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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May 12. 2020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feat. 통장잔고)

나의 창작물로 먹고살아보겠다 다짐한 이후.

골방 철학자처럼 매일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글을 쓰고, 혼자 기뻐하고, 혼자 좌절했다.

창작이라는 말 아래 무언가를 마음에 찰 때까지 만들어낸다는 것도 힘들지만, 어쩌면 흑역사와 공해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세상에 나를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꽁꽁 숨어 습작만 우걱우걱 하고 있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위한 습작인가?


2018년부터 시작된 습작 폴더들 일부 (현재진행형)


   남의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쉽다. 그냥 살면 되니까! 하지만 거기에 먹고살겠다는 조건이 붙어있다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슬프게도 나는 재벌이 아니라 줄어드는 통장 잔고라는 제한이 있는 사람이다. 창작자로서 남의 일을 하지 않고 먹고살려면 나의 창작물이 대중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야 한다. 

엄청나게 좋은 창작물을 만들거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거나, 스팸광고를 때리거나.

사실 나는 TV광고 만드는 일을 했었기에,  좋은 창작물을 만들 경지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나를 프로모션 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수많은 삽질-실험이니, 도전이니-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점. 바로 줄어드는 통장 잔고의 속도와 나의 실력이 쌓이는 속도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아차 싶어 습작 폴더들을 뒤지며 내가 지금까지 무얼 했으며 앞으로는 무얼 할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해봤다. 그리고 나를 조금이라도 알려야겠다는 초조함에, 이전에 제작했던 대기업들의 광고를 생각해보며 영상의 퀄리티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광고했는지, 내가 써먹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봤다. 주로 영상 제작일을 했지만 기획에도 참여했던 프로젝트 경험과 수많은 광고를 보고 들은 기억을 더듬어 내 마음대로 정리해 본 바.


a. 세상에 없던 것을 처음 공개하는 경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소개하고 소개를 위한 소개(티저)를한다.

b.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상품이 아니거나 서비스 기업인 경우, 지나온 과정과 이념이 무엇인지를 홍보한다.

c. TV광고 클라이언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브랜드로서 역사와 가치가 없다. 혹은 공신력이 없다.


  줄이자면 인지도를 위해 공을 많이 들여야 하며 나는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소리. 

음악 앨범이나, 책, 영화를 비롯한 모든 창작물이 사전에 자신을 소개한다. 덩치가 큰 기업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작은 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SNS 광고나 펀딩처럼 그 과정을 계속 공유한다.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한다. 재밌는 건 인지도가 높을수록 광고는 효과적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이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내 주변의 창작을 하는 사람들도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만을 하기에 나는 좋은 결과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창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자아도취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내가 만드는 창작물로 먹고살아야 한다. 인지도를 쌓는 데에는 실력을 쌓는 것만큼 많은 힘과 시간이 든다. 엄청난 것을 만든 미래의 나를 소개하는 건 아마 가까운 시일 내론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이대로 고군분투 중인 나를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유명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내 소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한 뒤, 거의 모든 SNS와 창작 플랫폼 계정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공개한 작업물이 흑역사와 공해가 되지 않을까 하던 걱정은 2할 정도 사라졌다. 혼자서 낑낑대던 습작을 습작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내 소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후대가 결정한다는 E.H. 카의 말처럼(좋아하는 말이라서 굵게 표시했음) 나의 고군분투기는 흑역사 또는 언젠가 엄청난 것을 만들어 내는 날의 티저, 둘 다 될 수 있다. 흑역사가 될지 뿌듯한 성장의 과정이 될지는 이후에 달려있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내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한 인터넷 속에서 내 작업은 그저 모래알에 불과하며, 별로라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해가 될 것이란 나의 이타적인 걱정도 대단히 시대착오적이었다. 다만 다양한 곳에 창작물을 올리며 중복될 수 있기에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나를 봐 주실 분들의 피로도를 줄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나를 잘 파편화하고 동시에 잘 통합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겠다. 참고로 브런치에는 작업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나의 각종 고민의 과정과 알게 된 정보들을 연재하여 나에 대한 관심을 끌고 동시에 나와 비슷한 창작자들과 만남을 꾀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사실은 혼자 무력감에 자주 빠지기에 좀 더 생산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기록하자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SNS를 활용하고 다양한 매체들을 실험하는 과정이나 프로그램, 작업에 유용한 툴 등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창작자들에게 작게나마 응원과 힘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명분이 생긴 습작을 하러 골방 창작자는 이만!


E.O.D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명하지 않기에,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오늘도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영상으로 음악과 그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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