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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Feb 27. 2024

웰컴 포도!  

생후 16일~20일


D+16

 젖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조리원 퇴소 후, 유축을 안 하면 자연스레 단유가 되겠지 했는데 이틀정도 유축을 안 했더니 가슴이 딱딱하게 뭉치고 아팠다. 급하게 유축기를 구해서 유축을 했는데, 젖량은 조리원에 있을 때보다 더 줄었다. 약간의 기대를 했으나 이제 그냥 포기. 젖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닌데, 유축을 할 때마다 기분이 다운돼서 매번 말랑카우를 입에 물고 유축을 한다. 나중에 어디서 봤는데 슬픈 젖꼭지 증후군이라나. 별말이 다 있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집 근처에 초등학생들 다니는 학원이 있는데, 학원차가 매번 주차를 엉망으로 해놓는 바람에 통행에 방해가 된다. 아인이 하원하러 가는 길에 또 그래서 화가 날 뻔했는데, 포도를 생각하며 참았다. 왠지 착하게 지내고 있으면 포도가 하루라도 빨리 퇴원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간절했다.



D+17

 웬만해선 열이 나지 않는 아인이가 갑자기 열이 났다. 코로나일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단순 열감기였고 열도 금방 떨어졌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인이 대신 포도의 퇴원을 걱정했다. 아인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나면 1주일은 격리를 해야 하고, 그럼 포도의 퇴원은 당연히 미뤄진다. 옆에서 기운 없이 앉아있는 아인이를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포도 면회를 다녀왔다. 이날은 특별한 기록이 없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봤더니 포도는 처음으로 배넷저고리를 입고 속싸개를 하고 있었다. 자는 모습뿐이었는데 희미하게 웃는 모습도 있다. 예쁜 내 아가.


D+18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왠지 받기 두려운 전화. 다행히 걱정되는 소식은 아니었다. 포도의 청력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정상이라고. 그날 오후엔 포도의 이름이 새겨진 건강보험증이 배달되었다. 이제 이틀만 더 있으면 포도가 집으로 온다.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치 포도의 퇴원을 미리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았다.



D+19

 내일 퇴원하지만 또 면회를 왔다.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위생가운을 입고, 손소독을 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 그렇게 생각하니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가벼웠다. 포도는 처음으로 면회시간 내내 눈을 뜨고 있었다. 간호사선생님이 수유하는 모습도 봤는데, 그게 뭐라고 귀엽던지. 다 먹고 나서 더 달라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딸꾹질도 하고, 그러다가 분유를 게워내기도 했다. 이때까지 왔던 면회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날.


 산후조리를 해주기로 한 엄마가 오늘 올라오셨다. 포도 퇴원하는 날 와도 되는데, 엄마도 마음이 들떠서인지 미리부터 서두르고 싶었나 보다. 집에 오자마자 먹을 것을 챙기고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엄마. 넘나 든든. 이제 포도만 오면 된다!


D+20

 퇴원시간에 맞춰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 도착했다. 얼마 전, 포도 면회를 왔다가 퇴원하는 아기를 안고 돌아가는 부모를 본 기억이 났다. 포도 퇴원시간은 10시 반, 면회시간은 11시 반. 일이 몰리지 않게 퇴원시간을 잡은 것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이유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폰으로 중환자실 밖에서 벨을 누르고 퇴원하러 왔다고 알렸다. 회의실 같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포도가 아기 침대에 실린 채로 왔다. 수유량부터 다음 외래진료 날짜와 현재 건강상태 등등 모든 전달사항을 듣고 포도를 바구니 카시트에 뉘었다. 남편이랑 나랑 어리바리하고 있으니까 간호사 선생님이 능숙하게 벨트까지 채워주셨다. 늘 친절하셨던 의료진분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포도를 보며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었다. 들뜬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 밖을 나서면서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나 미리 와서 면회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런 내 모습을 보게 된 부모가 있었으면 어쩌지 하고. 내가 뭐라고 그때 그 부모를 비난했을까.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르면서. 포도 인큐베이터 옆에 있던 너무나 작은 아가가 생각났다. 갈 때마다 울고 있던 맞은편 아가도. 부디 하루빨리 퇴원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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