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동 Dec 22. 2022

Modcup 모드컵

내추럴 커피 신봉자들

모드컵001 <FAC01 | Coffee is a Fruit>

오렌지족, 니트족, 딩크족.. 향유하는 문화가 비슷한 이들을 특정한 단어로 묶어 표현하곤 한다. 그중에는 모드족(Mods)이라는 말도 있다. 1960년대 영국에서 생겨난 이 젊은이 집단은 고급문화를 좋아했다. 한 달 봉급을 털어서 값비싼 맞춤 정장을 빼입었다. 요즘 말로는 ‘플렉스’를 한 거다. 당연히 커피와 음악도 좋아했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당시로써는 비주류였던 미제 재즈와 소울 음악을 즐겼다. 좋은 거라면 전부 하고 싶은 인간 본성은 시대를 막론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좋은 음악 틀어주는 카페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태리제 수트 한 벌에 전 재산을 태웠으니 남은 돈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자동차보다 싼 이동수단인 스쿠터를 선택한다. 그중에서도 베스파가 모드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비싼 정장이 거친 도로에 그대로 노출되게 둘 수는 없는 노릇. 무릎을 가릴 수 있는 카울이 있는 베스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하야 하체는 어찌저찌 보호에 성공한 모드족. 남은 건 상의다. 마침 WW2 이후 보급된 M65 피쉬테일 파카가 시중에 넘쳐흘렀으니. 영끌해 구매한 정장 덮개용으로 개파카를 입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정장, 베스파, 개파카는 모드족의 상징이 되었다. 일명 ‘브리티쉬 인베이전’이라 불리는 영국 음악의 미국 상륙 개선장군 ‘비틀즈’의 패션도 모드족스럽다 보면 되겠다.


모드족


모드컵은 이런 모드족의 커피와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들의 정신을 계승했다. 그 이름부터 Mod(모드족) + Cup이다. 그들이 디자인한 BLACK COFFEE 티셔츠는 블랙 사바스 로고를 패러디했다. 화룡점정은 역시나 모드컵의 슬로건인 ‘FAC01 - Coffee is A Fruit’이다. 모드컵 브랜딩의 핵심인 이 메시지는 1978년 만들어진 영국의 독립 음반사, 팩토리 레코드의 완전한 오마주다. 독립정신으로 가득 찬 이 레코드 레이블은 당시 주류 음악과는 반대 노선을 걸었다. 펑크, 포스트 펑크, 레이브... 그들의 영혼은 모드족 그 자체였다. ‘FAC1 – The Factory poster’로부터 시작한 팩토리 레코드 특유의 넘버링을 모드컵의 모토로 만들어 이어가고 있다. 


      

블랙 사바스 -  블랙 커피
FAC1 포스터 - FAC01 COFFEE IS A FRUIT



모드컵002 <내.사.모>

말장난만으로 팩토리 레코드를 계승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독립정신이 핵심이다. 원두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아 장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커피부터 볶아야 하니까 로스터기를 샀다. 상업용 로스터기는 웬만한 중고차 값이 나오니 아마도 돈을 다 털어버렸나 보다. 매장은 못 차렸고 뉴욕에 있는 차고에서 로스팅 배기관을 뚫고 커피를 볶았다(물론 불법이다). 그 고생해놓고 판매는 또 강 건너 뉴저지에 있는 호보켄(Hoboken)에서 했다. 무턱대고 호보켄으로 고른 건 아니고, 나름 유서 깊은 커피 마을이라서다. 과거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있던 곳이고 인스턴트커피로 잘 알려진 맥스웰 하우스의 생산 시설도 있었다. 그런 호보켄에서 커피 한 잔 팔아보겠다고 뉴욕 차고에서 베스파 대신 커피 카트 끌고 매일 강을 건넜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커피 맛은 유죄였던 걸까? 어느새 저지 시티에 4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비결은 내추럴 커피다. 호보켄 길바닥 커피 카트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것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때 모드컵 대표 Travas Clifton이 선택한 건 그 자신도 겪었던 ‘과일 맛 나는 사이키델릭한 커피 경험’을 제공하기였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선 Travas의 2011년 토론토 Merchants of Green Coffee 방문 이야기를 해야 한다. 거기서 내추럴 커피를 처음 마셨고, 충격을 받았고, 커피가 그냥 인스턴트 음료가 아니라 커피 열매에서 나온 씨앗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데.. 사연 더 풀면 구구절절하니 이 정도만 말하겠다. 어쨌든 그 뒤로부터 뉴욕/뉴저지 내의 제3의 물결에 올라탄 카페들에서 내추럴 커피를 찾아다녔다. 허나 돌아오는 대답은 내추럴 커피를 향한 강한 혐오였다. ‘우린 내추럴 없어’ 혹은 ‘내추럴 X나 구려’ ‘그래서 우린 내추럴 없어’가 전부였다. 그때부터 Travas는 손님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워시드 커피와 내추럴 커피를 함께 제공했다. 손님들은 언제나 내추럴 커피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경험을 했으니 모드컵이 돋보일 비책으로 내추럴 커피를 준비할 수밖에.


생두 픽은 자연히 과일맛 풀악셀 밟아버린 내추럴이다. 이것 또한 모드족의 비주류 지향이랑 연관이 있다. 앞서 소개하였던 하트 커피나 루나 커피나 워시드 커피를 선호한다. 비단 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페셜티 로스터리들이 그렇다. 예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드컵은 Travas가 겪었던 커린이 고객들의 내추럴 사랑을 잊지 않았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내추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 내추럴에 말 그대로 미쳐있다. 그러다 보니 모드컵은 보다 좋은 과일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자연스레 이해도가 높아져서 결국 내사모(내추럴을 사랑하는 모임/모드컵)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역시나 모드컵의 브랜딩 대들보, ‘FAC01 | Coffee is a Fruit’이라는 메시지에 맞췄다.



모드컵003 <뉴저지 인베이전>

최근엔 패키지도 바뀌었다. 앞으로는 상자와 지관통 두 종류로 나뉠 계획인데, 상자는 일반 라인업, 지관통은 고급 라인업이다. 많은 스페셜티 업체가 그러하듯 모드컵도 포장에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훌륭한 패키징은 제품을 개봉할 때 촉각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모드컵 구성원 대부분이 아직도 음악 감상을 위해 바이닐을 구매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번 상자 디자인도 바이닐에서 영감을 받았다. 커피 정보 카드를 상자에서 빼낼 때 슬리브(앨범 재킷)에서 LP 판을 꺼낼 때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무려 3년이 걸린 디자인이다. 물론 기능성도 잊지 않았다. 상자처럼 각진 디자인은 종전 황색 원두 봉투보다 포장/배송에 훨씬 유리하다. 또, 원두 정보 카드엔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 재생 목록을 함께 삽입할 예정이다. 잘 된 브랜딩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처럼 '씹뜯맛즐'할 거리들이 무한으로 나온다.


도안에서는 이런 점이 괜찮았는지 모드컵을 수입하기로 했다. 여태 내추럴 이야기 실컷 해놓고는 막상 첫 수입한 커피는 파나마 엘리다 게이샤 워시드인 건 웃기다. 뭐 원체 훌륭한 농장의 커피이고 커피리뷰에서도 96점을 맞았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무튼 그 게이샤를 시작으로 딸기 폭탄 CGLE 시드라(필자의 작년 BEST 커피이기도 하다), 파인애플 그 자체인 세로 아줄 게이샤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뉴저지 인베이전’을 시작했다. Travas는 필자와의 DM 인터뷰에서 느낌표를 무려 여섯 개나 사용해가며(원문; we were thrilled!!!! Absolutely thrilled!!) 첫 수입 문의에 관한 기쁨을 전달했다. 커피 산업의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에서 수출 문의가 들어와 굉장히 자랑스러웠다고. 커피 카트부터 시작한 험난한 여정이 지금 한국까지 도달한 건 건 말 그대로 미쳤다고 한다. (원문; that's crazy to us. We just LOVE it!!) 그의 감동을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 도안 방문하는 고객 반응도 괜찮다. 이런 손님도 있다. 자기가 뉴저지에 살면서 모드컵만 마셨는데, 한국 돌아와서도 모드컵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단다. 어쨌든 Travas는 자신의 ‘뉴저지 인베이젼’이 무척 인상 깊었나 보다. 그 언젠가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 꼭 팩토리 레코드 바이닐이랑 커피 바리바리 싸 들고 직접 한국을 침략할 거란다.


참, Travas가 최근에 푹 빠진 커피가 있다고 한다. Ethiopia gedeb guji gotiti extended fermentation인데 시원하게 내려서 얼음 큐브 하나 띄워먹으면 퇴폐적인 다크 초콜렛(원문; decadent dark chocolate) 먹는 것 같아서 뿅 가버린다고. a Guy called Gerald의 Voodoo Ray는 무조건 함께 들어줘야 한다고 하니, 점차 풀려가는 봄날엔 이 쿨한 애시드 하우스 음악과 에티오피아 아이스 커피 한 잔 어떨까.


음악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7vxHOCeiQ4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도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