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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Jan 14. 2024

무엇이 더 두려운가?

매일 30초 크로키 100개 기록 모음 | 5000개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30초 크로키 100개씩
그리기로 했습니다.



매일 라이브로 100개의 크로키를 기록하고, 1000개가 모일 때마다 생각을 정리합니다.

영상으로 크로키 기록 타임랩스를 나레이션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odpDs6NDEOg

열흘 간 천 개의 크로키 기록. 다섯 번째.


05. 무엇이 더 두려운가?


 비교적 차분했던 지난주와 다르게, 이번 열흘은 많은 방황이 있었습니다. 

매일 크로키를 이어가며 조금씩 쌓인 힘을, 그간 도망쳐 온 개인 작업으로 돌려보기 시작했거든요. 이전보다 낫기를 바라며 엉망으로 뒤섞여 있는 '무덤'을 마주하기로 합니다. 거둬내고, 더하고, 정리하려 해도, 거대하고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도피의 마음이 얽히고설켜 온몸을 무겁게 했습니다.


 더딘 손과 지나가는 시간, 아침과 밤. 그리고 또다시 아침. 아니나 다를까, 자기혐오와 연민이 고개를 들이밉니다. 이것은 무기력을 이겨내던 아침의 크로키까지 스며 들어와, 애써 내려놓는 욕심을 부추기고, 손을 방황하게 만듭니다. 


 매일 같은 선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지난 5000개의 크로키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날보다 나아지는 것은 당연 하면서도, 주춤하는 것은 유독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렇게, 자책이 늘어버린 열흘이었습니다.


 어설픈 나 자신이 너무나도 지겹다고 생각했습니다. 

긴 시간, 이 생각으로 노력해 왔으며 같은 생각으로 인해 긴 시간, 불안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날의 검과 같은 이 생각은, 최근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고 느꼈지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제가 나아가려 디딘 발자국만큼. 빠짝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나의 어설픔.

그리고 어설픔에 지쳐 연민의 바다에 가라앉는 것.

가라앉은 채,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자책하고, 잠드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어제를 후회하는 것.

모든 것에서 도망치는 것.

그런 나 자신을 비웃으며 이상한 위안으로 삼아버리는 것.


이번 열흘은 사실 기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물쭈물 도망치다 모인 크로키를 이어 붙이며,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매일의 최선을, 나는 왜 어설픔으로 받아들일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왜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 그림부터, 나의 모든 모습까지.

덕분에 많이 아파하며 지금까지 걸어왔지만, 걷는 방법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더 두려운가?

아마도, '어설픔'보다 '이렇게 살다, 이렇게 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빈 종이는 고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쏟아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쏟아내지도 않은 채, 어설플 것을 힘들어하고, 쏟아낸 뒤에는, 역시 어설픈 것에 실망하곤 했습니다. 장렬히 실패하고, 의연하게 일어나고 싶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쫓아오는 연민과 혐오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쨌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열흘간의 기록을 정리하며, 도망치고 넘어진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도망치고 넘어지는 제 모습이 이어져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빈 종이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개인작업도, 눈물도, 더 많이 쏟아내기를 바라면서.


30초 100개 크로키 천 개 모음, 다섯 번째 기록.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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