지 못해 붕 뜬 채로 살아가는 민준, 승진하려는 상사들한테 이용당해 사람을 싫어하게 된 정서, 자신을 착취하는 무능력한 남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미, 심지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엄마와 갈등을 빚는 어린 꼬마 민철까지……. 소설에 나오는 이들 전부가 삶에서 슬럼프를 겪고 있는 이들이다. 주인공 영주의 말을 빌리자면, ‘마른 우물에 빠져 웅크리고 앉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이들. 


자의이든, 타의이든,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해서 스스로 그런 자신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자기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하여 말수가 적어지거나 지나치게 말수가 많아진 착해빠진 사람들. 단지 배터리가 다 되어서 힘이 없을 뿐인데, 이제는 힘을 낼 수가 없을 뿐인데, 힘든데 안 힘든 척은 할 수 없어서 기운이 없을 뿐인데,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 세상, 심지어 나 자신이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에 우물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 나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8년차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결국 영주나 민준처럼 살아왔었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마른 우물 안에서 웅크리는 내 모습이 보였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은 제대로 봐준 적이 없구나 싶어서, 허탈함과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지치고 힘든 것은 죄가 아닌데, 왜 그동안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을까? 아무리 나 자신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졸업앨범에 찍힌 어린 시절의 우울한 얼굴처럼,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며 내가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더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왜 외면했을까. 여러 차례의 번아웃을 겪으며 너무나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나 자신을 방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이제라도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책 속의 사람들에게 순간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휴남동 서점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슬프고도 좋다’라고 느낀 정서처럼, 그동안 붕 뜨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던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 불편하지 않은 공간, 서로 판단하지 않는 분위기를 원하고 있었구나. 아, 그거면 충분했구나. 받아들여지고 있는 느낌이 슬프고도 좋다는 말은 ‘그동안 자신을 수용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슬픈 동시에 결국에 수용의 느낌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서의 기분을 같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이 소설을 통해 잠시 받아들여졌으니까. 이처럼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쉽게 공감이 되고 그것을 정확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표현하여 읽는 사람의 마음마저 들켜버리고, 감싸안아버리고 마는 것이 이 소설의 신기한 점이다.


영주와 민철의 대화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들이 모두 우물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편해진다’라고. 나 역시 작가가 만들어낸 우물에 빠진 등장인물들을 통해 나만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다. 그리고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독서를 하는 이유는 지식을 쌓고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리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진실한 자기 수용과 치유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책으로 치유받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책’으로 인해 나 자신도 잠깐이지만 치유받았다.


‘웅크렸던 우물에서 일어나면 생각보다 우물이 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에 기분이 좋아진다.’라는 영주의 말처럼, 책을 읽고 나니, 우물에서 한 번 일어나볼까 싶다. 우물에서 일어나서 바람도 맞아보고 세상을 살아나가다 보면 또 다른 우물에 분명히 빠져 슬퍼지겠지만 이 책처럼 내 마음을 알아주고 숨통을 트이게 해 줄 것이 있다면, 나는 또 살아나가지 않을까?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나에게 한동안 단순한 책이 아닌 삶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미풍처럼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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