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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잖아요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by 가위바위보쌈

사람의 입맛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누가 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그 대체적으로 맛있는 맛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진 않을 수 있다. 익숙한 맛, 달달하면서도 매콤한 맛, 과하지 않은 맛. 그런 맛들을 접했을 때 "맛없다"라고 말할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어떤 음식들은 분명히 맛있는데도 취향이 갈릴 때가 있다. 누군가는 내가 맛있다고 한 걸 맛없다고 하기도 하고, 맛없다고 한 걸 맛있다고 하기도 한다. 정말로 구린내가 날 정도로 맛없는 음식이야 호불호가 갈리지 않겠지만, 조금 부족한가 싶은 음식도 맛있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 소개할 집은 솔직히 내게는 너무 별로였던 집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와 함께 간 지인에게는 너무 맛있다고 극찬을 받은 집이다. 참고로 나와 그 지인은 호불호가 갈리는 집이 꽤 있다. 글 말미에서 참고차(?)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 집은 최근에 생긴 식당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광고를 한 것인지, 돋보기에 여러 번 등장했다. 그래서 가보려고 저장해 둔 곳인데, 마침 지인도 가보고 싶다고 해서 주말 점심을 이 집으로 선택했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9.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에 들어가는 입구

똑똑한 사람들은 을지로입구역이 센터원 건물과 연결됐다는 걸 알고 그 통로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3번 출구로 나와서 힘든 길을 걸어 사진과 같은 곳에 도착했다. 바로 이곳을 따라 내려가면 어진이 있는 지하 동네(?)가 나온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전경

길 따라 쭉 와서 왼쪽으로 꺾으면 어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급하게 찾기보단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 간판이 보인다. 반대쪽으로 오게 됐을 경우에는 길이 다를 수 있으니 주의해서 찾는 걸 추천한다.


말씀 어(語), 참 진(眞). 왕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를 뜻하는 어진과는 한자가 달랐다. 뭐 참된 말, 그 정도의 의미이려나. 평양냉면집에 참된 말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모르겠다.


가게 안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매우 없었다. 그리고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 아마도 평일 점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 않을까 싶다.


편한 곳에 앉으라는 직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이 등장한다. 보기만 해도 설레는 메뉴판, 수육은 기본이고 뭘 추가로 먹을지 고민해 본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1.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메뉴판

가격은 생각 외로 저렴하다. 요새 생기는 '이북식당 흉내 내는 집'들의 특성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인데, 이 집은 그렇게 비싸진 않다. 일반 평양냉면집보다도 싼 축에 속한다. 그렇다고 정말 저렴한 건 또 아니지만. 돼지고기수육이라든지 지짐이, 만두 등 종로 한복판치고는 생각보다 저렴하다. 아마도 직장인의 점심 한 끼를 책임지겠다는 목표가 있던 거 아닐까?


어쨌든, 평냉을 먹기 전 돼지고기 수육을 시킨다. 허기질 수 있으니 녹두지짐이도 하나 추가해 준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2.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밑반찬

밑반찬의 종류는 두 가지다. 열무김치와 백김치인데, 둘 다 맛이 괜찮다. 약간 달달하긴 한데 밑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먹다 보면 소맥이 술술 들어간다.


조금 더 기다리다 보면 메뉴가 하나둘씩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4.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돼지수육

이 집의 수육은 다른 평냉집처럼 오겹살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근데 내 기준 큰 미스가 있다. 오겹살을 너무 두툼하게 썰었다는 점이다. 오겹살을 두툼하게 썰게 되면 느끼함도 두툼하게 다가온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잘 삶았다면, 느끼함을 빼버리게 만들었다면 담백함만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집의 고기는 느끼함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파를 썰어서 올려놨지만, 그것만으로 느끼함을 잡아주진 못했다.


만약에 김치가 있었다면, 보쌈김치로 이 느끼함을 잡아줄 수만 있었다면 고기 자체도 저평가되지 않았을 것이다. 무교동의 인천집이나, 제주 돔베고깃집이나 고기를 커버해 주는 훌륭한 김치 덕에 오겹살 수육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이 집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고기 자체가 저급하다거나, 뒤떨어진다거나, 먹지 못하게 질긴다거나 하진 않았다. 계속 손이 가긴 했고, 느끼함은 조금 있었어도 나쁘지 않았다. 후술 할 냉면과의 조화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쉬운 점은 고기를 좀 더 얇게 썰었으면 어땠을까 한다는 점이다. 또는 센 양념 같은 게 있으면 느끼함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7.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평양냉면

평양냉면은 개인적으로 매우 별로였다. 우선 면의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국물의 깊이가 약한 느낌이었다. 면의 식감도 별로였다. 쫄깃한 맛이 없고 툭툭 부서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같이 간 지인은 너무 맛있었다며 또 오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론 이 지인이 나보다 더 평양냉면에 진심이고, 내가 보쌈을 좋아하듯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훨씬 객관적인 입맛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지인의 평가로는 어진의 평양냉면은 국물이 담백하니 맛있었고, 면도 꽤나 잘 뽑은 면이라고 했다. 나와는 거의 정반대의 평가였다.


지인과 나는 설눈, 강남 평양면옥, 수원 평장원, 봉밀가, 진미평양냉면 등 여러 냉면집을 같이 갔었다. 그런데 우리의 의견이 갈리는 가게들이 몇 곳 있었다. 우선 진미평양냉면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엇갈렸다. 내겐 그저 그런 평양냉면집인 진미평양냉면을 지인은 엄청 맛있다고 극찬했다. 사람들의 평가도 진미가 맛있다고 하는 걸 보면 내가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봉밀가나 설눈에서는 둘 다 맛있다고 느꼈지만 평장원이나 부원면옥에 대해선 평이 엄청 갈렸다.


특히 부원면옥을 두고 지인은 최악의 냉면이라고 평가했다. 내게는 최고였는데도 말이다. 그날의 컨디션, 분위기, 서비스에 따라 맛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갈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지인과 나의 취향은 다른 지점이 있어 보인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6.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녹두지짐

의견이 일치했던 녹두지짐. 바삭바삭하니 맛있었다. 술안주로도 제격이고, 점심에 왔을 때 냉면만 먹기 아쉬우면 하나 시켜서 먹어도 꽤 괜찮다.


그런데 이 집의 최대 장점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KakaoTalk_20251112_221146880_08.jpg 서울 종로구 수하동 어진 오픈기념 이벤트

바로 평일 저녁과 주말 종일 소주가 0원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무제한!!


평양냉면과 소주의 조화를 아는 사람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10월 기준으로 소주 0원이었으니, 지금도 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직 이벤트 중이라면 꼭 가서 소주와 평냉을 맛보는 걸 추천한다.


배불리 먹고 나오면 이번엔 바깥으로 가지 않고 을지로입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배도 부르고 잠도 솔솔 오고, 지하철을 바로 타고 가는 길이 있어서 무척 좋다.

또 하나의 지인과 다른 맛을 느낀 식당을 찾았단 생각에 웃으면서 돌아간다.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집, 어진이다.


갈리는 평가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적어보려고 했는데, 그런데도 제 주관이 너무 개입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진은 다음에 꼭 또 먹고 2편을 올려보겠습니다. 직접 가서 드셔보는 걸 추천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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