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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Jun 16. 2023

230220 출산후기

*2/19 (34주+3)

저녁 8시에 수상쩍은 분비물이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콧물처럼 찐득하고 양도 많았다. 아주 소량이었지만 갈색의 무언가도 같이 나왔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바로 검색을 해본다. 이슬은 피가 많이 섞여 나온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20 (34주+4)

새벽 4시쯤, 평소처럼 요의를 느껴서 깼는데, 배가 살살 아팠다.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어서 다시 잠을 잤다. 아침(7:38)에 아래에서 뭔가가 터지면서 물이 쏟아지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양수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병원에 전화했더니, 바로 오라고 했다. 남편이 마침 휴가여서 천만다행이었다. 옷을 챙겨 입고, 남편과 아인이가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대충 출산가방을 쌌다. 차에 탔는데 배가 2~3분 간격으로 아파왔다. 아직은 견딜만한 생리통 정도였다.


-8:30 :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해보니 양수가 맞다고 했다. 34주면 조산이고, 다니고 있는 병원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서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병원에서 주변에 갈 수 있는 큰 병원을 알아봐 주셨고, 진료의뢰서를 들고 은평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절차를 밟는 동안 주사실 침대에 누워있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시고, 괜찮을 거라고 한 마디씩 해주셔서 감사했다.  


-9:30 : 은평성모병원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1인만 출입할 수 있는데, 아인이가 있어서 나 혼자 분만대기실로 가야 했다. 남편은 아인이 등원시키고 다시 오기로 했는데, 정신없는 상황에 아인이와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인사하고 떠난 아인이…. 그때부터 심한 생리통의 2배 정도의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병동으로 갔는데, 간호사쌤이 엄청 큰 분만대기실로 안내해 주셨다. 아마도 응급 산모 대기실이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병실 밖 풍경이 좋네,  여기 넓어서 좋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환복을 했다.


침대에 누우니 이런저런 처치가 시작됐다. 초음파도 하고, 태동검사에 엑스레이도 찍고 수시로 내진도 했다. 처음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진행이 빨라져서 안될 거 같다고 하셨다. 띠로리…. 진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아인이를 낳을 때 괴물소리를 내며 진통을 했던 게 생각났다. 두 번째라 그런지 그 정도의 소리는 나지 않았고, 진통이 올 때마다 잊지 않고 호흡을 해줬더니 고통이 30% 정도는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넘 괴로움…… 포도에겐 미안하지만 피임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진통이 올 때마다 간호사쌤들과 힘주기 연습을 했고, 때가 되었는지 분만실로 이동하자고 하셨다.


남편은 이때까지 병실로 올라오지 못했다. pcr결과는 2시간이 지나야 나오고 음성판정을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데, 나는 응급환자라 결과가 나오기 전에 들어왔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음 왔을 때 검사를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보안요원이 그것까진 안내를 안 해주는 바람에 아인이 등원을 시켜주고 와서야 검사를 받았다.


-11:51 : 아무튼 난 보호자 없이 분만실 입성. 그리고 11시 51분. 진통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포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마주한 포도얼굴. 쭈글쭈글 넘 귀여웠다. 포도는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2.77kg, 52cm로 일찍 태어난 거치곤 몸무게가 괜찮았던 포도. 의사쌤은 정상주수 채우고 나왔으면 3kg는 훌쩍 넘어서 분만할 때 힘들었을 수 있겠다고 하셨다. 넘 잘했고 수고했다는 말도 함께. 간호사쌤들은 보호자가 없으니 대신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포도가 내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많이 남겨주셨다. 넘 친절하고 고마웠던 의료진분들ㅜㅜㅜ


왼: 포도야 안녕! / 오: 인큐베이터 첫날


회복실로 이동하고 나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출산소식을 알리고, 어린이집 쌤의 배려로 아인이와도 통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걸 속상해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인이는 의외로 내 전화를 시큰둥하게 받았다.  오후 1시쯤 남편이 출산가방을 싸들고 회복실로 왔다. 나는 왠지 혼자 출산을 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남편에게 한껏 으스댔다.


-16:00 : 입원실로 이동했다. 1인실을 신청했는데, 없어서 일단 4인실로. 그런데 4인실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그냥 계속 있겠다고 했다. 몸상태는 아인이를 낳았을 때보다 훨씬 괜찮았다. 대소변도 바로 잘 봤고, 회음부 통증도 견딜만했다. 남편은 아인이 하원을 위해 5시 즈음 갔고, 친정엄마가 9시 즈음 왔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서 엄마에게 괜히 오라고 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씩 몰려오는 이상한 불안감 때문에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하원한 아인이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인이가 저녁반찬은 뭐가 나왔는지, 간식은 뭐가 나오는지 물어봤다. 그게 왜 궁금한 걸까ㅋㅋㅋ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인이 등하원은 시어머니가 해주시기로 하셨다. 감사한 어머니들ㅜㅜ


*2/21: 입원 2일차

은평성모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하루 한번 30분간 면회가 가능했다. 설레는 맘으로 간 첫 면회. 눈 한번 안 떠주고 내내 쿨쿨 자는 포도만 보다가 왔다. 그런데도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간호사쌤이 한 번씩 와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주고 가신다. 포도는 호흡도 잘하고 젖병도 잘 빤다며 기특하다고 해주셨다. 반가운 소식. 안될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만져봐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안타까운 표정으로 안된다고 하셨다. 언제쯤 안아볼 수 있을까.


*2/22: 퇴원

퇴원할 준비를 다 마쳐놓고, 포도 면회를 하러 갔다. 조리원에 들어가면 면회를 매일 올 수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면회시간 내내 마음이 울적했다. 그리고 이날은 별로 좋지 않은 소식까지 들었다. 뇌초음파상 하얀 무언가가 보이는데 백질연화증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mri검사를 하게 될 것 같다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온갖 무서운 말들이 나오는데, 포도는 수치가 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자다가 눈을 뜰랑말랑하는 포도. 그런 아이를 두고 혼자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간호사쌤 말대로 넘 걱정하지 말자고, 수치가 낮다는 말만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d+3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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