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인스타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로 답변 받은 첫 번째 단어

by 이재동

“하루만 늦게 태어났어도 넌 94년생이었겠네?”


매년 생일마다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31일이 내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 친구들 몇몇은 94년생 1~2월 출생이다. 나이는 한 살 차이지만, 생년월일은 고작 며칠 차이다. 빠른년생이 인정받아 같은 학급에 있었기로니 망정이지, 요새같이 빠른년생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나를 꼼짝없이 형, 오빠라 불렀어야 할 테니.



얼마 전엔 <mid90s>라는 영화를 봤다. 시대적 배경은 영화 제목처럼 1990년대 중반.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한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성장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좋은 영화인데, 우리 감성으로는 익숙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주인공과 함께 비행을 저지르는 친구들은 언뜻 봐도 주인공과 위로 5~6살은 차이나 보인다. 공통 관심사를 통해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서로 욕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갑내기들끼리나 가능한 진풍경이다. 우리는 호구조사가 우선이다. 몇 살이세요부터 시작해 서열정리부터 들어가야 정상인데, <mid90s>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다시 한국. 우리나라식 나이는 문제투성이다. 신입생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의 경우 말일에 태어나 주점 입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 나보다 끽해야 한두달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입장 불가다. 초, 중, 고 시절에 만났다면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을 친구들이다. 사회 경험치는 똑같이 쌓았는데, 생물학적 경험치가 모자라 법적 성인으로 레벨 업을 하지 못했다. 운 좋게 민증 검사를 피해 입장할 수도 있으나, 조마조마한 마음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애교 수준이다.



유교 문화가 바탕이 된 우리나라에서는 “족보가 꼬인다.” 나와 동년배들, 즉 93년 3월생 ~ 94년생 2월생까지는 모두 친구다.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인데, 고졸 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서 말했지만,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는 나이부터 묻는다. 93년 3월 ~ 94년 2월까지였던 ‘사회적 동년배’가 93년 1월 ~ 93년 12월이 된다. 94년 1, 2월생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특정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93년 10월생 A와 94년 1월생 B는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났다. A는 자신을 28살, B는 27살로 소개했다. 자연스레 동생 관계로 친해지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공통의 친구 C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93년생 4월생인 C는 A와도 B와도 친구 사이로 지냈다. B는 C에게 “야!”라고 부르지만, A에게는 형이라 부른다. C는 A보다 6개월이나 먼저 태어난 사람이다. 그야말로 개족보! 고작 며칠 차이로 서열이 갈린다는 것, 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예전보다는 나이를 덜 따진다고 하나, 유교 문화가 베이스에 깔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도 동생들이 편하게 대하는게 좋으나 가끔은 거슬린다. 지난 학기엔 1학년 친구들과 조별과제를 했는데, 주제와 맞지 않는 말을 하길래 ‘그건 좀 아닌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 친구들이 반론과 함께 조금은 억지스러운 논리를 펼쳤었던 기억이 난다. 차분히 내가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말했고 결국 내 의견이 통과되었으나 머릿속에선 ‘새파랗게 어린 XX들이 내가 맞다 하면 맞는 거지 뭘 자꾸 대드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오픈마인드인마냥 행세했지만, 어릴 적부터 주입받아온 유교식 문화 덕에 내 안에는 ‘젊은 꼰대’의 기질이 근본에 자리잡고 있다.



아직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28살짜리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젊은 친구들이 부럽다. 초, 중, 고, 대, 군대를 차례로 거치며 몸소 체득해온 것은 나이와 계급에 따른 무조건적 복종이었다. 그런데 내 다음 세대들을 보라. 할 말은 한다! 젊은 꼰대인 내 눈에는 가끔 “저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당차다. 내가 저럴 수 있을까? 내 신세대 코스프레는 지극히 상황 맞춤형이다. 타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자기주도적이지 않다.



내적 꼰대가 품고 있는 각종 의문들은 대답하기 힘들다. 정말 유교식 문화가 문제일까? 분명 장점도 존재한다. 허면 단순히 외국에 대한 동경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영화의 한 장면으로 전부를 판단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꼴이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것, 정신적 성숙에는 장유유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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