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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Feb 25. 2023

31주 2편, 평범한 엄마

31주


요즘 아인이는 글씨에 관심이 많아졌다. 글자를 잘 읽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더니, 간판에 있는 글자를 하나둘 읽기 시작했고, 이젠 받침이 없는 글자는 대부분 읽는 것 같다. 그림 그리는 것도 엄청 재미있어한다.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엔 주로 그림을 그린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시기인가 보다. 어느 날 아침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엄마처럼 평범한 사람 말고, 가수도 하고, 화가도 하고, 달리기 선수도 할 거야.”라고. 분주하게 등원준비를 하던 중에 그런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져서 그냥 영혼 없이 웃어주고 말았다. 엄마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니.


그날은 산부인과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의사를 만났는데, 2월 말까지 일하고 퇴사하게 되었다고, 이제 곧 막달인데 미안하다고 하셨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셔서 괜히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진료를 마친 후, 간호사쌤이 진료실 밖에서 이런저런 안내를 해주시면서 의사쌤의 퇴사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자녀가 한분 있는데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어서 퇴사하시는 거라고. 의사가 바뀌는 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 담당쌤이 친절하셔서 좋긴 했지만, 담당의가 바뀌더라도 어쨌든 아이만 잘 봐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퇴사사유가 자녀 때문이라는 게 조금은 슬펐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도 결국 아이 때문에 퇴사를 하는구나 싶어서.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있었을지 모르나 아침에 아인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자꾸 그런 생각만 들었다.


가끔, 포도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저런 모습을 상상해 보다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떤 일도 자신이 없다. 그러다 우울함이 몰려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아인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찾은 나의 일은 어린이집 보조교사였다. 그때는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였는데, 생각보다 일이 할만해서 관련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3년을 일했다. 미래의 직업을 위해 뭐라도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러고 보면 어떻게든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일단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인이에게는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이기도해. 라고 말해줘야겠다.


도리도리하는 포도


31주 진료는 무난했다. 이제 큰 검사들도 다 끝나서, 초음파로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로 진료가 끝난다. 담당선생님은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초음파를 자세히 봐주시는 편인데, 덕분에 포도가 도리도리 하는 모습을 봤다.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요즘은 자꾸 포도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된다. 포도야 얼른 쑥쑥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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